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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은 석가모니부처님 열반재일이다. ‘열반’은 죽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불어 끈다[吹滅]’는 뜻으로 번뇌의 뜨거운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 즉 궁극적인 최상의 경계를 체득한 경지이다. 부처님의 열반 당시를 잘 묘사해놓은 경전이 있는데, <대반열반경>이다.
<대반열반경>은 장아함 2권∼4권에 해당하고, 장부경전(Dīgha-nikāya) 33경 가운데 하나이다. 경전 내용은 부처님께서 만년에 열반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영취산을 출발해 코티 마을∼나다카 마을∼상업도시 베살리∼입멸 장소인 쿠시나가라에 도착해 편안히 열반할 때까지의 여정을 그대로 묘사한 경전이다. 이 경에 부처님의 인간적인 풍모와 초기불교 사상이 드러나 있는데, 몇 내용을 보기로 하자.
부처님께서 베살리를 지나면서 아침 일찍, 발우를 들고 마을로 탁발하러 나갔다. 베살리 마을을 돌며 탁발 공양을 마치고 마을을 나오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부처님께서 마치 코끼리가 사물을 바라보듯 지긋이 베살리 마을을 돌아보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여래가 베살리 마을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반다 마을로 가도록 하자.”
아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난아! 나는 늙고, 몸이 많이 쇠하였다. 아난아! 나의 육신은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의해 매여 있는 것처럼 겨우 움직인다. 이렇듯이 나의 몸도 가죽 끈의 도움을 받아서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아난아!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할지라도 이별하고 헤어지는 때가 있느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 또한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졌다면 잠시 사용되어지다 언젠가는 없어지게 된다. 머지않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이렇게 쿠시나가라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파마 마을에 도착한다. 부처님께서 마을의 대장장이 춘다의 소유지인 망고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춘다는 부처님께 공양청을 하자, 다음날 제자들과 함께 춘다의 집으로 갔다. 춘다는 부처님께 스카라 맛다바(Sūkaramaddava)라는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드신 후, 피가 섞인 설사를 계속하는 병고가 시작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병이 심각하신데도 바른 사념思念을 갖추고 선정에 들어 병고에 흔들리지 않았다. 병이 조금 차도가 있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쿠시나가라로 향해 출발하자고 말씀하셨다.
이후 부처님과 제자들이 쿠시나가라(열반한 장소)로 향하는 3개월의 유행동안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을 모이게 한뒤 교단을 염려하고, 마지막 진리를 설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많은 비구들이 대장장이 춘다에게 이런 비난을 할지도 모른다. ‘춘다가 올린 공양을 드시고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춘다가 부처님을 입멸케 하였으니 그는 공덕이나 복덕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춘다에게 이런 비난이 쏟아진다면, 춘다에게 이렇게 위로하여라. ‘그대 춘다여, 조금도 후회할 것 없소. 당신이 올린 최후 공양을 드신 뒤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는 것은 당신에게 경사스러운 일이오. 부처님께 최후로 보시한 공덕은 다른 어느 때 공양보다도 매우 수승한 공덕이오. 그 공덕과 복덕이란 춘다가 장수하며, 다음 세상에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안락을 누리며, 명예를 얻고, 천계天界에 태어날 수 있는 복덕이다. 또한 왕후로 태어날 수 있는 선업을 쌓은 것이다.’ 아난아, 꼭 이렇게 춘다를 위로하고 변호해 주어라.”
아무리 위대한 성자이지만, 당신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에게 쏟아질 비난까지 걱정하고 있는 대비심을 갖기란 쉽지 않다. 미국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1921∼1980)은 부처님의 최후 식사와 예수의 최후 만찬을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부처님은 대장장이 춘다가 만들어 준 음식을 맛있다며 고마워 하셨다. 또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춘다의 공양으로 인해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춘다를 비난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는 만찬석에서 12인의 제자 중 한명인 유다를 저주하며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분명히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마태복음』)’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에서도 아버지가 자식 걱정하듯 모든 중생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다른 종교는 교주의 탄생을 기준으로 정하지만, 불교는 부처님 열반을 기준으로 한다[佛紀]. 열반이란 최고의 완성! 부처님처럼 인격의 최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