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영화배우 도널드 서덜랜드가 숙환 끝에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며 역시 배우인 키퍼 서덜랜드는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 아버지 도널드 서덜랜드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영화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좋거나 나쁘거나 추악한 배역에 얽매이지 않았고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사랑했으며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잘 산 인생이었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20일(현지시간) 전했다. 사망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반 세기 이상 영화계에 종사하며 '헝거 게임'과 '던 룩 나우' 등 200편 가까운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남겼다.
부고를 들은 영화계 인사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2001년 TV 영화 '업라이징'에 함께 출연했던 캐리 엘웨스는 인스타그램에 사망 소식에 "황망했다"고 털어놓으며 "키퍼 때문에 마음 아프다. 그를 알고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했다. 우리 사랑을 보내드린다"고 적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고인을 처음 만났을 때 "깊이 깊이 별에 받친" 느낌이었다고 돌아본 뒤 "마음을 다해 키퍼와 서덜랜드 가족 전체와 함께 하며 모든 캐나다인들이 의심할 여지 없이 슬퍼할 것이며 나 역시 지금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은 강한 존재감에다 영민한 재능을 겸비했으며 진짜 진짜 위대한 캐나다 예술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백 드래프트'(1991)에서 고인의 연기를 지도했던 론 하워드 감독은 "역대 영화배우 가운데 가장 지적이며 재미있고 빛나는 이들 중 한 명"이라고 추모했다.
1935년 캐나다 뉴브룬스윅에서 태어난 고인은 라디오 뉴스 기자를 시작으로 1957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런던 음악 및 드라마연기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영국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조그만 배역을 따내 연기도 했다. 연기 초반 '더티 더즌'(1967)과 '켈리의 영웅들', '야전병원 M*A*S*H'(1970) 같은 전쟁영화들에서 굵직한 배역을 따냈다.
고인은 제인 폰다와 앨런 파쿨라 감독의 스릴러 'Klute'(1971)에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추며 2년이나 사귀었다. 이 영화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고급 콜걸의 도움을 받는 형사를 다뤘다.
1970년대 그는 '독수리 착륙하다'(The Eagle Has Landed)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대원으로, '애니멀 하우스의 악동들'(National Lampoon's Animal House)에서 대마초를 빨아대는 대학 교수로도 변신했다. 그리고 리메이크작 '시체 강탈자의 침입'(1978)에서 주연을 맡았다. 오스카 수상작 '보통사람들'에서 자살하는 10대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2000년대 TV로 눈을 돌려 '더티 섹시 머니'와 '코맨더 인 칩' 등 시리즈에 얼굴을 내밀었다.
수많은 배역을 맡았는데도 정작 그는 한 차례도 오스카 후보로 지명된 적이 없었다. 2017년 명예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뿐이다. 배우로 일하며 세상일에 관심이 많아 정치적 행동에 곧잘 나선 것으로 유명했다. 제인 폰다와 함께 베트남전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자신의 소신을 '헝거 게임 2편'의 전체주의 대통령 스노 역할에 녹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인은 2015년 BBC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정치사회 메시지가 젊은 팬들에게 세상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또 영화업계가 가장 바뀐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배우들이 "많은 돈을" 번다는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누구도 돈을 벌겠다고 배우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난 여기(런던 무대)에서 일주일에 8파운드를 벌었다. 그 뒤 로열 무대에 섰을 때도 일주일에 17파운드를 받았다. 1964년의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그는 연기에서 은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열정적으로 노력을 다할 뿐이다. 배우에게 은퇴란 대문자로 'DEATH'(죽음)"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배우 이순재 씨가 얼마 전 한 영화 시상식에 초대받아 들려준 얘기와 거의 똑같다.
고인의 회고록 'Made Up, But Still True'가 오는 11월 출간될 예정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고인의 모습이 그리운 이들은 스티븐 킹 원작, 존 리 행콕 감독의 영화 '해리건 씨의 전화기'(2022)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