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居正 1420 1488 達城 剛中, 剛仲, 子元 四佳亭, 亭亭亭 文忠 達城君
성종 18 1487 정미 成化 23 68 봄, 왕세자가 入學하자 博士가 되어 「論語」를 강하다.
성종 19 1488 무신 弘治 1 69 봄, 館長이 되어 중국사신 董越ㆍ王敞을 접빈하다. ○ 12월, 병으로 卒하다. ‘文忠’의 시호를 받다. ○ 왕명으로 文集이 간행되다.(任元濬ㆍ任士洪의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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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偉 1454 1503 曺五龍 昌寧 大虛 梅溪 文莊
성종 15 1484 갑진 成化 20 31 4월, 孫昭致尊官이 되어 경주에 내려가다. ○ 5월, 應敎가 되다. ○ 8월, 부모 봉양을 위하여 咸陽郡守가 되다.
성종 16 1485 을사 成化 21 32 〈歲杪詩〉를 製進한 것으로 米豆와 書冊을 하사받다.
성종 19 1488 무신 弘治 1 35
성종 20 1489 기유 弘治 2 36 2월, 부친상을 당하다. ○ 5월, 黃澗 馬巖山에 장사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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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집(四佳集) 서거정(徐居正)생년1420년(세종 2)몰년1488년(성종 19)자강중(剛中)호사가정(四佳亭), 정정정(亭亭亭)본관달성(達城)초자자원(子元)시호문충(文忠)
四佳詩集卷之五十一○第二十四 / 詩類 / 次曹咸陽 偉 韻
使君聲譽不蹉跎。東閣吟梅舊姓何。自笑白頭老學士。殘年寂寞子雲家。
功名自古患憂餘。進退行藏愧兩踈。多病掩門今二載。故人皆著絶交書。
相思南北歲蹉跎。花落春歸可奈何。忽得新詩聊自慰。文章知復已成家。
頭流山聳萬丈餘。學士樓前竹影踈。盡日訟庭淸似水。吟詩纔罷又看書。
百年世事已蹉跎。衰病其於白髮何。悵望故園歸不得。宦遊無日不思家。
酒癖詩顚態有餘。自知經濟術還踈。稀年致仕今年事。已草歸田乞退書。
사가시집 제51권 / 시류(詩類) / 조 함양(曺咸陽) 위(偉) 의 운에 차하다
사군의 명성은 응당 불우하지 않고말고 / 使君聲譽不蹉跎
동각의 매화 읊던 이는 성이 하씨였지 / 東閣吟梅舊姓何
스스로 우스워라 백발의 늙은 학사는 / 自笑白頭老學士
만년의 적막함이 흡사 자운의 집일세 / 殘年寂寞子雲家
공명은 예로부터 근심 걱정의 나머지인데 / 功名自古患憂餘
벼슬함과 은퇴함 둘 다 서툰 게 부끄럽네 / 進退行藏愧兩疎
병이 많아 집에 들앉은 지 지금 이 년이라 / 多病掩門今二載
친구들이 모두가 절교서를 지었네그려 / 故人皆著絶交書
남북에서 서로 그리다 세월만 헛되이 보내 / 相思南北歲蹉跎
지는 꽃 가는 봄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花落春歸可奈何
갑자기 새 시 얻으니 스스로 위로되어라 / 忽得新詩聊自慰
문장이 알건대 진작 일가를 이루었을 테지 / 文章知復已成家
두류산은 만 길도 넘게 우뚝 솟아 있고 / 頭流山聳萬丈餘
학사루 앞에는 대나무 그늘이 듬성한데 / 學士樓前竹影疎
온종일 송사하는 곳은 물처럼 맑으리니 / 盡日訟庭淸似水
시 읊다 파하자마자 또 곧 책을 보겠지 / 吟詩纔罷又看書
일생 백 년의 세상일은 이미 불우한 데다 / 百年世事已蹉跎
쇠하고 병들어 백발이 성성함을 어찌하랴 / 衰病其於白髮何
고원을 서글피 바라만 보고 가진 못하나 / 悵望故園歸不得
타관의 벼슬살이에 집 생각 안한 날 없었네 / 宦遊無日不思家
술과 시에 몽땅 빠진 작태는 유여하지만 / 酒癖詩顚態有餘
경세제민의 계책 서툶은 스스로 알고말고 / 自知經濟術還疎
칠십에 치사하는 게 바로 금년의 일이라 / 稀年致仕今年事
귀전걸퇴의 상소장을 이미 초해 놓았다네 / 已草歸田乞退書
[주-D001] 조 함양(曺咸陽) : 조위(曺偉 : 1454~1503)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이고, 울진 현령 조계문(曺繼門)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ㆍ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홍문관의 여러 직임을 거쳐 함양 군수가 되었다. 1498년(연산군4)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金宗直)의 시고(詩稿)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오랫동안 의주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으로 옮겨진 뒤,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매계집(梅溪集)》이 있으며, 금산(金山)의 경렴사(景濂祠)에 제향되고, 시호는 문장(文莊)이다.[주-D002] 사군(使君)의……하씨(何氏)였지 : 하씨는 곧 양나라 때 시인 하손(何遜)을 가리킨 것으로, 하손이 일찍이 양주 자사(揚州刺史)의 기실 참군(記室參軍)으로 있을 적에 관아의 매화가 활짝 핀 것을 보고 〈영조매(詠早梅)〉라는 시를 지어 세상에 회자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杜甫)의 〈화배적등촉주동정송객봉조매상억견기(和裴迪登蜀州東亭送客逢早梅相憶見寄)〉 시에서도 하손의 고사를 인용하여 “동각의 관매가 시흥을 발동시키니, 도리어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 같구려.〔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9》[주-D003] 만년의……집일세 : 자운(子雲)은 한나라 양웅(揚雄)의 자이고, 적막한 집이란 곧 양웅이 일찍이 조용히 들어앉아 《태현경(太玄經)》을 초(草)하고 있을 때, 혹자가 그에게 도가 아직 깊지 못해서 곤궁한 게 아니냐고 조롱하자, 양웅이 해조(解嘲)를 지어 혹자의 조롱을 해명했던바, 그 대략에 “오직 적막함만이 덕을 지키는 집이다.……나는 묵묵히 나의 태현을 홀로 지킬 뿐이다.〔惟寂惟寞 守德之宅……默然獨守吾太玄〕”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87 揚雄傳》[주-D004] 절교서(絶交書) : 친구와의 교제를 단절하는 서신으로,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이 일찍이 자기 친구인 산도(山濤)가 자기의 관직을 대신하도록 그를 천거하자, 산도에게 절교서를 보내서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던바, 그 대략에 “지금 나는 다만 누추한 시골을 지키고 살아서 자손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면서,……막걸리 한 잔 마시고 거문고 한 곡조만 탈 수 있다면 내 소원은 다 이루는 것이다.〔今但願守陋巷 敎養子孫……濁酒一杯 彈琴一曲 志願畢矣〕”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단지 친구들과 서로 멀어지게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晉書 卷49 嵇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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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佳詩集卷之五十○第二十三 / 詩類 / 夢遊鷄林。訪崔學士致遠。二首
孤雲學士是詩仙。千載高名萬口傳。昨夜分明夢相見。鷄林林畔月城邊。
憶曾登眺海雲臺。欲喚孤雲一笑開。聞說已乘靑鶴去。洞門深鎖不歸來。
사가시집 제50권 / 시류(詩類) / 꿈에 계림(鷄林)을 유람하다가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을 방문하다 2수
고운 학사는 바로 시선이었기에 / 孤雲學士是詩仙
천재에 높은 명성 만인에게 전해 오는데 / 千載高名萬口傳
어젯밤 꿈속에 분명히 서로 만나 보았네 / 昨夜分明夢相見
계림의 숲 가 반월성 변두리에서 / 鷄林林畔月城邊
일찍이 해운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면서 / 憶曾登眺海雲臺
고운을 부르려다가 한번 웃음을 지었지 / 欲喚孤雲一笑開
듣자 하니 그는 이미 청학 타고 떠났는데 / 聞說已乘靑鶴去
동문을 깊이 잠그고 돌아오지를 않는다네 / 洞門深鎖不歸來
[주-D001] 고운(孤雲) : 최치원(崔致遠)의 자이다.
[주-D002] 해운대(海雲臺) : 동래현(東萊縣) 동쪽에 있다. 산의 절벽이 바다 속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마치 누에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는 동백(冬柏), 두충(杜沖), 전나무 등의 숲이 울창한데, 최치원의 자가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었던바, 그가 여기에 대(臺)를 쌓고 놀았으므로 그의 자를 따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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