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lowfly : 반딧불이
-6-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파도 모으는 작은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비바람이 저 바다를 덮어, 산을 이룬 거센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 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이어 바다를 비친다...."
다시한번 벤치 주위를 울리는 나의 목소리가 되돌이 되어 들려온다. 그의 목소리로.
나의 노래는 거의 발라드와 R&B뿐이다. 아는 노래도 별로 없다.
내가 좋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외우고,
내가 나쁘게 생각하면 부르지 않고, 듣지도 않는 곡이 대다수이다.
Meav의 높고 가는 음성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이,
그녀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잘부른다....또 다른건 없어?"
"....없어."
"또불러줘. "
"이젠 싫어. "
"치..."
아랫입술이 삐져나온 그의 부루퉁한 볼이, 순식간에 붉어진 일은 그 다음이었다.
그의 살랑이는 옅은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내 얼굴을 때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머릴 단정히 해 주기 위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는 나의 그 행동으로 볼이 붉어졌다는 사실밖에 알 수 없었다.
5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고, 나는 자리에서 바지를 털고 일어나,
가만히 내 손길을 느끼던 그들을 놔 두고 먼저 반으로 돌아왔다.
6교시는 음악이었다. 월요일 6교시가 음악이라....음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다.
하지만, 선생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별로..겠지?
***
음악실은 넓었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예고의 층층이 음악실이었다.
피아노는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그랜드 피아노 2호(소형 그랜드피아노)였고,
그 외에도 많은 악기들이 놓여있었지만,
그 많은 악기들을, 무지 약해 보이는 음악선생이 다 다룰까 싶었다.
음악선생은 비실비실한 남자선생이었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는 들어줄 만 했다.
노래도 잘 하는 것 같았고, 그의 음성에는 알게 모르게 리듬이 섞여 있었다.
강약, 강약, 또는 강약중간약....
즐거웠다.
마지막에는 모차르트 소나타 7번의 3악장을 들으면서 나는 잠을 청했다.
아이들 대다수가 그러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음악은...그가 죽고 나서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모차르트의 곡이 다 끝나고 나자마자, 6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 7교시가 남았을때,
갑자기 숨이 텁텁 막혀옴을 느낀 나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초봄. 아직 겨울이 다 가시지 않은 때라, 해가 짧아 딱 알맞은 시간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옥상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을 느낄때,
나는 문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하늘과, 붉은 빛의 구름들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붉고 주홍빛의 하늘에, 간간히 구름사이의 그 붉은 빛이 구름이 테두리를 이루는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조그마한 문밖으로 보이는 커다랗고 붉은 아름다움의 하늘은......내가 작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무리 내가 괴물이라도, 하늘을 찌를 수 있는 괴물이라도, 하늘은, 너무나도 커서.........
***
"아파......"
가슴이 아팠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늘은 그저 한번 돌아봐 주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름다운 하늘은, 내가 동경하는 넓고 깊음.
하지만 하늘은 내가 그를 동경하는 것 조차 방관하고만 있었다.
마치, "동경을 하던 말던 나와는 상관 없어.."라는듯이.
외로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붉은 하늘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는 그 아름다움에, 또 하늘의 붉은 외로움에 몸을 사렸다.
드러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는 내 눈도 붉으리라.
붉은 하늘을 보고 있어서 내 눈동자도 붉으리라.
"하아.....그냥 집에 갈까...아, 이젠 집이 아니지..."
이젠 하숙집인데....
대충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을까.
옥상문이 열리면서 낮의 그녀석들이 보였다. 그녀석들도 나를 보았으리라.
남궁 유가 쫄레쫄레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매우 뻘쭘하고 경쾌한 그 발걸음이 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 안녕!!"
뻘쭘한 인사.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친해지려고 말을 걸어오는 듯이.
그는 뻘쭘하게 다가와 뻘쭘한 인사를 내비쳤다. 나는 그를 흘끔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노을빛을 받아 붉은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있는게, 너무 귀여워 보였다.
제대로 웃어주고 싶었는데......어떻게 웃더라.....?
***
"수업 끝났어. 내려가. "
"너 반장이야?"
"아니, 선도!!"
"그래서, 집에 가라고?"
"응!!"
"나 하숙생인데, 주인이 있을까? 큭큭,."
"음음.....음...주인 없으면 내가 같이 가서 기달려 줄께!!"
"됐다. 먼저 내려간다. "
귀여운 그 아이의 뻘쭘한 행동은, 나를 거부하는듯 허락하는 것 같았다.
뭐랄까, 한마디로 귀여운 강아지 이지만 자신을 물려고 하는 강아지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그"가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냉정해 지는 나이기에,
"사람은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어떻게는 만나고, 어떻게든 헤어지면서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지.
웃을 수 없는, 아니 웃어서는 안돼는 우리도, 결국은 사람이야.
사랑을 하고, 우정을 쌓고, 어떻게든 인연으로 만나서 인연으로 헤어지지.
결국, 모든 사람들은 혼자가 아닌거야. 우린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야...."
그렇게 둘이서만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생각하던 우리는 결국 인연으로 헤어졌다.
그와 나 단 둘.
그의 시신을 화장시키고 뿌린 것은 오직 나 혼자 뿐이었다.
다른 반달원들은 그저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나는 그후, 그의 뒤를 이어서 수장이 되었고, 나는 2년동안 웃지못할, 아니 웃어서는 안돼는 세상을 살았다.
이름없이,. 혼자서.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그말.
그의 말이 오늘처럼 이 계단을 내려가는 때에 너무나도 아련히 들리는 것은 단순한 내 착각일까.
그의 인연 운운하던 말은, 오늘처럼 인연으로 그 아이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사람은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어......
***
"일산 4동....7XX-1번지.....여기...맞군."
-딩..동....찰칵
"어서오세요!!!!"
하숙집에 도착하여 벨을 누르기 전 바라본 집은, 내가 수장으로 있을때 살던 집과 비슷한 고급주택이었다.
2층집에, 방이 6개 정도 되어보이는, 정원이 아담하게 놓여있고, 잘리지 않은 잔디들이 풍성한......
정말 내가 살던 집과 비슷한 곳이었다.
"어...."
"아, 안녕!!"
두번째다. 이 아이들을 만나고 부터 남궁유와 인사를 나누는 것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인사를 받아주는 것은.
나를 반겨주던 밝은 4명의 아이들의 모습은, 이 집주인이 이녀석들 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뭐랄까.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거북스러웠다.
물론 이녀석들과 함께 살면 재미있기도 하겠지만,
평소 반달이 주의하여 지켜보던 이 아이들과의 동거인으로 낙인 찍히게 되어 나도 같이 관찰 받는다.
그럼 당연히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고.....
반달과의 약속(도움을 주겠다는)은 언젠가가 아니라, 좀 더 빠른 시일이 될 것이다.
보름이가 멍청하지 않다면, 나는 꽤 빠르게 발각 될 것이다. 제발, 그럴 일이 없기를..
"어, 어서와!!음음, 여기가 네방이야!!우리는 여자앤지 남자앤지 몰라서 그냥 우리취향대로 꾸몄는데!!괜찮은가?"
"잠잘데가 있다면 문제없어. "
"움...그렇구나....그래도 잘 꾸몄지?"
칭찬받고 싶어하는 건가.....
"그래. 고생했다. 짐까지 정리할 필요는 없었는데...고맙다."
속옷까지 미리 보내지 않길 잘했다. 짐정리를 집주인이 할 것 같아서 속옷은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다행이군.
(속옷은 전에 살던 집 관리인에게 맡겨두었었다.)
"우리보다 빨리 나갔는데 왜 우리보다 더 늦었어?"
"....전에 살던 집 처분때문에 관리인하고 부동산 갔었어."
"그, 그렇구나!! 시, 신은 부잔가보네!!"
"그렇다고 떼먹을 생각하지마. "
"응??그, 그럴리가~!!"
"말 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나 너 안잡아 먹으니까. "
"그, 그래도 돼나?"
"네가 언제 존대했었냐? 이왕 말할꺼면 똑바로 더듬지 말고 하란 소리야."
"응!!"
내가 가지고 온 짐정리를 하고 나서 (속옷은 대충 구겨 넣었다. 이따 다시해야지..)침대에 누우니,
뻘쭘히 서 있는 그가 방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서 (안나가고 뭐하나..)
그에게 물었다.
"뭐하냐?"
"아...그러니까...심심해서...."
"심심하면 놀아."
"하루는 책읽고 있고, 유선이는 마사지 중이야. 그리고 선명이는 또 컴퓨터 잡고 있는걸.."
"너 뭐하고 놀았냐?"
"응? 유선이랑 같이 마사지 했었어.."
"....하아..."
남자가 마사지 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하긴, 그렇게 좋은 피부를 유지하려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지.
예민한 사람은 조금만 스트레스가 쌓여도 뾰루지가 생기거나 얼굴이 푸석해지니까.
"그래서. 나보고 놀아주라고?"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럼 뭐야?"
"그게,....씨이...심심해서.."
"놀아달란 소리잖아."
"그, 그렇지.."
".....나갈래?"
"엉?"
"나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지리 모른다고. 안내시켜줘."
매우 심심해 하는 것 같길래, 나는 그의 뻘쭘하고 야리하게 생긴것 답지않게 듬직한 어깨를 붙잡고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뭐, 배고프면 밖에서 사먹고, 옷도 살겸......나가야 겠지.
아무래도 지금 가지고 있는 옷들은 아무리 처분을 했어도 위태위태하니까.
"저기, 음..신아, 애, 애들하고 같이 나가자."
"맘대로 해. "
"...응!!"
그게 그렇게 기쁜 걸까. 도도도도 달려가는 그의 발걸음은 웃을수는 없지만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어떻게 웃더라.......?
-7-
"하아....너네 그동안 뭐먹고 살았냐?"
"시켜먹었지."
"...돈이 썩어나는 놈들. 후우.....집 가까운데 마트같은거 있냐?"
"응. 가게?"
"그래. 가자. "
내 옷과 신발, 교복 여벌을 사고 배고프지 않냐는 물음에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오늘은 뭐 시켜 먹을까?"였다.
시켜먹는다는 말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적어도 음식을 할 줄 모른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누가 음식을 만들어 주지도 않고, 그냥 돈내고 자기들이 사먹었다, 이말이 아닌가.
내참, 시켜먹는 음식이 뭐가 맛있을까. 분명히 인상을 찡그리면서 먹었을게 분명하다.
자취(친구들끼리 함께 사는게 자취인게 아닐지도 모르지만..)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해먹지 못한다는게 말이되나?
젠장. 하숙집이라서 오랜만에 남과 같이 밥을 먹나 했는데, 아무래도 식사준비는 또 그렇듯 내가 해야 할 것 같다.
"뭐할껀데 감자랑 야채를 많이사?"
"일단은 카레."
"카레? 너 카레 잘해?"
"혼자산지 17년 이거든."
"우윽, 너 그동안 어떻게 산거냐? 어렸을땐 뭐먹고 컸어?"
"밥먹고 컸다. 어찌어찌 쥐어주더라고. "
"하긴, 네얼굴에 안쥐어주면 진짜 범죄다."
친해진걸까. 익숙한 듯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들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음식을 한다는 것이 생소할 것이리라. 하지만 민하루, 그 아이만큼은 매우 책이 고픈건지,
걸어다니면서까지 책을 읽고 있었다. 시집이라.....그 아이가 읽고있는 책은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이었다.
저거...나도 읽고 싶었는데...다음에 언제 한번 빌려볼까....
감자, 당근, 쇠고기, 카레가루, 식초, 과일, 쌀, 냄비, 국자, 등등 많은 것들을 그녀석들 돈으로 사고
(나는 하숙생이므로 돈 지불 안함)
배달을 붙여 부가세까지 포함하여 17만원.
어떻게 집이라는 곳에 냄비등등 식기구들이 없을수가 있지???
그러고 보니 아무리 음식못하는 자취집이라도 냄비와 식기는 있었다.
이 아이들의 냉장고에는 양주 돈페리(이건 차게해서 먹어야 함)와 맥주, 소주, 생수병.
이게 다였다. 정말이지.....불쌍한 놈들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배달붙인 물건들이 배달로 왔고, 나는 그중에서 꽤 커다란 냄비와 밥솥을 골라 씻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민하루는 방으로 들어간지 오래고, 안선명은 식탁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으며,
재수없게도 정유선은 내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놀리고 있었다. 심히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남궁유는...안선명 옆에서 턱을 괴고 앉아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 했다.
(뒤에 눈이 달려있지 않아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
밥은 다 지어졌지만, 아직 카레가 완성되지 않았다. 가루가 아직 덜 풀렸지만,
응어리가 약간씩 지기시작하여 조금만 더 저으면 완전히 다 될 것 같았다.
색을 좋게 하는 푸른야채들을 넣고, 널찍한 접시 다섯개에 만들어 놓은 샐러드를 한쪽 귀퉁이에 조금씩 알맞게 담았다.
방울 토마토가 다 정리 되고 나서 밥을 담고, 밥 옆의 공간에서부터 정유선이 휙휙 젖고 있던 카레를 부었다.
딱 알맞은 시간 내에 완성이 되어서 한창 배가 고플 시간에 아이들을 불러 밥을 먹었다.
민하루는 밥을 먹으라고 해도 꼼짝 안할 것 같았지만 배가 고팠는지 먹으라는 말에 책을 덮고 식탁으로 슬슬 기어들어왔다.
(기어들어온 건 아니다. 느긋하게 걸어들어왔지만, 배고픈 강아지 같아서 그렇게 표현 한 것이다.)
안선명도 노트북을 지 방에 가져다 놓고 다시 내려와서 밥을 먹었다. 딱 알맞은 양들에, 잘 배분되어 있는 카레의 양은,
먹는 사람이나 만든 사람이나 기분좋게 보였다.
김치를 담그기에는 아직 늦은 시간이라서 (나 김치 담글줄도 안다.)그냥 마트에서 산 김치를 그릇에 담아와
이미 놓여있는 단무지 옆에 놔 두었다.
7시반......그래. 고등학생들에게는 배가 고플 때이다.
한창 클 나이때라 그런지, 두접시 세접시를 해치우고 나서야 설거지를 하겠다며 일어서는 안선명이었다.
언제 누가 설거지를 한다고 정한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내가 밥을 하기에,
자신들이 번갈아 가면서 설거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릇을 치우는 안선명을 보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칫솔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고급주택은 역시 뭔가가 다른다. 방 마다 샤워실(화장실)이 다 있다. 하, 돈이 많으면 혜택이 많다.......라.....
불공평하긴.....
이빨을 닦고 있는데, 남궁유가 어떤 공책을 들고 내방으로 기어들어왔다.
손에는 앙증맞은 연필(샤프가 아니라 놀랬다)이 들려있었다.
지금 말하건데, 남궁유가 귀엽게 생기기는 해도 180이 넘어가는 키를 소유했다.
그래, 그 아이의 커다란 손에 앙증맞은 공책과 연필은 뭔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끄적거리는 모습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세수까지 하고나서 그 아이가 하는 것을 지켜보려는데, 그 아이는 급히 그 공책을 덮었다.
"일기?"
"응!!있잖아, 나는 매일매일 일기를 써!! 오늘은 신이를 만난 날이야!!"
"그래? 그래서 일기를 여기서 쓰는거야?"
"아니. 유선이한테 쫓겨났어."
"왜?"
"유선이가 자기방은 너무 어질러져 있다고 오늘은 내방에서 잔대. 손님방도 있는데.."
"한대 패지 그랬냐? 그녀석이 너보다 약하잖아?"
"움~그래도..."
"...니 맘대로 해라. "
나는 털썩하고는 벽을 기대고 앉아 생각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건 그의 모습.
반달을 나오고 나서야 그가 했던 말, 그의 행동, 그의 목소리 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왜 반달에 있을때는 떠오르지 않았을까....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그리워 지는 그인데.....
"그리움이라는 것은 흉터야. 기쁜 일이든, 슬픈일이든 어떻게든 모든 상처와 같지.
슬픈일만 상처가 되는건 아니니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슬픈일만을 자신의 상처라고 생각해.
기쁜일은 기억이라고 생각하지만.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아니잖아.
기쁜일이든 슬픈일이든 기억에 남는다면 그게 기억이고, 그게 상처야. 둘 다 똑같은 거지.
그리움이라는 것은 그 기쁨과 슬픔이 뒤얽혀서 반복되는것이야. 그때 그시절이었다면...하고 돌이키는 거지.
나는 적어도, 그리움이라는 감정까지 없어졌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조차도, 아직은 어린아이인거야..."
중독성을 헤제하는 약이 나올 때까지, 나는 어쩔수 없는 그의 허락으로 계속하겨 천재양성교육을 받아왔다.
그가 해준 말은 나에게 세계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흑과 백, 둘 모두를 바라보는 데미안과도 같았다.
데미안이라.....나에게 데미안은, 그저, 모든 사람들의 바램일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흑과 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세계를 병양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고, 인간이고, 동물이었다. 어떤 생명체이든......
"무슨생각해?"
"아....그냥...과거생각."
"과거?"
"난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줄 아냐. 과거란게 있는거야, 나도..."
"응..."
막상 나오니까 하는일이 없다. 이러다가 놈팡이가 되는건 아닐까.....
"신아."
"어."
"요 지하에, 하루가 특별히 설계해서 만들어놓은데 있거든? 운동장인데, 갈래?"
"글쎄...."
"킥킥, 샌드백도 있는데, 그건 어제 하루가 연습하다가 힘을 너무 많이줘서 터져버렸어."
"그래?"
"그렇다니까!! 그때 황당해하는 하루 표정 정말 웃긴거 있지?"
"......흠......하루한테 책이나 빌려봐야지."
"책?"
"운동은 그냥 하고싶을때 하면 되는거고....지금은 읽고싶은 책이 있어서..."
"움...하루 책 많으니까 뭐든 빌려봐!!그럼 나는 일기를 더 써야겠어!! 나 지금 두장째야!!"
무슨 일기를 두장씩이나.......
귀여운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 없는 남궁유의 말을 끝으로, 나는 그저 한번 바라봐 주고는 방에서 나왔다.
분명....민하루의 방이....일층 큰방이었을텐데....
-똑똑. ......딸칵
".....누구?"
"나."
"신?"
"그래. 왜? 내가 오니까 이상한가?"
"아니, 그건 아니고. 왜?"
"책좀 빌려줘."
"뭐?"
"책읽는거 보니까 나도 읽고싶어져서. 빌려도 되지?"
"그래."
"그럼 골라갈께, 볼일 봐."
나의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침대로 올라가 벽에 등을 누이고 읽던 책을 읽었다.
민하루의 방은 고급 주택의 큰방 답게 넓었다. 뭐랄까, 너무 큰 고급주택은 아니지만(큰 곳은 서재가 따로 있다.),
충분히 서재소리를 들을 만큼 책이 많은 곳이었다. 종이냄새가 시큼하게 펴지는 곳까지 도달할때, 나는 어떤 책을 발견했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 용해원]
"그거 볼거냐?"
"...그럴래."
"그래."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난 그의 넓은 가슴판에 잠시 놀랬던 나였다.
키가 나보다 좀더 큰 (민하루도 180이 넘는다. )그는 손을 번쩍 들어올려, 두꺼운 책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세계전집 60선. 단테의 신곡 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리마조프네 형제들까지, 주르륵 놓여있는 세계전집 60선은
내 눈을 황홀케 했다.
도데체, 몇권의 책들이나 있는건지......
"일단은 이거 빌려갈께. 다음에 다른거 빌려가도 되지?"
"관리 잘한다면."
"걱정마. 남의책 망가뜨릴만큼 성격안좋은 놈은 아니니까."
"넌 여자라고 공갈을 해도 믿을 수 있어."
"역시 키가 남자보다 작아서 그러는거냐?"
"그 이유도 이유지만 넌 너무 부드러워."
"니가 언제 나를 안았었냐?"
"말이 그렇다는 얘기야. "
서로를 무심히 쳐다보는 가운데, 방에 있는 남궁유가 걸려서 올라간다라는 말을 하고 방문을 열어제꼈다.
맙소사. 주르륵 문에서 떼어져 나가는 세명의 남자애들이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흐르는 식은땀, 다 쓴 듯한 일기를 팔랑이며 날 보고 어색하게 웃는 남궁유의 시선과,
마찬가지고 휘파람을 불며 베란다 밖을 바라보는 정유선의 어색한 행동,
황급히 타자를 치는 듯 하지만, 계속 잘못되는지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는 안선명.
"엿들었군."
"멍청한 놈들. "
처음 내뱉은 나의 말과, 이어서 내뱉는 민하루의 말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나왔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라서, 어떻게 생각하면 마음이 잘맞는 친구끼리, 어떤 놈들을 궁지로 몰아세워가며 놀리는 것 같았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놈하고 오해를 받을 사이가 되버렸지?
"에휴~솔직히 너네 대화를 듣는데, 너네는 말이 너무 짧아서 살벌했단거 알어?"
정유선이 투덜대면서 말을 이어내려갔다.
"무슨 말이, 그거 빌리꺼냐, 그래, 담에 또 빌려도 되냐. 이게 뭐야~!!"
"불만있어?"
동시에 튀어나오는 나와 민하루의 말.
"휴....."
서로를 바라보다 똑같이 내뱉는 한숨.
그리고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깊고 선명한 반응.
안선명은 놀란 눈으로 안경너머로 우리에게 시선을 던지고,
우리를 쳐다보며 투덜대던 정유선은 입을 벌린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어깨에 힘이 빠진 듯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넋이 나가 유체이탈을 하려는 듯한 그의 포즈는 너무나도 코믹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궁유는.......공책을 떨어뜨리고 무진장 복잡한 눈으로 우리둘 사이의 공간을 바라봤다.
민하루와 나 사이의 공간. 그곳에는 개한마리가 있었다.
..................개??
***
웃고싶었지만 웃을수가 없었다.
나는 그아이가 너무나도 복잡한 표정이었기에, 혹시 민하루와 내가 호모가 되는 상상이라도 했나보다 하면서
말을 내뱉으려 고개를 돌렸는데,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아멜리칸 푸들이 꼬리를 흔들며 나와 민하루 사이에 서있었고,
그 개를 보자마자, 남궁유는 "체리야!!"하면서 달려들어 그 개를 데리고 자기방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유선와 안선명은 개를 보자마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알레르긴가 보다) 민하루는 한숨을 쉬며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석은 웃을 수 있어서 부러웠다. 등을 돌릴때의 "후후, "하는 소리는 결코 내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웃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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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인가요..?
성시연재는 아니더라도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솔직히 a glowfly : 반딧불이 는 조금 딸리는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도 봐 주시니 choir은 기뻐서 항상 웃음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이제 겨울이네요...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구요^^
안녕히 주무세요^^
tomato5822@hanmail.net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a glowfly : 반딧불이 -6~7-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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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2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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