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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의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초 전성기였습니다. 계속되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일본으로 쏟아지는 세계의 돈은 일본이 '영국→미국→일본'처럼 세계의 초 강대국이 될것이다. 라는 전 세계인들의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햇습니다. 또 시어스그룹(Sears, Roebuck and Company)을 비롯, 서방의 수많은 기업들이 일본의 경영시스템, 사회시스템을 배우고, 실제로 적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기도 하였던 때가 이 때였습니다.
자연히 돈이 흘러들어오면 사람인 이상 '엉뚱한 데'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대영제국도 전성기땐 사치가 심해졌고, 미국도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부유층들의 낭비가 헤퍼지기도 했습니다.
버블경제로 호황을 누리게 된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금박초밥, 순금욕조, 명품싹쓸이 등.. 이러한 여파는 철도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개국 30주년을 맞아 초대형 이벤트를 계획하려는 후지TV와 예전부터 호화열차 운행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국철(JNR)이 주축이 되어, 오리엔트 급행을 일본에 달리게 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리엔트 급행을 일본에서 운행시키기 위해서, 먼저 오리엔트급행을 정기 운행하는 베니스-생플롱 오리엔트 급행(VSOE)과 일본 국철(JNR)과의 교섭이 시작됩니다. 이미 1986년 5월 VSOE의 경영진이 일본을 방문하여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었으며, 협의는 10월에 다시 시작되어 대략적인 계획의 초안이 드러납니다. 일단 오리엔트 급행을 일본에 달리게 하는데 총 2억 6천만엔이 예상되었습니다. (약 20억원)
1987년 4월, 일본국철이 JR 5개사로 분리되면서 이 계획을 이어받은 곳은 동일본여객철도 주식회사(이하 JR동일본)였습니다. 운행에 필요한 일본 내의 조사를 끝마치고 JR동일본과 후지TV의 관계자가 VSOE를 방문, 최종적인 '대여'금액을 협상, 대여계약을 체결하려 하였으나, VSOE측이 높은 대여료를 요구함으로써, 결국 계약은 실패하고 맙니다.
수포로만 돌아갈 줄 알았던 오리엔트 88 프로젝트를 부활시키기 위해 대안으로 제시된 곳이 스위스에서 부정기로 오리엔트 급행을 운영하는 NIOE (Nostalgie Istanbul Orient Express)였습니다. JR동일본과 후지TV는 1988년 4월부터 3개월간의 교섭 끝에 마침내 NIOE의 차량을 빌리는 데 성공합니다.
1987년 8월, 일본국내에서의 운행계획이 확정되었습니다. 동시에, 오리엔트급행을 대륙철도를 통해 일본으로 수송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본 외무성, JR 그룹 대표는 주요 연선의 정부 및 철도운영기관들과 협의, 운행협조를 받아냅니다.
특히 긴 노선이었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운영하는 소련과의 협의는 당시 페레스트레이카의 영향으로 운행협약 및 안전보장에 호의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으며, 반일감정이 많은 중국 정부와의 협의에서도 진통은 있었으나 운행협약을 이끌어 냅니다.
드디어 1988년 9월 7일, 오리엔트 급행은 일본까지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운행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파리(9월 7일 출발)→베를린→바르샤바→모스크바→노보시비리스크→이르쿠츠크→하얼빈→북경→홍콩(9월 26일 도착)
일본으로 오는 도중, 60여명의 승객을 태워 영업운전도 하였습니다. 영업운전거리는 약 10800Km에 달했으며, 표준궤→광궤→표준궤에 맞게 국경도시에서의 대차변환도 있었습니다. 또한 각국에서 운행대기상태로 보존중이던 증기기관차가 자국 구간에서 일부 견인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오리엔트 급행을 견인했던 증기기관차들이었습니다.
*중국구간을 운행한 증기기관차 전진호(前進號)는 자료부족의 한계로 사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오리엔트 특급의 편성은 다음과 같이 편성되었습니다.
1. 침대차(Lx형)
1929년부터 사용된 침대차의 Lx는 디럭스를 의미합니다. Lx16은 정원이 16명. Lx20은 정원이 20명에, 침실은 1인용, 2인용의 컴파트먼트가 있으며, 낮에는 승차감이 좋은 소파, 밤에는 침대로 개조가 가능하였습니다. Lx16형 차량 5량과 Lx20형 차량 1량이 편성되었습니다.
2. 풀맨형 차량(Pullman Car)
이 형식의 차량은 호화열차 제작으로 명성을 얻은 Pullman Co.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929년부터 사용된 이차량의 좌석배치는 컴파트먼트와 우리나라 KTX와 비슷한 동반석(2인)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차내 장식으로는 마호가니를 사용한 목재 세공, 크리스탈 칸막이 창, 황동제 램프 등 훌륭한 공예품들이 배치되었습니다
3. 식당차
1927년에 제작되었으며,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등의 공식 만찬 자리로 사용되었습니다. 식당차는 크게 2부분으로 나뉘어서 18석의 큰 테이블이 있어 리셉션이나 만찬장소로 활용이 가능한 뒷쪽 공간과, 12석의 개별 테이블이 있는 전면 공간으로 나뉘었습니다.
4. 바아 형 차량(Voiture Bar)
1929년에 제작되었으며, 원형은 풀맨형 차량이었으나 개조를 하여 세부적인 디자인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5. 화물차
식료품의 저장을 위한 냉장고와 조리실이 배치되었습니다. 또 차륜형 발전기와 함께 냉장고용, 냉동고용 디젤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6. 승무원용 침대차
2인용과 3인용 컴파트먼트가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6명이었습니다.
각 차량의 주요제원표.
차종 |
침대차 |
침대차 |
승무원용침대차 |
식당차 |
풀맨형 |
바아형 |
화물차 |
기호 |
WLA Lx16 |
WLA Lx20 |
WLA YU |
WR |
WSP |
ARP |
D |
차호 |
3537 3542A 3487 3472 3480 |
3551 |
3909 |
3354D |
4158 |
4164 |
1286 |
정원 |
16명 1인별실 : 4개 2인별실 : 6개 |
20명
2인별실 : 10개 |
26명 2인별실 : 7개 3인별실 : 4개 |
30명
좌석수 30석 |
28명
좌석수 28석 |
28명
좌석수 28석 |
0 |
전체길이 (mm) |
23,452 |
23,452 |
23,452 |
23,452 |
23,452 |
23,452 |
20,810 |
차체길이 (mm) |
22,200 |
22,200 |
22,200 |
22,200 |
22,200 |
22,200 |
19,560 |
차폭 (mm) |
2,884 |
2,884 |
2,865 |
2,864 |
2,882 |
2,882 |
2,828 |
높이(레일면상) (mm) |
4,200 |
4,200 |
4,225 |
4,225 |
4,213 |
4,213 |
4,180 |
대차중심간거리 (mm) |
16,000 |
16,000 |
16,000 |
16,000 |
16,000 |
16,000 |
14,250 |
연결기높이 (mm) |
1,050 |
1,050 |
1,050 |
1,050 |
1,050 |
1,050 |
1,050 |
공차중량 (톤) |
48~51 |
51 |
51 |
57 |
50 |
51 |
40 |
만차중량 (톤) |
50~53 |
53 |
53 |
59 |
52 |
53 |
45 |
대차형식 |
PP/PL |
PP |
PL |
PL |
PP |
PP |
PL |
연결기방식 |
나사식 |
나사식 |
나사식 |
나사식 |
나사식 |
나사식 |
나사식 |
난방방식 (연료:석탄) |
라지에이터 |
라지에이터 |
라지에이터 |
라지에이터 |
라지에이터 |
라지에이터 |
라지에이터 |
물탱크용량 (리터) |
520 |
520 |
520 |
780 |
520 |
520 |
870 |
화장실 |
화학식 |
화학식 |
화학식 |
없음 |
화학식 |
화학식 |
|
전원 (차륜발전기방식) |
DC 72V |
DC 72V |
DC 72V |
DC 48V |
DC 24V |
DC 24V |
DC 110V |
비고 |
|
|
|
석탄 레인지 냉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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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
15KVA 디젤발전기 냉장고, 냉동고 |
9월 26일 홍콩에 도착한 오리엔트 급행열차는 곧 야마구치현 구다마츠항에 입항, 10월 6일부터 히다치제작소 및 오오미야공장에서 일본 국내를 달리기 위한 대대적인 개조를 거치게 됩니다.
히다치제작소, 오오미야공장에서 작업한 주요 내용을 열거해보면..
1. 표준궤→협궤 변환
2. 일본의 차량한계에 맞추기 위해 승강용 발판철거 및 지붕 개조
3. 연결기 높이 변경(1050mm→1020mm)
4. 방송장치, 화재경보기 추가
5. 조리실에 자동소화장치 추가 (세이칸 터널 통과용)
6. 대대적인 대차 개조(TR47형 대차)
7. 디젤발전기 용량 증가(15Kva → 40Kva)
기존 오리엔트 특급의 발전방식은 차륜형 발전방식이어서 협궤로 바꾸면서 여기에 맞는 벨트와 발전기를 구비시키는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기에, 임시변통으로 디젤발전기의 용량을 늘리고 전기선을 연결하여 2달간 차륜발전기방식→디젤발전방식 로 변환하기로 합니다.
8. 일본과 유럽의 열차 연결기의 방식이 다르므로 객차와 기관차 사이에 공차인 마니 50형과 오니 23형을 사이에 추가, 상호연결 (사진참고)
열차연결은 기관차-오니 23형간에는 자동연결기, 오니23형-오리엔트 급행열차 사이에는 나사식 연결기를 설치. (오니 23형 열차 내에는 히다치제 Highvision을 설치, 히다치 제품 홍보열차로 활용)
9. 제동용 공기통 및 제동변을 일본기준으로 개조 및 별도 부품 제조.
10. JR선에서의 영업을 위해, 차적은 JR동일본 시나가와 운전소에 임시로 소속시키고, 별도로 오리엔트 급행을 위한 정원.형식.자중.환산 등의 검수항목이 포함. 또 국제열차운행에 관여하기 위해서 JR동일본이 UIC(국제철도연맹)에 가입.
마지막으로 오리엔트 급행의 열차는 일본 규격보다 길이가 약 3m정도 길었기 때문에, 곡선통과시에 교행하는 열차 또는 시설물에 충돌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행구간을 주요 간선축에 한정시키고, 운행에 지장을 줄수 있는 800여군데 중 300여 군데에는 궤도를 이설시킵니다.
이런 다사다난한 문제를 해결한 끝에, 파리에서 출발한 지 약 1달여 후인 드디어 10월 17일 히로시마~도쿄간 오리엔트 급행이 운행을 개시합니다. 당시 스위스 국철에서 유명한 다니엘 귀페라 차장이 오리엔트 급행의 차장으로 발차전호를 했는데, 2m의 큰 키에, 호기심많은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 친절한 쇼맨십과 팬 서비스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취미가 철도모형이라는것도 언론취재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오리엔트 급행은 12월 25일까지 약 2개월간 조에쓰선(上越線) 신에쓰본선(信越本線) 호쿠리쿠본선(北陸本線) 고세이선(湖西線) 도카이도본선(東海道本線) 산요본선(山陽本線) 가고시마본선(鹿児島本線) 등 일본의 주요 간선을 순회운행 및 열차를 전시하여 일반인 및 철도동호인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았습니다.
12월 25일 일본내에서의 모든 영업운전을 끝내고 12월 26일 시나가와역에서의 마지막 전시후, 열차들은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어 스위스로 돌아갔습니다.
오리엔트 급행이 JR 각 회사에 미친 영향은 커서, JR북해도는 기존 운행중이던 호쿠토세이(北斗星)의 1인실, 2인실의 추가 및, 대대적인 차내시설을 개조, 향상시켰으며, 그 이듬해 JR동일본이 유메쿠칸(夢空間)을, JR서일본이 트와일라이트 익스프레스(Twilight Express)를 영업운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리엔트 88 기념 오렌지 카드.
-출처-
최경수, 海外 여러나라의 鐵道 消息, 1990년, 한국철도
Http://www.bluetrain.jp/orient_express1.shtml
Http://www.keb.co.kr
Http://8.pro.tok2.com
Http://www.parowozy.pl
Http://dlok.de
Http://www.ocn.ne.jp
Http://http://ja.wikipedia.org/wiki/
Http://www.orient-express.ch/
Http://yvaugeois.free.fr/dossier/LE%20TRAIN%20CAPITALE/LTC1.htm
Http://www.geocities.jp/tnk_ko/gallery/orient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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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열차에대해 정말 궁굼하였는데... 의문점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전 초 뻘짓이었군요...-_- 일단 대차를 싹 바꾸는것 자체가... 그나저나 객차를 데고이치가 끌었군요 ㅎㅎ
한국에 왔다면 궤간을 바꾸는 수고는 안 해도 됐을 텐데... 이제 경의선과 동해선이 복원되었으니 외국열차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네요.
이제 우리도 한번 추진을 해보자고 전국 일주 순환선으로^^
오리엔트 특급이 오스트리아 열차가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