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en In Black'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외계인이 지구에서 특별반의 감시 아래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간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꾸며가고 있다. 이 컨셉은 당시로서 참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로 판단되는 것이었고, 더불어서 실베스터 스탤론, 마이클 조던, 마이클 잭슨 등의 유명 스타들을 모두 외계인으로 표현하는 그 기발한 아이디어는 정말 많은 영화 팬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그 '위대한' 헐리우드 영화답게 지구상에 일어나는 엄청난 위험을 미국이 해결하는 결말을 지녔다는 역겨움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있을 법도 한 이야기다. 분명 우리가 살아가면서 볼 때,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듯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 말이다.
흔히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기인, 천재 등의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로서 표현해주고 또 그런 만큼 신기하게 바라보고는 한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사람들... 이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쁨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Men In Black'이 현실 속에서 있을 듯한 아이디어를 창출했다고 칭찬하기 이전에, 마이클 조던이나 마이클 잭슨보다 더 확실하게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외계인을 빼놓았다는 점에서 한번 질책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백히 인간의 개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나이, 보스턴 레드 삭스의 슈퍼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그 명단에 집어넣지 않았다니 말이다. 혹시 그 많은 사진 중 조그마한 컷으로 실렸었던가? 그런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설사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페드로를 가장 크게 부각시키지 않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그만 체구에서 나오는 폭풍 같은 투구 폼. 포심인지 투심인지 여하튼 타자에게 더없이 위력적이기만 한 패스트볼과,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스트레이트성을 지니는 써클 채인지업, 게다가 알 수 없는 변화를 보이는 커브까지... 인간이 지닐 수 없는 능력을 인간의 신체 내에서 표현해 내기에 부상을 밥먹듯이 당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 선수야말로 진정 외계인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나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비록 알파벳 순서대로 칼럼을 작성하고 있기에 부득이하게 페드로가 7번째로 나오게 되었지만, 실제로 만약 놀라움의 순서대로, 위대함의 순서대로 작성을 했다면 단연 이 녀석이 첫 번째로 나왔을 것이다. 현 메이저리그에서 아니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튼다 하더라도 이 선수만큼의 능력을 지닌 선수는 없으니 말이다. 현대 야구에서 이 정도의 도미네이트한 게임을 선보일 수 있는 선수는 오로지 페드로 뿐. 분명 역대 최고의 투구 능력을 지녔다는 월터 존슨이나 샌디 쿠팩스를 데려온다 하더라도, 페드로의 역사적인 투구들은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나이. 투구 하나만으로 모든 팬들을 흥분시키는 사나이. 삼진 하나로 구장에 모여있는 관중들의 분위기를 대번에 바꿔놓을 수 있는 사나이. 그 정도의 능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그 이름,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 말도 안 되는 투구 폼에 대한 분석
투구의 위력을 우선시 하는 투수들이라면, 마운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이 짜낼 수 있는 최대한이 힘을 짜내기 위해 많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앞의 칼럼들에서 설명했었다. 케빈 브라운이나 로저 클레멘스 같은 선수들이 모두 그런 스타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진정 위력 하나만을 탄생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짜내는 투수들일까? 물론 일반적인 투수들에 비교해 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외계인 페드로를 여기에 붙여 본다면 말은 달라진다. 어떻게 본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 컨트롤을 위한 투구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투수로 비춰질 지도 모르니 말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물론 최근 부상에 대한 의식이 많이 되는 듯 투구 폼이 어느 정도 얌전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발광'이라 표현하기 충분할 정도로 여전히 폭발적이다. 일단 기본적인 관점에서 그 빠른 딜리버리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딜리버리란 무엇인가? 와인드업에서 팔의 릴리스 순간까지, 그 때 까지 투수가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그 동작들을 이어가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렉 매덕스는 느리고 정적인 딜리버리를 지닌 투수이고, 케빈 브라운은 빠르고 역동적인 딜리버리를 지닌 투수인 셈이다.
그렇다면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그의 딜리버리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최근 개인적으로 제 2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로 이미 3년 전부터 점찍고 있는 로이 오스왈트가 페드로와 맞먹을 정도의 빠르고 역동적인 딜리버리를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부분에 관한 1인자는 페드로. 몸부림을 치는 듯한 그의 투구 폼은 정말 많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단 그 빠른 딜리버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투구 폼부터 분석해 보자.
먼저 와인드업을 볼까? 최근 루상에 주자가 없을 때에는 와인드업을 상당히 자제하는 편이지만, 그가 몬트리얼 엑스포스 내지는 초기 보스턴 시절에서는 킥킹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는 하이 킥킹을 보인다는 것이 아니다. 무릎을 최대한 올려 가슴 까기 닿게 하는 수준이었다는 것. 최근에는 퀵 모션에서만 어느 정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만, 페드로는 킥킹이 원래 상당히 높은 선수였다.
이어서 보폭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얘기. 발이 높아졌으니 투수판에서 훨씬 멀게 왼발의 착지점을 잡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앞에서 나온 칼럼들에서 넓은 보폭은 그만큼 큰 스윙을 만들기에 구질에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페드로가 강한 구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넓은 보폭은 부상으로 연결될 여지가 많다는 것. 자연히 발목에 많은 힘을 주고 있어야 땅을 제대로 누르고 있을 수 있기에 그 부분에 무리가 많이 가고, 더불어서 조금이라도 삐끗할 때에는 허리에까지 이상을 줄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박찬호가 왼발이 무너지면서 허리 부상을 입었던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항상 역동적인 투구 폼들은 부상의 여지를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페드로는 그 넓은 보폭을 감당할 만한 신체적 유연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래도 큰 무리 없이 투구를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디 힘을 주는 동작들이 킥킹과 보폭에서 마무리되는가. 페드로는 허리의 회전이 누구보다 빠르고 역동적이다. 빠른 동작으로 발이 먼저 나간만큼, 그 만큼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상체가 빨리 돌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 페드로는 그 속도를 충분히 감당할 만큼 유연한 허리와 유체적인 탄력성을 지니고 또 한번의 강력한 힘을 파생시키는 것이다. 허리를 빨리 돌릴 수 있다면 더 많은 힘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얘기. 마치 새총을 쏠 때 고무줄을 더 많이 당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를 보이는 것이다. 이 페드로의 허리 회전은 아마 그의 투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일 것이다.
더해서 그는 단순히 허리만 빠르게 돌려내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지켜보자면 허리를 회전시킴과 동시에 상체를 아예 반대편 쪽으로, 그러니까 페드로의 등 쪽에서 보자면 왼쪽으로 완벽하게 치우치게 해서 있는 한도의 원심력을 모두 얻어내는 듯한 폼을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투구 후에 오른 발이 반대편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면에서 보자면 '그 정도밖에' 부상당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렇게 허리가 빠르게, 그리고 다른 투수들보다 많이 돌아가는데 팔의 릴리스는 어찌 얌전히 끝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보다 강한 릴리스는 그의 공에 마지막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내는 것이다. 더불어서 그는 손가락도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상당히 길다. 이는 많은 힘이 많은 스핀을 걸어주는 것에 플러스 알파를 내주는 것. 쉽게 생각해서 팽이에 더 줄을 더 길게 감을수록 잘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손가락이 길면 그만큼 더 강한 스핀을 걸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투구 폼들이 바로 페드로의 그 엄청난 구질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위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고...
그럼 이쯤에서 앞에서 언급했었던 딜리버리를 다시 이야기해볼까?
페드로는 이렇게 킥킹에서 시작해서 릴리스까지 이어지는 동작을 상당히 빠르게 이어나간다. 아니, '상당히'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엄청나게 빠르다라는 표현도 과장이 아닐 듯 싶다. 같은 동작을 쓰더라도 딜리버리가 빠르다면 당연히 더 많은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논리. 아주 간단하게 팔의 투구에만 한정짓는다 하더라도, 빠른 스윙이 느린 스윙에 비해 더 많은 힘을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의 이런 빠른 딜리버리는, 결국 그 강한 투구 폼 보다 더 크게 강력한 구질 탄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있는 신체의 힘을 모두 짜낼 수 있는 투수가 있다는 것이... 최근에는 부상을 많이 의식하는 듯 퀵 모션에서만 이런 모습을 보이지만, 이전에는 정말 이런 폼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괴물 같은 존재가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였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도 반론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투수들도 페드로 같이 빠르고 역동적인 딜리버리와 투구 폼을 이용하면 위력적인 구질을 탄생시킬 수 있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허나 과연 메이저리그에 페드로만큼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지닌 투수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해봐야 마리아노 리베라나 로이 오스왈트 정도? 쉽게 말하자면, 이런 폼을 짜내도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투수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유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여기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
2. 그 엄청난 투구 폼, 어떻게 거기서 뛰어난 제구력이...
강력한 투구 폼은 강력한 구질을 탄생시키지만, 또 그 만큼 중심의 상실을 많이 가져오기에 제구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 이 부분은 이전에 누차 언급했던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 말을 페드로 마르티네즈에게 적용시켜보자. 그의 컨트롤은 어떤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페드로의 투구 폼에서 중심이란 없다. 이미 킥킹에서 잡힌 오른 발은 넓은 보폭으로 기능을 많이 상실했고, 더불어서 투구 후의 축이 되어 줄 왼발도 아무리 강한 발목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심을 지탱해 줄만큼의 안정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상체에서는 어떤가. 허리는 있는 힘껏 돌리다 못해 아예 상체가 반대쪽으로 넘어가도록 무식하게 힘줘버리고, 더불어서 릴리스도 워낙 강하게 해 투구 후에 온 몸이 반대편으로 쏠릴 정도이다. 여기서 중심을 잡는다고? 페드로의 투구에서는 어떤 일정한 중심 속에서 제구를 해낼 여지가 없어 보인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허나 그가 누구인가. 외계인 아닌가. 그런 폼 속에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중심을 잡아내 투구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어디 거기서 마무리되는가.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제구력은 분명 리그에서 알아주는 수준이라 할 만큼 뛰어나다. 결국 그는 다른 투수들이 지닐 수 없는 강력한 투구 폼을 지니고서도 훌륭한 수준의 제구까지 해낸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해명하라고 한다면 해명할 수 없다는 말 만 되풀이 할 수 있을 뿐이다. 분명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사실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무너지는 중심 속에서 자신만의 완벽한 중심을 찾아내 제구를 이뤄내고, 또 그 수준이 리그에서 손꼽히는 정도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해명할 수 없다. 오로지 그가 외계인이기에 이런 투구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이 녀석은 이렇게 투구 폼에서 그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 반을 가지고 들어간다. 엄청난 투구 폼에 빠른 딜리버리까지, 그리고 놀랍게 제구 해내는 능력도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부상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이렇게 능력은 외계인의 수준인데 몸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 말이다. 이전에 호나우도가 그 외계인 같은 엄청난 어귈리티와 액설레이션 능력을 감당하지 못할 인간의 무릎을 지녔기에 계속 부상당하는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기에 계속 부상에서 시달리는 것이다. 참... 대단한 녀석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재미있는 분석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그런 투구 폼 속에서 나오는 구질들을 찾아서 말이다.
3. 투심? 포심? 여하튼 엄청난 패스트볼
페드로가 역시 가장 위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는 구질은 패스트볼. 일단 공이 손에서 떠나면 가라앉지 않고 계속 스트레이트 성을 보이면서 비행을 하는데,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거의 없고 더해서 횡으로 끝없이 휘어나간다. (이전에 페드로의 속구는 초속보다 종속이 빠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믿고 싶지는 않지만 공이 손을 떠나면서 받는 팔의 힘에 의한 추진력보다, 막판에 가서 생기는 스핀에 의한 추진력이 더 강하게 생겨난다면 있을 법도 한 이야기다. 어디까지 페드로에 한해서 있을 법하다는 말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당연히 투심인 줄 알았다. 옆으로 그렇게 휘어나가는 포심이 어디 있단 말인가. 투심은 원래 사이드 스핀에 의한 횡적인 움직임과, 막판에 떨어지는 스핀력에 의한 (당연히 심을 두 부분 밖에 짚지 않았기에) 중력의 작용으로 종적인 움직임이 더해서 나타나는 것. 그래서 우완 투수가 던질 경우 남동쪽으로 휘어 가는 성향을 보이는 구질이다. 단 페드로에 있어서는 워낙 손가락이 길고 역동적 딜리버리에 따른 구질의 추진력이 대단해서 막판에 가서도 스핀이 떨어지지 않아, 종적인 움직임 없이 횡적인 움직임만을 보인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스카우팅 리포트 또한 이 구질을 투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허나 과연 그럴까? 페드로는 확실히 투심과 포심 둘 다를 던진다. 그렇다면 이 구질이 포심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까? 일반적으로 이 구질을 포심으로서 생각하기 힘든 것은 횡적인 움직임이 너무 많기 때문. 하지만 그가 여타 투수들에 비해서 팔각도가 많이 낮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생기지 않을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팔 각도가 누워 나오는 투수들은 종종 포심이 사이드 스핀을 먹어서 횡적인 움직임을 보이고는 한다. 쉽게 박찬호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박찬호가 지쳐서 팔이 내려올 경우에는, 포심이 사이드 스핀을 먹어 횡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묻지마 커브 역시 이런 원리에서 생기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뒤에서...) 허나 페드로는 그 정도 팔 각도에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 그렇게 뿌려대니... 물론 사이드 스핀이 여타 투수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적어서 횡적인 움직임이 거의 눈에 인식되지 않는 수준이라지만, 워낙 손가락이 길고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딜리버리를 지닌 페드로라면 말은 충분히 달라질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포심과 투심의 구분이 어느 정도 확연한 편이다. 웬만한 위급 상황이 아니면 역동적인 딜리버리를 잘 쓰지 않는 최근 페드로이기에, 이 두 구질은 확실히 구분되는 스트레이트성, 횡적인 움직임을 보이고는 한다. 그러나 이전의 그 횡으로만 계속 휘어나가는 스트레이트 성, 그것도 90마일 중 후반을 보이는 패스트볼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어떤 그립으로 던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궤적이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투심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 투심이고, 더불어서 아무래도 횡적인 움직임이 투심과 가깝기 때문. 하지만 페드로의 힘과 팔각도라면 충분히 포심일 가능성도 있기에 두 부분 다 언급하고 가는 것이다. 아마 1999년 올스타전에서 페드로가 MVP를 수상하며, 내셔널리그의 난다 긴다 하는 타자들을 농락했던 장면을 기억하는 팬들이 있다면 그 패스트볼이 얼마나 수상한 것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또 하나 그의 패스트볼에서 위력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구속의 조절. 이 부분은 최근 들어서 생겨난 부분인데, 페드로는 속구의 속도를 90마일 초반에서 후반까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물론 투수들이 한 게임에서 언제나 일정한 속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페드로만큼 매번 그렇게, 그리고 큰 차이로서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분명 위력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 워낙 힘을 많이 쓰는 투수이기에 단순한 조절만으로도 속도의 차를 확연히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에서 나비의 날개 짓은 미국에서 폭풍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페드로는 이 속구만으로도 타자들을 충분히 농락해 낼 수 있다. 워낙 많은 무브먼트를 보이고, 또 속도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다. (플레이트 가까이에서 급격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종속이 엄청 빠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페드로가 진정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능력치를 지닌 선수로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이 속구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위력적이라 할 수 있는 다른 구질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페드로는 진정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4. 역사상 최고의 채인지업, 그의 써클 채인지업
흔히 채인지업은 속구이 기생살이 구질로 꼽힌다. 오프 스피드를 이용하기 위해 탄생한 구질이기 때문. 투수들은 게임 내내 100개 넘는 투구를 하면서 속구만 던진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고,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채인지업이라는 느린 구질을 탄생시켜 투구의 묘를 살리기 시작했었다. 실로 이 채인지업은 정말 별 볼일 없는 구질이다. 단순히 속구와 같은 폼에서 비슷한 궤적으로 플레이트까지 날아간다는 점만 있을 뿐. 허나 머리를 잘 쓰는 투수에게 있어서는, 속구에 비해 속도가 훨씬 브려서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히 뺐을 수 있는 데다가 부상의 위험까지 없는 구질이기에 더 없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페드로의 채인지업은 이 정도 의미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그의 속구가 분명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위력적인 구질로 꼽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 확실한 사실은 그의 써클 채인지업이 역사상 최고의 채인지업으로 꼽힌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페드로의 속구는 월터 존슨, 놀란 라이언, 샌디 쿠팩스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평가되지만, 써클은 어떤 투수와도 비견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채인지업의 역사가 패스트볼에 비해 적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써클 채인지업은 일반적인 쓰리 핑거 채인지업에 비해서 많은 사이드 스핀을 보이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횡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허나 워낙 그립이 쉽지 않고 제대로 구사되지 않을 경우 제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에 투수들이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 구질. 이 구질의 대가가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인 것이다.
일단 그의 써클은 횡적인 움직임이 도를 뛰어넘는다. 채인지업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 거의 변화구의 수준에 가깝다. 혹자는 그래서 이 구질을 슬라이더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일부에서는 스크류볼이라고 말할 정도. 아마 이 정도 평가에서 그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서 스트레이트성도 상당하다. 워낙 많은 스핀이 먹기에 막판에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것. 최근에는 종적인 움직임이 꽤 많이 보이는 아쉬움이 생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스트레이트 성은 타 투수들의 그것에 비해 볼 때 놀라울 정도의 수준이다.
결국 페드로의 써클은 단순히 여타 투수들의 오프 스피드 차원을 뛰어넘어, 구질 자체에서 이미 타자들을 속이고 갈 수 있는 위력을 보이는 구질인 셈이다. 마치 페르난도 발렌주엘라를 연상시킬 정도의 구질이기에, 타자들은 속수 무책으로 이 구질에 넘어가고, 또 가장 상대하기 힘든 구질로 여지없이 꼽고는 한다.
그러나 위력이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써클 채인지업이 페드로가 던지는 속구와 궤적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 횡적인 움직임을 많이 보이면서 스트레이트성을 보인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타자는 일단 써클 채인지업 자체를 상대하면서 겪는 고충 외에, 비슷한 궤적의 속구와 타이밍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는 이중고를 안고 타석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페드로의 써클 채인지업이 그렇게 역사적인 구질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다.
5. 두 번 꺾이는 그의 커브
일단 페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윗 부분만 해도 충분히 마무리가 된다. 분명 그는 속구와 채인지업을 게임에서 거의 90% 가까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타자들은 이것도 적응하기 바빠서 헛손질을 하기 일수이고, 거의 페드로의 컨디션이 중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뱃에 맞추기 조차고 힘든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특이한 능력에 대해 하나 더 분석해보기 위해서 커브까지 들여다보기로 한다.
유명한 장면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뉴욕 양키스로 이적해 있는 라울 몬데시가 토론토 블루 제이스에서 뛰던 시절, 그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었다. 당연히 삼진으로 물러난 것은 예상되는 일. 허나 이 장면은 당시 CNN의 'Play Of The Day'로 꼽혔었는데,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었기 때문이다.
우타석에 들어서 있는 몬데시가 투 스트라익으로 볼 카운트가 몰려있는 상황. 페드로는 여기서 재미있게 거의 던지지 않는 커브를 과감하게 몬데시의 몸쪽으로 구사했다. 그러나 그 커브는 페드로의 손에서 벗어난 듯 몬데시의 머리 쪽을 향해 비행했고, 당연히 반사적으로 몬데시는 공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타석에 주저앉았다. 누가 봐도 힛 바이 핏치로 연결되는 상황. 허나 그 커브는 플레이트 부근에서 급격하게 가라앉으며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갔고, 놀랍게도 플레이트 안에 몸쪽으로 정확하게 제구가 되었던 것이다. 결과는 몬데시의 삼진... 몬데시는 당시 덕아웃으로 들어가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페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페드로의 두 번 휘는 커브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는 그의 누운 팔각도와 엄청난 스핀에서 파생되는 재미있는 현상. 박찬호가 가끔 지쳤을 때 던지는 '묻지마 커브' 원리와 거의 같은, 그런 원리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알기 쉽게 박찬호의 묻지마 커브가 왜 나오는지를 분석해 볼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파워 커브의 대명사이다. 빠르고 역동적인 딜리버리와 그 만큼의 강한 폼을 지니고 있기에, 각이 적으면서도 속도가 무려 80마일 중반까지 이르는 극도로 빨라진 커브를 보이게 된 것. 하지만 게임 후반이 되어 지치면서 팔각도가 내려올 때에는, 오른쪽 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들면서 이상하게 플레이트 부근에서 가라앉는 커브를 보이고는 했었다. 국내의 해외 특파 기자들은 이 구질을 상당히 의아해 하면서 박찬호에게 무엇인지 질문했었고, 박찬호 역시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 '묻지 말아달라'라는 대답을 해서 당시 이 구질은 '묻지마 커브'로 명명되어 사용되었었다.
원리는 이렇다. 팔이 누우면서 커브의 탑스핀이 유지되기는 하되, 자연스럽게 사이드 스핀이 걸리면서 횡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 단지 포심이 백스핀의 영향으로 바깥쪽으로 휘어 나가게 되어있는 것에 반해, 커브는 탑스핀의 영향에 의해 반대로 몸쪽으로 파고드는 형상을 보이는 차이일 뿐이다. 그것이 자신도 모를 묻지마 커브를 탄생시켰던 것이고, 타자들도 몇번 몸을 움찔 움찔 하면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전 몇 번의 리뷰 칼럼에서 그의 묻지가 커브가 무엇이었는지 실제 상황에 대비해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지 박찬호의 경우나 페드로의 경우에 있어서는, 여타 투수들에 비해 상당히 역동적인 딜리버리를 보이기에 상대적으로 탑 스핀이 사이드 스핀으로 연결되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페드로의 두 번 휘는 커브 역시 이런 원리에서 파생되는 것. 팔 각도가 낮은 투수인 데다가 워낙 손가락이 길고 딜리버리가 역동적이어서 극단적인 힘을 파생시키기에, 박찬호의 묻지마 커브보다 훨씬 빠르고 예리한 커브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아쉬운 부분은 최근에 이 커브가 이제는 그렇게 위력적이라고 말하기 힘들 수준으로 밖에 휘지 않는다는 것. 여전히 간간이 커브를 구사하기에 그 두 번 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아쉽게도 이전처럼 그렇게 많이 휘는 것은 보기 힘들 것이다. 허나 그런 구질을 구사했었던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이전에 페드로의 칼럼을 몇 번이고 쓰면서 그에게 들리지도 않을 당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드와이트 구든처럼 자신의 특출난 능력을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것 말이다. 하지만 역시 투수는 던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인가 보다. (로이 오스왈트도 벌써부터 변하고 있고...) 무대포로 밀고 나가는 가 싶었던 페드로 역시 올 시즌 들어서는 상당히 이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투구 폼을 자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그의 나이 31살이다.
확실히 루상에 주자가 없을 때에는 그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위기 상황이나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에만 어느 정도 위력을 보이는 수준이다. 아쉽게나마 이전의 모습을 간간이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전만큼은 아니다. 한창 몬트리얼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보스턴 초기 시절을 보낼 때에는, 그 엄청난 폼으로 엄청난 구질을 게임 내내 뿌려댔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아쉬운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당시 그의 투구는 정말 놀라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를 지켜보며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비단 오랜 페드로의 팬으로서 나만이 느끼는 감정인가. 부상의 위험을 지고서라도 이전의 폭풍 같은 투구 폼을 지켜보면서 매 투구마다 흥분했었던 그 즐거움은, 나로서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 지금도 충분히 위력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몇 년 전의 그 모습을 지금의 팬들에게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다행히 팬들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인다는 것. 아무리 자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구질들은 타 투수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위력들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예전의 그 위력에서 빚어진 아쉬움은 이제 이전에서는 볼 수 없던 노련미로서 커버되고 있고, 여전히 최고의 투수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능력을 충분히 보이고 있다.
그에게 바라는 것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연봉도, 또 최고로 남아있게 될 그 어떤 기록도 아니다. 이미 위대한 기록들은 다른 투수들에게서 충분히 봤다. 그리고 연봉으로 놀랄 수 있는 것도 알렉스 로드리게즈의 2520만 달러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바라는 것은, 그의 투구를 보면서 팬들이 느끼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느끼게 해달라는 것. 팬들은 그가 마운드에 떠나 있어도 항상 그를 최고 쳐준다. 그 정도로 인상적인 투구를 보이는 녀석이니 말이다.
마운드에서 한 놈도 살아남기지 않고 돌려보내는 그 강력한 카리스마. 그가 있기에 메이저리그 팬들은 2003 시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그가 있기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신'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