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 별곡別曲 / 김사은
친정에 갔다 왔더니 친정엄마가 자동차 트렁크에 조랑조랑 무언가 잔뜩 넣어주셨다. 팔순의 친정엄마는 골절, 관절염 등의 후유증을 껴안고서도 텃밭을 일구어서 몸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신다. 상추며 부추, 파, 마늘, 고추 같은 작물을 자급자족하는 수준을 넘어 끊임없이 나누어주시려 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삼시세끼 식사를 챙겨 먹는 것도 아니어서 번번이 채소가 남아돌기 일쑤인데 시들어가는 채소를 버릴까 말까 냉장고에 들어갔다 내오기를 여러 차례 거친 후에 결국 음식 쓰레기로 분류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죄책감이 두 배는 더 크다. 필요한 만큼 동네 마트에서 조금씩 조달해 먹는 것이 맘 편하여 친정엄마의 호의를 거절하기 일쑤이다 보니 친정엄마 요량으로 어느 때는 무슨 007 작전을 방불케 하며 슬쩍 자동차 어딘가에 숨겨두고서 집에 도착할 즈음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라신다.
용무가 있어 친정을 방문해도 엉덩이 붙이는 것은 잠깐이고 돌아갈 생각으로 마음이 바쁜데 오가는 여정은 왜 그리도 피곤한지, 집에 도착해서는 남원집 보따리를 챙길 엄두도 못 내고 베란다에 던져놓은 채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친정엄마가 싸주신 보따리를 풀어보다가 기겁하고 말았다. 상추며 부추, 미나리가 시들시들 몸을 비틀고 있었고 검은 비닐봉지에서는 냉동됐던 토란대, 고사리 등이 따뜻한 기온에 잘 해동되어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노란 형태의 젤 같은 것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성분이 구별되지 않아 친정엄마께 여쭈었더니 호박 삶은 것이란다. 친정엄마는 작년부터 늙은 호박을 주고 싶어 하셨는데 늙은 호박을 어디에 쓰랴 싶어서 고사하던 차였다. 딸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고 순전히 친정엄마의 넘치는 애정으로 주렁주렁 일거리들이 딸려왔다 생각되어 겁도 나고 한숨이 났다.
급한 대로 상추며 부추는 찬 물에 담가 두고 엄마가 주신 토란대와 고사리로 육개장을 끓이려고 냉동실에서 소고기를 꺼내었다. 인터넷 뒤져가며 어찌어찌 조리를 시작하던 중, 잘 끓고 있는 소고기 육수가 아까워서 급히 계란 몇 개를 삶아 소고기 자장을 추가하기로 했다. 일이 더 늘었으나 어차피 일 벌인 김에 밑반찬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문제는 호박이었다. 이미 해동이 충분하게 되어 다시 냉동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어떻게든 호박을 처리해야 했다. 친정엄마는 호박죽을 끓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식혜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어 부지런히 인터넷을 찾아보고 냉장고를 뒤져서 엿기름을 찾았다. 엿기름도 친정엄마가 봉투에 둘둘 말아서 넣어주신 것이다. ‘고슬고슬한’ 밥이 있어야 한다기에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전원을 꽂았다. 제일 중요한 게 엿기름을 받아내는 일이라 하여 엿기름에 미지근한 물에 불리다가 28년 전 그 일이 떠올랐다.
결혼 이후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나무라거나 섭섭한 기색을 내비친 일이 없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시어머니는 부잣집 맏며느리로 수십 식솔을 거느리며 큰일을 척척 해내신 분이니 일머리도 없는 며느리가 맘에 드실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다니느라 애쓴다.” “애 키우느라 애쓴다.” 칭찬으로 넉넉하게 품어주신 분이다. 그런 시어머니가 명절 즈음 꺼내놓은 단골 화제가 하나 있으니 나의 실수담이다.
결혼해서 두 번째 맞이하는 추석 즈음, 장 보러 가신 시어머니께서 "아가, 식혜 해 먹게 엿기름이나 씻어놓아라."하셨다. 나는 엿기름을 한 번도 씻어본 적이 없기에 쌀을 씻는 것처럼 잘 씻어서 서너 번 물로 헹구고 아랫물은 버리고 엿기름만 고이 체에 밭쳐 두었다. 집에 돌아오신 시어머니는 "아이고 엿기름 불려 놓으랬더니" 하시며 큰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헤벌쭉 웃었다. 엿기름의 진국은 불린 물이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그해 나의 실수 때문에 식혜를 먹지 못했지만 아무도 식혜를 찾진 않았다. 이렇게 나의 실수는 해마다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웃음 소재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심지어 손위 시누가 참석하는 때면 웃음소리가 더 커지곤 한다. 수십 번 우려먹은 얘기지만 되새길 때마다 더 재밌다. 시어머니가 이 얘기를 꺼낼 때 “식혜 해 먹을라고 엿기름 우리라고 했더니, 국물을 싹다 버려부렀어야~” 하시며 얼굴 가득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나는 은근 나의 실수담을 자조적으로 고백하곤 한다. 그 후로도 식혜를 직접 할 기회가 없었는데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호박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호박 식혜를 해야 했던 것이다.
심난하고 걱정스럽던 마음이 식혜가 발효되어가면서 밥알이 하나 둘 동동 떠오를 때마다 신기하고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들은 바는 있어서 설탕 대신 조청으로 맛을 내가면서 끓였더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남편에게 권했더니 고개를 끄덕여서 안심이 되었다. PT병으로 세 병이 담겼다. 시어머니께 달려가서 잣을 띄워 한잔 올렸더니 “맛있다.”라고 좋아하셨다. 28년 전 엿기름 박박 씻어서 버린 추억이 소환되면서 너무 늦게 시어머니께 식혜를 대접한 게 아닌가 죄송했다. 한 병은 호박식혜 좋아한다는 지인에게 전하고, 남은 한 병은 친정엄마에게 드렸더니 “응, 먹을만하다~ 아따 인자 철들었네.” 하셨다. 음식 칭찬 인색한 친정엄마인지라 그 정도면 보통은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호박식혜가 만들어지는 동안, 신기하게도 찬 물에 담갔던 상추와 부추, 미나리가 싱싱하게 되살아났다. 손을 놀리어 부지런히 부추 가득 담긴 상추무침, 미나리 무침, 미나리 김치를 만들었다. 녹아서 흐물거리던 고사리, 토란대가 육개장으로 그럴싸하게 회복해서 개선장군이 되었다. 급하게 시작했던 소고기 자장도 맛있게 조리되었다.
친정엄마가 싸주신 비닐봉지 때문에 한숨으로 시작했던 일련의 조리과정이 제법 그럴듯한 음식으로 되살아나서 기쁘고 고마웠다. 특히 시어머니께 식혜를 대접하게 되어 28년 전, 엿기름 씻어 버린 실수를 만회한 느낌이어서 위안이 되었다.
친정엄마 호박 때문에 시작된 부산한 하루였지만,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텃밭에서 일군 야채랑 옥상에서 말린 채소를 조랑조랑 비닐봉지에 담아서 챙겨주시는 친정엄마가 계시고, 솜씨 없는 며느리 북돋우시며 식혜 한 잔도 맛있게 드시는 마음 넓은 시어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이고 허리야, 어깨야” 주먹 쥐고 어깨 두드리는데 뭉툭한 손길이 어깨에 와 닿는다. 아들이 내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식혜처럼 잘 발효된 하루가 간다.
[김사은] 2000년 《한국문인》수필 등단
* 전북수필문학상, 전북여류문학상
* 《뽕짝이 내게로 온 날》, 《그리운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살아있으니 그럼 된거야》
살림에 미숙한 며느리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크게 웃어주시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시댁에서 받은 사랑을 이제 내 며느리에게 베푸시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양가 어른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또 그 사랑에 보답하며 사는 삶이 참 행복해 보이네요. 호박식혜는 빛깔도 참 예쁘던데요. 후다닥 여러 음식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니 이젠 살림의 달인이 다 되셨네요.
첫댓글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 이십니다
짝짝짝 모두 행복하십시오^^^
흐뭇합니다. 글로 채워지는 배부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