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노작문학상
하얀 사슴 연못 / 황유원
백록담이라는 말에는 하얀
사슴이 살고 있다
이곳의 사슴 다 잡아들여도 매해 연말이면 하늘에서 사슴이
눈처럼 내려와 이듬해 다시
번성하곤 했다는데
이제 하얀 사슴은 백록담이라는 말
속에만 살고
벌써 백년째 이곳은 지용의 『백록담』 표지에서
사슴 모두 뛰쳐나가고 남은
빈자리 같아
그래도 이곳의 옛 선인들이 백록으로 담근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백록은 어쩌면 동물이 아니라
기운에 가깝고
뛰어다니기보다는 바람을 타고 퍼지는 것에 가까워
백록담,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백록담』 표지 밖에서 표지 안으로
돌아오는 것도 같고
하얀 사슴 몇마리가 백록담 위를 찬 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은 청량해진다
연못에 잠시 생각의 뿔을 담갔다
빼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지용이 『백록담』을 썼을 때 사슴은 이미 여기 없었다
표지의 사슴 두마리는 없는 사슴이었고
길진섭의 그림은 그저 상상화일 뿐이었는데
어인 일일까
백록담, 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살이 오른 사슴들이
빈 표지 같은 내 가슴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와
마실 물을 찾는다
놀랍게도 물은 늘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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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노작문학상 본심사위원은 김사인, 안도현, 유지선(이상 시인), 최현식 평론가로 이들은 “황유원 시인의 하얀 사슴 연못은 무심하되 집중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시집”이라며, “한국의 젊은 시인들이 맞닥뜨린 모험의 애매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현식 평론가는 황유원 시인에 대해 “홍사용 시인의 시 정신과 당대의 뛰어난 선구적인 표현 능력을 잘 계승하여 미래의 한국시를 잘 일궈 나갈 능력을 갖춘 시인”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