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한 장교가 사병들에게 무신론을 교육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하늘을 쳐다보게 한 후 하나님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안 보인다고 하자 그는 고로 하나님은 없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어떤 병사가 앞으로 나가더니 손가락으로 장교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지금 이 장교의 뇌가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물었습니다. 병사들이 안 보인다고 하자 그 병사는 말하길 "여러분 이 장교는 골 빈 장교입니다" 했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속마음을 환히 비추며 들추어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무식해서가 아니고 악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없이 살면 우선은 편합니다. 세상을 막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책망하는 신이니 하나님을 믿으면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자기가 법이니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다. 편합니다. 특히 우상을 섬기는 자는 윤리를 요구하지 않으니 편합니다. 남을 거꾸러 넘어뜨리고 싶으면 그 사람의 화상을 벽에 걸어놓고 화살을 던집니다. 그래도 무당은 아무 말 않습니다. 오히려 비법이라고 가르칩니다. 언젠가 밤섬에 전국 무속인들이 야유회를 왔습니다. 전국에서 왔으니 수백 명이 모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곳 관리인이 하는 말이 '그 여자들 대단하대요 웬만한 남자들은 어림도 없겠습디다'하였습니다. 술을 먹고 노는데 그야말로 웃기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무당은 윤리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그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당연히 계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고, 그 하나님에 대한 간증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사고 방식입니다. 또 계시의 종교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사람들에게 말씀 하셨는데, 그 신을 보고 체험했는데 무슨 더 이상 논쟁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그러나 헬라인들은 신에 대해서 끝없는 논쟁을 해왔습니다. 철학적인 과학적인 사고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어쨌든 신의 존재에 대해선 있다고 합의를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보면 신의 존재는 간단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의 존재부터 너무 신비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를 욕할 때 '후레자식'혹은 '호래자식'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없으니 멋대로 컸다는 것입니다. 예의도 모르고 버르장머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멋대로 삽니다. 자신을 다스릴 법이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 싸우다가도 아버지가 오실 때쯤이면 그치고 아무 짓도 안한 것처럼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분명히 모시고 살고 계십니까? 한번 확인해 봅시다.
당신도 하나님 없이 당신 마음대로 사는 것이 편하고 좋겠다는 생각을 혹 가질 때는 없으십니까?
시 14: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마 10:28, 사 66:2, 호 3:5)
몸을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늘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참된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도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참효자라면 부모를 멸시하거나 경홀히 여기지 않고 도리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경외심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는 '믿음' 이란 말 대신에 '하나님을 경외한다' 혹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는 말로 많이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온전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가볍게 보는 것은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삼상 2:30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막연하게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만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의 모습과 생활 속에 영향을 미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합니다
사 66:2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권고(眷顧)라고 하는 말은 '돌봐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을 돌보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참으로 공경하고 잘 섬기는 자식이라면 부모의 말씀을 두렵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이,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꼼짝 못하는 그런 경외심이 있어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일 뿐이지 참 신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머리로는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아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한다면 그 말씀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어기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되고 이로써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에스라 9장에 보면, 에스라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보니 제사장을 비롯해 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인과 혼인하고, 성일을 범하고,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에스라는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잠 13:13에 보면 "말씀을 멸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떨 줄 아는 자라야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큰 상급을 주시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를 귀중히 보지 않고 축복하지 않기에 패망하고 맙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불순종하고 제멋대로 하던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성신이 떠나 악신에 사로잡혀 미친 짓을 하며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다가 전장에서 패망하여 자기 아들들과 더불어 전사하였습니다. 대하 36:15-20에도 보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 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 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 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비웃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백성들의 말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떨 줄모르고 멸시하고 경홀히 여긴다면 그는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할 수 없으며 그렇듯 거짓된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국 타락하고 패망하고 맙니다. 2.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을 두려워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을 심히 두려워 합니다. 시 4:4에 보면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참 신앙입니다. 사람 눈에만 들키지 않으면 죄짓는 일을 식은 죽 먹듯 하고, 범죄하고도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며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큰 징계와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못 보시는 곳이 없이 온 땅을 두루 다 살펴 보시는 분이며 또 인간의 행위 모두를 감찰하시고 저울에 달아 보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그러한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는 성도들은 진정 죄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에라도 어쩌다가 죄를 졌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언젠가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고 졸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죄를 두려워한 사람이었기에 암흑 시대에 흑암의 장막을 걷어 치우는 위대한 종교 개혁자가 된 것입니다. 요셉이 청년 시절, 애굽 군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노릇을 할 때 뜻밖에 주인 집 장군의 아내가 그 미모와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로 다가서면서 사랑을 고백해 올 때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 39:9) 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이라고 정욕적인 본능이 없거나 그녀가 싫었겠습니까? 오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그 분 앞에서 범죄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요셉은 결국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 심히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일시적인 죄악의 쾌락보다도 죄의 결과로 오는 심판이 수백배 수천배 더 크고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고 범죄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돼야겠습니다. 그것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두려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고 난 뒤에 감사하고 감격할 뿐 아니라 "나같이 부족한 것이 이런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받다니" 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혹시 그것으로 인해 연약한 자신이 교만케 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이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이요, '교만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을 사람' 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 인 것입니다. 고후 3:5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족할 모든 행복을 느낄 때 그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한 나머지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 8:12에도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했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은금이 증식되고 부자로 잘 살게 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호 2:8-10에도 보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축복을 두려움으로 받지 않고 경솔하게 받아 교만해지고 이기적인 만족만을 채우는 자는 그 축복이 도리어 저주로 변하는 비참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로 우리 모두는 축복을 받을 때 그것을 끝까지 축복으로 지키기 위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진정한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범죄함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두려움으로 받을 줄 아는 자가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 신앙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보장해 주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시고 축복 위에 축복을 더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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