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가 눈부신 달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간월암’
장원급제 꿈에 부푼 선비 달빛따라 고개 넘던 ‘문경새재’
강원 강릉 경포호에서 펼쳐진 달맞이축제. 사진제공=강릉시
농경사회에서 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다. 따라서 유난히 크고 밝은 달이 뜨는 추석이면 하늘을 보며 소원을 비는 달맞이가 고유 풍습이 됐다. 전남지역에서는 남보다 먼저 달을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아들이 없는 사람이 먼저 달을 보도록 양보했고, 충남지역에서는 추석날 달이 잘 보여야 보리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사실 달의 크기는 일년 내내 변하지 않는다. 다만 지구를 타원형으로 공전하는 만큼 때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보일 뿐이다. 특히 하늘이 청명한데다 달이 평상시보다 지평선 가까이에서 떠오르는 추석이면 더욱 크고 선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 도와준 달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추석 보름달이 유독 더 크게 보이는 건 아닐까. 올 추석, 온 가족이 손잡고 달맞이하러 가기 좋은 곳을 소개한다.
●강원 강릉 경포대
호수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자인 경포대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강원도 내 손꼽히는 달맞이 명소다. 이에 당대 수많은 문인이 경포대를 찾아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는데, 안에는 율곡 선생이 열살 때 달을 보며 지은 시 ‘경포대부’ 판각이 걸려 있다.
또 정자와 주변 경포호에서는 추석 당일이면 해마다 달맞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열두번째인 이 행사에서는 민요ㆍ무용ㆍ마술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충남 서산 간월암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뭍이 되는 조그만 바위섬에 자리 잡은 암자다.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눈부신 달빛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해서 간월(看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명언을 남긴 성철스님도 한동안 머물렀는데, 매월 보름이면 하늘과 물 위에 뜬 두개의 보름달이 장관을 이룬다. 달이 뜨기 전 볼 수 있는 낙조 풍경이 아름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남 영암 월출산
‘달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이면 보름달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야경이 아름다워 조선 세조 때 시인이자 생육신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은 “달은 맑은 하늘에 뜨는 것이 아니라 월출산에 뜬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수 하춘화의 ‘영암아리랑’ 역시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뜨는 장면을 노래한 것이라고. 월출산국립공원은 면적이 56.22㎢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국립공원인데, 풍경이 마치 금강산을 옮겨놓은 것 같다 하여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경북 문경 문경새재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거치던 고갯길로, 나무 사이로 비추는 달빛이 장관이다. 그 옛날 수많은 선비가 장원급제의 꿈에 부푼 채 이곳을 지나갔을 터. 당시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오로지 달빛에 의존해 고개를 넘었는데, 오늘날 이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상품이 마련돼 있다.
매월 1회 보름이 가까운 토요일이면 문경새재달빛사랑여행 행사가 진행되는 것. 올해로 12년째인 이 행사는 앞으로 9월24일과 10월15일 두차례 더 열릴 예정이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 길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와우산 중턱에 자리 잡은 언덕길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다보면 부산 앞바다는 물론 시내 전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에 밤이면 휘영청 밝은 달과 어우러진 도시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길 꼭대기에 있는 달맞이동산에는 해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월출은 백두산 천지 등과 함께 대한팔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