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낯 뜨거운 현실: 목사안수와 서리집사
황대우 교수
(고신대학교 개혁주의 학술원)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녀의 아버지가 최태민이고 목사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종합총회는 급조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건재하단다. 현재 종합총회의 총회장인 전기영 목사는 진술하기를, 총회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총회가 가난해서 10만원 받고 목사 안수를 남발할 때였다.”1) 그는 당시 총회장이 홍00이었고 후에 최태민에게 돈을 받고 총회장 자리를 넘긴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자신도 종합총회 신학교에서 교회헌법 강의를 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으라고 해서 받았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너무 뻔뻔한 인터뷰가 아닌가?
종합총회 총회장이라는 전기영 목사도 사실 따지고 보면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가짜 목사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신학교 다니지 않았는데 가짜냐?’ ‘초대교회의 아타나시우스도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라고 하실 분들이 틀림없이 있다. 이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12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께 직접 배우지 않았는가? 아타나시우스는 집사였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에게 사사 받은 그의 제자였지 않은가? 그 때와 지금은 분명 시대와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다.
1970년대는 이미 대한민국에 신학교들이 많았고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최태민과 전기영은 그런 교육과정을 밟지 않고 그냥 목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최태민이 목사가 된 것은 명백하게 성직매매에 해당한다. 전기영 목사도 결코 떳떳하지 못한 입장일 텐데 인터뷰까지 하고 거기다가 종합총회가 초창기에 가난하여 돈을 받고 목사직을 팔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분명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럼 종합총회는 초창기에 시작한 성직매매를 언제까지 했는지, 언제 가난을 벗어난 총회가 되었는지 심히 궁금하다.
최태민은 목사가 되기 전에 ‘영세교’를 만들어 교주 행세를 하던 자였는데, 그를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오로지 돈이 아쉬워서 목사로 만들었다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명칭만 ‘대한예수교장로회’이지 이단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 곳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모든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들은 비분강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럴만한 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많은 기존교회들도 따지고 보면 교리만 그럴듯하지 실상은 종합총회와 별단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기존 교회에서도 성직매매와 유사한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장로와 권사와 안수집사가 되려면 얼마를 교회에 헌금해야 한다는 통념이 불문율처럼 고정되어 있단다. 특히 교회건축을 앞둔 교회들이 건축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직분자를 대거 세우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빚을 내어 교회를 개척했다가 감당이 되지 않아 결국 교회를 판다고 내어 놓을 때 교인수를 계산해서 사고파는 행위나,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교회가 재정난을 호소하면서 후임목사에게 전임목사의 전별금이나 은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행위 등과 같은 모든 행위는 현대판 성직매매라 할 수 있다.
교회는 돈 앞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순간에 홀려서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 안타까운 일은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가 돈의 권력 앞에 쉽게 무릎을 꿇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생명과 사람을 중시하기는커녕 교인을 돈으로 계산하는 지경이니 어디서부터 이런 심각한 세속화의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모를 일이다. 한마디로 답도 출구도 없다. 거기다가 한국교회가 양산한 이단들은 좀 많은가? 이단은 역사적으로 보면 기존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단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재 상황은 하나님께서 기존교회에 보내는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도 많은 교회들을 전전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그녀도 죄인이고 우리 모두도 죄인인 것을! 죄인이 찾는 곳이 교회이니 사람을 가려서 교회에 출입시키는 것이 오히려 교회답지 못한 처사일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교회를 다녔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한 때 ‘집사’였다는 것이다. 물론 ‘서리집사’였다. 그 교회는 최순실뿐만 아니라, 그녀의 언니 최순득도 서리집사로 임명했단다. 서리집사로 임명은 했지만 그 교회의 교인이나 심지어 담임목사조차도 그 두 자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잘 몰랐다는 것은 지금처럼 이 정도의 사람일 줄은 몰랐다는 뜻이리라.
이 설명을 들은 기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을 집사로 임명하는 것이 이해 가지 않는다고 말하자, 돌아온 대답이 이렇다. “교인이 적을 때여서 한 명이라도 잡아 두려고 한 것이다. 그때는 한 사람이 아쉬웠다.”2)
즉 교회가 교회에 잘 나오도록 할 목적으로 그녀에게 ‘서리집사’ 직분을 주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고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이런 일이 기존교회에서 결코 낯선 것은 아니다. 다른 교회 다니던 세례교인이 새로운 교회에서 1-2년 출석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서리집사’가 되는데, 이런 일은 이미 기존교회의 통념과 관행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최순실도 어느 교회에서 ‘서리집사’였던 적이 있다. 그 교회도 기존교회의 통념과 관행에 따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녀를 ‘서리집사’로 임명했을 것이다. 최순실에게 ‘서리집사’ 직분을 준 이유는 당시 교인이 얼마 되지 않아서 한 사람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것이 그 교회의 설명이다. 아마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교회의 일방적인 임명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런 통념과 관행은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만드는 심각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서리집사’는 한국교회 초기에 [장립]집사를 세울만한 사람이 없을 때 임시로 재정을 맡아 처리한 직분자로 세워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장립]집사를 세울 수 있고 세웠음에도 불고하고 서리집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에 붙잡아 놓기 위한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에게 서리집사 직분을 준 교회의 문제는 비단 그러한 잘못된 관행에 따른 것만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녀가 세례를 받았는지, 받았다면 어디서 받았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녀를 서리집사로 임명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교인이 교회를 이동할 때 이전 교회에서 이명증을 발급받아서 새로운 교회에 제출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요즘 거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교회 교인이 찾아오면 세례를 받았으리라 지레짐작한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서리집사로 임명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최순실의 경우가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최순실이 세례를 받지 않았는데 ‘서리집사’로 임명했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례 받지 않은 자를 교회 직분자로 세우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의 회원인 교인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도 아닌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한 것과 같은 꼴이다. 그녀가 세례를 받았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최소한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기 전에, 먼저 세례를 받았는지, 받았다면 그 세례가 그 교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정당한 것인지 반드시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세상 앞에 교회는 무엇인가? 신도를 하나라도 더 모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값싼 복음의 교회인가? 아니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죄인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값진 복음의 교회인가?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제발 종교개혁에 부끄럽지 않은 후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부끄럽다. 낯이 뜨거울 정도로 심히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