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치유의 구산 성지는 뒷산이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구산 마을에 위치하며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한 9명의 순교자 진묘와, 얼이 스며 있는 거룩한 땅이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인하여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되어 있고 구산 성지가 한 가운데에 있다.
구산 마을에 신앙의 씨앗은 1830년경, 정직과 아량으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김성우 성인과 두 동생 덕심, 윤심 세 형제를 통해 뿌리 내렸으며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김성우 성인과 형제들은 성사와 신앙 생활을 더 잘하려고 서울로 이사 하였다. 특히 김성우 성인은 1836년에 입국한 모방 신부를 집에 모시고 우리말과 조선의 풍습을 가르쳤으며, 박해의 칼날 아래 풍전등화 같은 교회 공동체를 보존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수차례 집을 옮기다니며 전교 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포도청에 압송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였으나 굳건한 용덕으로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라는 신앙 고백을 남기고 1841년 4월 29일 48세 나이로 순교하였다.
구산 성지를 순례하면 신앙 선조들의 순교사, 박해사, 생할사 등의 순교 영성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신앙 선조 영서 마을'을 건립하여 신앙 선조들의 전통적인 신앙(기도)생활을 체득 체화할 것이다.
안당문(성인묘역 입구), 구산 성당에 들어가는 입구이며 성인들의 진묘가 모셔진 안당문의 입구이다.
교우촌을 이루면서 가마터를 이용하여 옹기를 만들고 만들어진 옹기를 가가호호 판매하며 선교를 하였다.
구산 성지는 기왓장으로 마감을 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의 친화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장마철이라 하늘이 찌부듯하고 구름이 쌓여 있으며, 바닥은 내린 비로 인하여 젖어있다.
성인 묘역
건물, 대문 그 모든 것들이 고풍스럽다. 그 안에 순교자들의 얼이 기리져 있어 우리도 그 분들의 삶을 본받고자 기도 올린다.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리시어 우리를 반기시고 있다. 세속의 모든 찌든 때를 벗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라고 손짓하신다.
우리는 그저 '아멘'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된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말씀을 새기며, 우리 또한 그 말씀처럼 살기를 희망한다.
특히 구산 성지는 수험생들을 위하여 미사가 있다. 103위 성인들의 기도 간구를 청하며, 103일을 정하여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나무와 벽돌로 어우러져 순례객들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과 부드러움을 안겨주고 있다.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를 성모님께 간구하고 있다.
고해소 맞은 편의 십자고상.
고해소, 몇 년전의 고해소 그 모습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준비되어있다.
예전엔 앉아서 미사를 보았다. 그래서 분심이 잦았다. 다리가 저려서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의자로 바뀌니 분심이 안생긴다. 여름 우기이고 평일이다 보니 순례객들이 얼마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