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의 참새들 이야기 지 석 동
나는 택시도 오기 싫어하는 삼양동 791번지에서 사는 참새입니다. 참새 수명 3년에 2년을 조금 더 산 무리의 지도자입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천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조상들이 언제 이곳으로 이주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모르지만, 짐작컨대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터를 잡은 뒤에 우리 조상도 따라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삶에 기대어왔기 때문이죠.
대대로 신세를 지고 살아온 족속으로 늘 이곳 주민에게 감사함을 지니고 삽니다. 그래 우리가 보답할 방법을 찾았지만, 갚을 도리가 없어 아침마다 재재대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 소린 정말 정성을 다해서 하는 칭송의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속 모르고 새벽부터 재재댄다고 짜증을 부리는 속 좁은 분들이 있더군요.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뜻을 모르는 잠투정입니다. 우리가 꾀꼬리나 휘파람새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아마 그들이 와서 노래해도 듣기 싫다고 할 분들이죠.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우리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할 겁니다.
요즘같이 매일 비가 쏟아지면 우리는 들어앉아 한숨만 푹푹 쉰답니다. 벌써 닷새째 내리니 먹지 못해서 나오는 소립니다. 이런 장마에는 자주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 예로, 어제는 놀이터 뒷집 점박이네 서 새끼를 하나 버렸는데, 오늘 아침에는 돌식당 긴꼬리네서 둘, 약수암 뒷골목 김 상사 집에 사는 왕눈이 형제도 둘씩이나 버렸어요. 원수 같은 비가 이대로 쏟아진다면 아마 올해 낳은 자식들을 다 가슴에 묻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은 50년 전에 박 누구라는 분이 보릿고개를 없애주어 절대 빈곤은 모르고 산다지만, 우리는 아직도 비만 오면 주려요. 그분같이 고속도를 뚫고 새마을운동을 일으켜 해결될 일이 아닌 영원한 주림의 삶이죠.
이런 때 우리에게도 구호물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지금껏 도와준 분들이 있어 새끼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신촌슈퍼 골목 두 번째 집 자폐증을 앓는 아이는 저 먹는 걸 나눠주어 고마웠고. 약수암 옆 골목 세 번째 집 할메도 자식들이 사다 준 걸 먹기 좋게 부숴서까지 주어 새끼들 먹이기 좋았습니다. 차밍미장원 주인도 손님이 없어 심심하면 빵이나 과자부스러기를 주고 먹는 걸 구경해, 시간만 잘 맞추면 24그램인 우리가 배곯는 일은 없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새끼를 잘 키워 왔는데 워낙 비가 세차게 내리니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높은 곳마다 십자가고 동네마다 절인데, 그 속에 들어앉은 높은 분들은 물난리로 여러 목숨이 끊어지고 집과 농경지가 절단 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손발 놓고 앉았으니 칭송을 받아도 되나요. 평생 콩나물 팔아 모은 돈 몽땅 대학에 내놓는 할머니. 폐지 주어 판돈으로 주린 입을 돕는 할아버지. 걸식아동을 도우며 자식 목에 밥 넘어가는 것같이 좋아하는 아줌마가 얼마나 더 훌륭한 사랑이고 자비의 실천입니까. 차라리 이분들을 걸어놓고 칭송하는 편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말 난 김에 두어 마디 더하겠습니다. 사실 우리야 얌체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지만, 지난날을 생각하면 우린 한 지붕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 사이죠. 지금이야 자연보호라는 명분 아래 우리를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지만,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타고난 수명을 다 살기 어려웠습니다. 눈 쌓인 겨울밤에 손전등 든 사람 서넛이 나타나면 우리는 떼죽음을 당했으니까요. 고작 호두만 한 몸에서 털과 속 빼고 나면 뭐 있다고 침 흘리고 다니며 학살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배고파 그랬다고 하지만 우리가 먹은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가 한 짓이 생존을 위한 먹이 활동이라면. 사람들은 맛이라는 사치에서 출발해, 우리 씨를 말리려 했다는 점입니다. 한때 포장마차에서 우리가 안줏감으로 불티났던 사실로 맛의 사치가 증명되니까요. 여북하면 메추리나 병아리가 우리들 짝퉁 행세를 하느라 수난을 겪었을까요.
이왕 한말 한마디 더 할게요. 배고파서 새끼들 먹이려고 개밥 조금 먹는다고 신발 던지는 일 너무하지 않습니까. 개들이 먹고 남은 건데 그거 좀 먹는다고 해서 우리의 목숨은 생각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는 일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야 그날그날 생존을 위해 신세를 지지만, 당신들은 집을 늘리고 더 많은 땅을 가지려 손을 내밀고 눈을 속이지 않느냐고요. 하긴 수억이 떡값인 목구멍이니 부끄러움을 알 턱이 없겠죠.
돈을 들여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줄로 압니다. 제발 부탁인데 버리는 것 조금만 떼어 준다면 한 달을 비가 쏟아진대도 걱정 없이 새끼들 먹여 키울 터인데 꼭꼭 묶어 버리는 걸 보면 자연사랑이니 환경보호니 하는 말이 모두 헛구호같이 들립니다.
낱알 예닐곱 톨 벌레 몇 마리면 고달픈 목숨 이어가는 우리넨데, 오늘로 닷새째 퍼붓는 비 내일도 내린다니 삼양동의 참새들이 가혹한 주림을 견디고 살아남을지 걱정입니다.
그러나 삼양동 참새마을 지도자로 저는 감히 장담합니다. 우리 참새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대를 이어 살아남을 것이라고. 참새 만세! 삼양동 참새 만세! 2011. 7. 15.
첫댓글 어쩌면 참새의 속내를 이리도 잘 그려내셨는지, 읽는 내내 착각을 하였습니다. 정말 참새의 진짜 하소연인가하고...참새의 속사정을 이래 잘 헤아리시니 참새의 친구이신가봅니다.
홍시 님 안녕하세요.
비로 우는 사람이 많은데 무탈 하신지요.
이리 비가 많이 오니 새들의 삶도 고단하리라 싶어
눈을 도려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참새에 대한 좋은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새들 사는 세상이 우리 사는 세상이지요.
그들이 살 수 있어야 우리도 사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고맙습니다.
시사성이 깃들어 있는 글입니다.
재미있게 감상 했습니다.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결국 우리 이야기지요.
새들이 살 던 곳에 들어와 사는 우리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