혜원신윤복의 혜원전신첩(간송미술관 소장)중 납량만흥
시원함을 느끼며, 흥에 취하다.
라는 '납량만흥'은
녹음이 우거진 어느 여름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깊은 산속 계곡에서 세 양반이 악공과 기생을 초빙하여 악공의 연주에 맞춰 나이든 양반은 기생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돗자리 위에 앉아 있는 젊은 두 사람은 나이든 사람의 눈치를 보며 풍성한 치마를 입고 늘씬한 허리를 흔들며 요염하게 춤을 추는 기생을 바라보고 있다.
한사람은 갓끈을 풀고 바라보고 있고, 다른 사람은 갓을 비스듬히 쓰고 잘 보이지 않는지 허리를 약간 비틀어 보고있는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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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아홉살 청풍 나루터 주모가 왈패들의 등쌀에 못이겨 기둥서방을 맞아들였는데…
주모가 갈림길에 섰다.
기둥서방을 들일건가 말건가?
장단점이 있다는 걸 주모는 잘 알고 있다.
장점은 대충 이렇다.
사람들이 과부라고 깔보지 않는다.
엿장수고 갓장수고,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양물을 찬 놈들은 과부 치마 벗길 궁리만 한다.
술에 취해서 주막이 파한 후에 안방으로 쳐들어오지 않나, 곰방대에 불 붙인다며 부엌에 들어와 술상 차리는 주모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지를 않나….
든든한 기둥서방이 있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술 처먹고 밥 처먹고 나서 돈 없다고 치부책에 외상 달아놓으라고 뻔뻔스럽게 나오는 놈들도 부지기수다.
해가 바뀐 외상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놈들이 어깨가 떡 벌어진 기둥서방이 치부책을 코앞에 펼치면 전대를 풀든가 물납이라도 한다.
국밥을 한참 먹다가 제 머리카락을 국밥 속에 넣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새 국밥 가져오라 떼쓰는 놈, 술 두잔을 따르니 호리병이 바닥났다고 깽판치는 놈들도 기둥서방의 고함에 쑥 들어간다.
장작도 패고 구석구석 소제도 하고 지붕 고치는 것도 기둥서방 몫이다.
이런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만만찮다.
주막집 주모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것이다.
바로 하룻밤 운우의 정을 나누고 해웃값도 챙기는 것.
온종일 눈물 흘리며 아궁이에 불 지펴 국 끓이고 밥해 상 차려내고, 고두밥 쪄서 누룩과 버무려 탁배기 걸러내 팔아도 늦은 밤 호롱불 아래서 계산을 해보면 별것이 없다.
땀 흘린 품값을 제쳐 놓더라도 매상고에서 재료비를 빼고 나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남정네와 하룻밤 자고 나면 재미는 재미대로 보고 재료비 한푼 안 들어간 해웃값은 고스란히 알돈이다.
허나 기둥서방이라고 들여놓으면 그 짓을 할 수 없다.
또 하나, 기둥서방은 기둥서방일 뿐인데 이게 주인행세를 하며 친구들을 데려와 공짜 술을 주거나 돈통에 손을 대기도 한다.
청풍 나루터 주막~
서른 아홉살 주모는 아직도 박가분을 바르면 눈 밑의 잔주름을 감추고 처녀까지는 몰라도 청상과부 행세는 할 수 있는데, 한해전에 왈패들 등쌀에 못이겨 홀아비 우서방을 기둥서방으로 맞아들였다.
지난 단옷날~
씨름판에서 황소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주막으로 들이닥쳐 술 한독을 다 비우고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게 너무 멋있어 주모가 먼저 꼬리를 쳐서 우서방을 안방으로 끌어들여 호롱불을 껐다.
그 큰 덩치로 꾹꾹 누르는 통에 주모는 세번이나 숨이 넘어갔다.
이튿날부터 우서방이 안방을 차지하고 가끔 문을 열고 큰기침을 하니 조무래기 왈패들이 얼씬도 못했다.
우서방은 부러진 평상 다리도 고치고 수챗구멍도 치우고 밤이면 주모를 기절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여섯달을 착한 기둥서방으로 보내더니 여섯달이 지나자 저잣거리 건달생활이 그리웠던지 주막을 나가 쏘다니기 시작했다.
노름판에 매달려 열흘씩 집을 비우고 가뭄에 콩 나듯이 주막으로 와도 곤드레만드레 쓰러져 코를 골아, 부엌에서 뒷물하고 온 주모를 뚜껑 열리게 했다.
외상값 받아서 노름판으로 직행하는 일도 생겼다.
우서방이 타지로 원정도박을 갔다가 보름 만에 주막으로 돌아올 때 새벽닭이 울었다.
안방문을 열자 주모는 발가벗은 채 이불로 몸을 감쌌고, 어떤 놈이 옷을 옆구리에 찬 채 튀는 걸 우서방이 낚아챘다.
불을 켜고 보니 약재상을 하는 부자 홍첨지였다.
우서방과 홍첨지가 탁배기를 주고받으며 흥정을 시작했다.
홍첨지가 백냥부터 시작해 천냥까지 올렸으나 우서방은 팔자를 고치겠다는 듯이 삼천냥을 요구했다.
결국 세사람은 사또 앞에 서게 됐다.
주모가
‘친정아버지 보증빚 갚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기둥서방은 외상값을 받아 노름판에 간다’
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한 게 먹혀들었다.
사또의 판결은 이랬다.
“기둥서방의 본분을 망각한 우서방은 홍첨지의 멱살을 잡을 권한이 없다.
주모로부터 기둥서방 직책에서 해고됐으니 앞으로 주막 출입을 금한다.
그리고 홍첨지는 주모에게 해웃값으로 천냥을 지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