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입문한 이후 해마다 봄 가을에 열리는 메이져 대회는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데,
벌써 수 십 번 완주해 봤지만 풀 마라톤은 언제나 부담스러워 출발선에선 주눅이 든다.
왜? 훈련 부족이지 ^^; 올해는 정말 훈련이 부족했다.
아무리 기록 욕심이 없더라도 완주라도 하려면 장거리 훈련 기본 세트는 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너무너무 부족했다.
챌린지 풀 완주를 장거리 훈련 삼아 퉁 치고, 정말 동마에게 염치 없고 미안한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다.
완주할 수 있을까? 완주는 해야 하는데... 심각한 고민이었다.
대회 전날 생애 최초로 교통비 1만원을 고이 접어 힙색에 넣었다. 쓸 일이 없어야 할텐데...
다행히도 우리의 독코치 독거미님이 서브4 열차를 운행하겠다고 한다. 일단 함께 가기로 했다. 끝까지 갈 자신은 없었지만 가는 데 까지만 같이 가 보자, 혼자 가는 것보단 외롭지 않을 거야...
드디어 출발.
배동성에 호명되는 영광을 누리며 예상보다 조금 빠른 페이스로 달려 나간다. 몸 상태에 신경을 바짝 써 본다. 오늘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초반 몸 상태는 좀 무거웠지만 중반으로 접어 들며 점점 가벼워 진다. 너무 푹 잘 쉬어서 피로가 남아 있지 않아 그런가보다.
달리는 내내 페메 독거미님은 정속 주행을 하며 급수를 지도(?)하고 물 스폰지도 챙겨 주고, 심지어는 강풍에 날아 간 내 모자까지 줏어다 주며 잘 이끌어 주었다.
페메의 힘인가?
후반에 접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몸 상태는 괜찮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거지 말짱할 리는 없지 않은가? 어느 순간 헉헉 호흡이 가빠지고 자세가 앞으로 쏠리고 있다. 이럴 때마다 독코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신기하게도 힘들면 호흡이 무너지는데 억지로 호흡을 잡으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다. 힘들어서 숨이 가쁜데 숨을 잘 쉬면 힘든 게 나이 지는 신기한 현상!
후반에는 항상 쥐가 나서 고생도 하고 기록도 많이 까먹어서 이번에는 쥐를 위한 준비를 좀 했었다. 25, 35km에서 먹을 식초 맛이 고약한 쥐 예방 약(크램픽스)을 챙겨 와서 하나씩 마셔 주었다. 이놈 맛 때문인가 피로가 좀 쌓이니 속이 좀 거북한 느낌이 든다.
35km를 지나니 슬금슬금 종아리와 허벅지가 움찔움찔 한다. 살짝 속도를 줄이며 쥐를 달래 본다.
지치고 힘든 때 우리 응원단을 만났는데 정말 반가왔고 격려가 되었다. 속이 좋지 않아 길동무님이 제조하신 불살라표 수류탄을 마다하고 그냥 지나 왔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체력은 10초 정도 페이스는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조금 무리한 힘을 주면 다리에서 쥐가 움찔거린다. 오히려 평속보다 조금 늦추며 어르고 달래며 잠실로 접어 들었다.
쥐가 날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여기까지 이렇게 멀쩡히 왔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결승점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 갔다. 출발부터 지금까지 앞선 주자들을 계속 추월하며 달렸었는데 마지막엔 속도가 좀 늦어졌고 다른 주자들은 스퍼트를 하고 있어 역전을 많이 허용해 줬다.
드디어 골인!
완주를 못 할 줄 알았는데 너끈히 완주했을 뿐 아니라 넉넉한 서브4 기록까지, 성적도 좋았다.
독거미님께 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하다. 혼자 달렸으면 이렇게 해 낼 수 없었겠지.
나중에 페이스를 봤더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크루즈 주행이었다. 역시 믿고 보는 칼페메 독거미!
여태 풀 마라톤을 달리며 이븐 페이스로 경기를 마쳐본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은 35km까지 들쭉날쭉하며 달려 오다가 거기부터 결승점까지는 뚝 떨어진 페이스로 들어 왔는데 이건 순전히 페메 덕이라 본다.
쥐도 나지 않았는데 이것 또한 신기했다. 항상 35km 이후에는 쥐가 나서 몇 분을 까먹고 몸도 마음도 상했었는데...
감사하고 흐뭇하게 대회를 마쳤다.
대회 내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응원하며 사진 챙겨 준 홍보부장님과 꼼꼼하게 준비해서 응원과 보급에 힘 써 준 자봉팀에 감사 드린다. 우리가 즐겁고 무탈하게 달릴 수 있는 건 모두 H2O가족의 지원과 응원 덕분인 걸 또 한 번 느끼는 대회였다.
그리고, 쥐가 고질병이라 쥐를 위한 준비를 많이 했었는데 이 중 뭐가 주효했는 지 좀 파 봐야 하겠다. 5번인가? 6번인가?
1. 매일 마그네슘 챙겨 먹기
2. 대회 날 아침 마그네슘 앰플 먹기
3. 대회 때 경기 중후반에 쥐 예방약 먹기
4. 대회 때 스폰지 물을 짜서 허벅지와 종아리 식혀 주기
5. 뛰는 내내 독거미 눈치 보며 정신 무장
6. 매일 종아리 마시지기로 뭉친 종아리 풀어 주기
첫댓글 매회 꾸준하게 풀을 완주하신 내배야님 축하드려요^^
여러가지로 시행착오를 겪어 본 경험으로
다음 메이져대회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수고하셨습니다 ~~^^
페이스만 보면 독거미님이란 분 뛰어다니는 AI 아니었을까 싶네 ㅋㅋ
멋진 기록 내고 잘 달린 내배야~ 많이 많이 이번에 수고했어
그리고 선택지 가운데 주효한 거?? 다 맞아~ 그만큼 준비를 하지 않은게 아니라 준비도 잘 하고 대회에 집중했다는 말이잖아
2019년 11월 jtbc 제마에서 저백마와 러닝메이트 내배야 형님을 전 기억합니다.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하프지점에서 저를 보내주던 기억~ 먼저가라고… 꼭 성공하라며 보내주던 기억. 꼭 도와드리겠습니다. 화이팅 ~,
ㅎㅎㅎㅎ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
생생한 후기덕에 다시 한번 마음잡아서 가을전설을 써내려가고 네요~~수고 했어요
수고했어 ~~
담번에는 330 가즈아~~!!!
페이스가 죽이네요~
작년 동마때 에대장님과 배신의 레이스와 비교돼는군요~ ㅋㅋ
발목잡던 변수도 잘관리해서 이겨내시고 장거리 출퇴근 하며 부족한 훈련량임에도 썹4 완주 축하드립니다.
P.S 독거미님 썹4열차 운행하느라 고생했어요~
나도 독거미님 페매 받고 싶다. ㅎ
ㅎㅎㅎㅎㅎ 가을에 풀 310 열차에 탑승하실래요??
잘 달렸다~~~
다음엔
330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