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의 힘
박연숙
황산을 갔다. 처음부터 별로 내키지 않은 데다 다친 손목이 부담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코가 꿰어 가게 된 여행이라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산 입구 주차장에서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길목, 길목에 지팡이를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황산이 악산이라는 얘기에 일행 중 여러 명이 나무 지팡이를 샀다. 우리 돈으로 손잡이 부분이 곡선인 것은 2000원, 그냥 막대기는 1000원이었다. 나도 미끄러워 혹 넘어지기라도 하면 겨우 붙여놓은 손목이 덧날까 걱정이 되어 꼬부랑 지팡이를 하나 샀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는 성구가 생각이 나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돌이 튀어나와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다. 젊고 건강한 이들에겐 쉬운 길이지만 예전에 산에서 넘어져 골절을 당한 나에게는 트라우마가 잠재한다. 살짝 미끄러지거나 헛디뎌 휘청거릴 때마다 지팡이가 고맙고 든든한 동반자 같은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정도 걷고 나서 다시 2시간 코스 팀과 50 여분 코스 팀으로 나뉘어 등반을 했다. 나는 허리가 불편하신 분과 남아서 쉬기로 했다. 큰 바위에 발 뻗치고 앉아 새색시의 속옷처럼 겹겹이 겹쳐있는 봉우리의 신비하고 몽환적인 경치를 감상하니 그야말로 무념무상이 되어 편안함이 찾아왔다. 이도 잠시 뿐 조금 무료해져서 지팡이로 바위를 툭툭 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지팡이의 쓰임은 정말 다양하다. 먼저 사람이 걸을 때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리스 테베산에 사는 스핑크스의 ‘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인간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사람이 늙고 병약해지면 걸음걸이가 힘들고 어려워진다. 요사이는 노인들이 건강관리를 잘하셔서 지팡이를 사용하는 분이 많지 않다. 한때는 할머니들이 지팡이 대용으로 아기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분이 많았다. 지금은 간단한 소지품도 넣고 뚜껑만 닫으면 의자도 되는 실버카 또는 할머니 보행기가 나와서 지팡이의 획기적인 변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팡이는 목동에게도 필수품이었다. 양들을 몰아 우리에 집어넣고, 무리를 이탈하여 헤매는 녀석을 데려오는 일도 했다. 사나운 짐승을 만났을 때 양 떼와 목동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도 다 지팡이의 힘이다.
호박으로 황금마차를 만들고 생쥐를 마부로 변신시키며 재투성이 신데렐라를 예쁜 공주로 만드는 요정의 요술 지팡이는 어린이들에게 착한 마음과 꿈을 심어주는 마법의 지팡이이다.
크리스마스 때나 광복절에 TV에서 종종 보여주는 ‘엑소더스’란 영화를 보면 모세가 자기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지팡이를 들자 홍해 바다가 양쪽으로 쫙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하고 다시 지팡이를 흔들자 바다가 합쳐지면서 이집트군이 수장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보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지도자가 권력의 상징인 지팡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과 국민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권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지팡이가 되라는 뜻인 것 같다. 한 때 허리에 찬 경찰봉이 조금 무서운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힘없이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에 안타깝다. 어려운 여건에도 묵묵히 자기 업무를 수행하는 다수의 정의의 지팡이를 응원한다.
1시가 지나서 장거리 코스 팀이 돌아왔다. 아침에 호텔에서 싸 준 도시락을 제대로 먹지 않아 배가 고픈 데다 점심까지 늦어져서 바쁘게 하산했다. 거의 다 내려와서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올라가는 여자들을 만났다. 중국 여성들은 대단하다. 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그 높은 봉우리를 치마와 구두를 신고 별로 힘들어하지 않으며 산행을 하는 게 놀랍다. 그분들께 우리 일행의 지팡이를 모두 거두어 선물하니 환하게 웃으며 아주 좋아했다. 보잘것없는 지팡이가 산을 오르내리는 이에게 큰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내 인생의 좋은 지팡이인 남편의 팔에 이끌려 산을 내려왔다.
첫댓글 황산에서 산 그 지팡이가 특별했던 것 같네요.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 준 지팡이, 지팡이와 함께하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팡이의 쓰임새와 다양한 지팡이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사람들의 몸을 보호하고 물리적으로 도움을 주는 지팡이도 소중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지팡이인 남편이란 지팡이가 지팡이중 가장 좋은 지팡이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숱한 지팡이 중에 평생을 함께 할 사람 지팡이가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부터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야 하는 그리고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의 지팡이가 가장 소중한 지팡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잘읽었습니다.
세상에는 특별하고 의로운 지팡이가 참 많은 듯 합니다. 사람이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힘이 들 때 지팡이의 존재는 정말 필요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입니다. 저도 산행을 할 때는 얕으막한 산이라도 웬만하면 지팡이를 챙겨서 나섭니다. 지팡이를 지니고 있다는 자체가 마음이 편해서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글에서 나온 다양한 지팡이 이야기 고개 끄덕이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팡이의 다양한 용도와 마력을 글을 통해 배웁니다. 중국 황산의 아름다운 여정도 지팡이가 큰 몫을 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좋은 글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산행을 할때 지팡이의 의미를 몸소 느끼며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지팡이의 다용도 연관 글을 통해서 많은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하산하고 올라가는사람들에게 지팡이를 선물한 따뜻한 마음씨가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글 잘 읽었습니다.
황산 여행과 지팡이에 대한 글이 재미있고 잔잔한 감동도 줍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실 수 있었던 것은 지팡이의 역할도 컸던 것 같습니다. 성경 구절, 책, 영화,.. 현실 속에서의 지팡이 등을 짚어주시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든든하게 끌어주는 가족이란 지팡이가 정겹게 다가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주님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말씀을 선생님의 글에서 다시 되새겨봅니다.힘들때만 의지하고 빌고 있지않았나? 나를 뒤돌아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팡이의 필요성을 더욱 느낍니다. 지팡이를 짚고 등산하는 사람들을 볼때 지팡이가 거추장스럽기만 보였는데 나의 모습이 된지도 몇년이 되었습니다.이제는 지팡이를 의지해도 다니기가 부담이 되는 신체적인 고통을 느낌니다. 선생님 코에 꿰일지라도 열심히 여행을 다니십시오. 좋은 곳에 잘 다녀오셨습니다.
저는 황산에 겨울에 갔는데 눈덮힌 황산을 올라가다 너무 힘들었는데 일행이 지팡이를 건네주었는데 지팡이덕분에 정상에 간적이 있습니다. 그 후 산에 갈때 지팡이는 꼭 가지고 간답니다. 주님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한다는 성경말씀 되새겨봅니다. 주변에 내가 힘들 때 언제든지 지팡이가 되어주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 가져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르막을 오를때 지팡이를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손목이 시큰함을 느꼈습니다. 그후로는 지팡이가 손목에는 무리를 줄수도 있구나 싶어 오르막 오르기가 꺼려지더군요. 지팡이도 쓰기에 따라 요긴하기도 하면서 반면에 부담되는 부분도 있나 봅니다. 너무 의지를 하면 그 지팡이 역할을 해준 사람에게 부담을 줄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내인생의 가장 편한 지팡이도 아끼고 보살펴야 함을 느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