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함돈균 지음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사물의 철학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 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스승으로 <디자인인문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또한 ‘인문정신의 사회적 실천’과 ‘비평적 글쓰기를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하고 교육적 방법론을 공유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2013년부터 「매일경제신문」에 ‘사물의 철학’코너에 글을 썼고, 이를 모아 2015년에 책을 냈는데, 이 책은 3년 후 다시 낸 개정판이다. 책 속에 나오는 57개의 사물들은 가위, 단추, 마우스, 밴드등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보는 것들이다. 보통 가위면 가위고, 단추면 단추인 이 사물들이 어떻게 인문적 상상력의 소재가 되었을까?
서두에서 저자는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이 모자라고 본 그 것은 실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었다는 내용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작가 도스토엡스키가 인용한 사탄과 예수의 대화를 예로 들면서, ‘쓸모-필요-유용성’만을 보는 어른과 겉만 보고 그 이상 너머를 보지 못하는 군중을 비판한다. 저자는 ‘사물들에겐 나름의 자율성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갖으며, ‘사람은 인공 사물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것에 크게 의존하는 노예일 수’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하여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사물들에 깃들여 있는 존재의 다의성을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의 기회를 갖기’를 소망한다.
퀴즈 셋
첫째, 당신이 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내가 가장 반갑게 여기는 사물을 무엇일까? 맥락은 내가 장거리 자동차 여행 중에 있다고 하자. 차가 막힐 때나 사막의 도로를 지날 때 더욱 그렇다. 두 번째는 저자가 미국 여행 중에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인 사물이라 한다. 이 사물이 도로에 서면 대통령 전용차도 경찰차도 서야한다. 권력은 누가 법의 예외 상태를 명령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면 단연 이 사물이 그렇단다. 세 번째는 이 것은 신발 중에서도 최소한의 신발이다. 주로 여름에 신는다. 이 신을 신으면 잘 뛸 수 없다. 저자는 이 신발에서 야생을 보았고 야만과 비교하며 이 신이 ‘개방성, 자유, 유희적 에너지’을 띤다고 말하고 있다.
헤어드라이어와 파티션
도시의 바람은 자연스럽지 않다. 인공 지형에 둘러 쌓이고, 에어컨 실외기와 지하철 환풍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덧대어진 바람은 그 자체로 ‘신경증적’이다. 실내에 자연의 바람을 구현했다는 첨단 가전제품들이 그래서 키티적일 수 있다. 차라리 도시의 바람은 철저히 인공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지. 그런 면에서 헤어드라이어의 시끄러운 바람 소리가 덜 키티적일 것이다.
파티션은 사무실을 구획하는 장치다. 업무-기능적 요소도 있고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도 한 몫 하는 것이 이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장치도 사무실에서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이 현상을 개방성과 소통의 확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강하게 존재하는 프라이버시 영역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면도기와 벽때기
나는 헤어드라이어보다 전기면도기가 더 눈에 들어 온다. 길면 좀생이 염소 같은 수염을 갖고 있는 나의 안면은 일 분도 안 돼 깔끔해진다. 옛사람들이나 자연에선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몇 개월 지나 안을 청소하다 보면 이 자지란 수염 조각들이 뭉치를 이루고 있다. 이 것들이 균의 온상이 되겠다 싶지만 잘 하면 퇴비도 될 수 있겠다는 음험한 생각도 해 본다. 20년 정도 쓰고 있는 이 면도기가 나에겐 자연인지 인공인지, 키티적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고마울 따름이다.
파티션이 없어져도 프라이버시는 남는다 하지만, 그래도 학교 벽 담장이 없어지고 꽃 길이 놓이는 것은 좋다. 허나 나의 사무실은 파티션은 고사하고 벽때기만 당당하게 서 있다. 창문도 없다. 근데 그런 벽때기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멋진 그림 한 점 걸어 놓은 벽때기도 나름 견딜만 하다. 없으면 상상으로라도 걸어놓으면 된다.
정답
아 참 정답을 얘기하자. 퀴즈 순서대로 이야기 하면, 주유기, 스쿨버스, 조리다. 물론 당신이 상상한 것도 맞다. 저자의 말도 맞다. 하여 내가 상상한 엉뚱한 사물들도 맞겠지.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