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놀이
우리들이 어렸을 때인 50년대 말에서 60년 초쯤에, 농촌에서 농한기에 특별히 할 일 없이 소일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TV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고, 라디오 방송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라디오가 집집마다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집에서 그냥 지내기에는 무척 심심했을 것이다.
대부분 동네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동네에서 잘 사는 집으로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는 바깥채가 있고, 여기는 쇠죽을 쑤거나 군물을 많이 때서 온 방이 뜨끈뜨끈하여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추위를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곳이다. 또 어떤 마을에서는 가게를 차린 집에서 일부러 사랑방을 마련하기도 했다.
동네 사랑방에서는 그 집의 머슴을 위시하여 동네에서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 모여 입담 좋은 사람의 꾸며낸 구수한 이야기를 듣거나 웃음거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또 주인 집 머슴은 새끼를 꼬거나 멍석을 짜기도 하고 놀려온 동네 사람들 중에서 기박(碁博)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둑을 두거나 장기로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방에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화투이다.
화투가 퍼지기 전에는 투전이라 것이 있었다. 투전은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기구로 주로 운수 점치기 패를 띠기도 하지만 노름에도 많이 쓰였는데 일제시대 때에 화투가 일본에서 들어오고 나서 점점 사라졌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집안에서 할 일이 없을 때에는 투전으로 운수 띠기를 자주 하셨다.
지금의 화투는 비닐을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얇으면서도 쉽게 부러지지 않아 짝 한 개라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오래 사용한다. 그때의 화투는 종이로 만든 것인데 빳빳하게 만들기 위해서 종이 사이에 백회를 넣고 양쪽을 붙여 만들었다. 잘못 다루었다가 화투의 가운데 부분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부러지면 가운데에서 하얀 백회가루가 나왔다. 물론 부러진 화투는 다시 사용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처럼 화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종이로 양쪽을 붙여 사용하거나 또는 두꺼운 종이를 화투짝 크기로 오리고 비슷하게 그림을 그려서 끼워 넣고 사용하기도 했다.
사랑방에서 화투 놀이는 처음에는 오락으로 시작된다. 두부내기나 막걸리 내기 등 작게 시작되지만 점차 노름으로 커져서 나중에는 큰 돈을 잃는 사람도 생긴다. 머슴 중에서 일 년 새경(머슴이 주인에게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건)을 노름으로 모두 잃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화투는 우리나라 고유의 오락기구가 아니고 19세기경 일본에서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급속히 퍼져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도박의 도구가 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국민성을 말살하고 국민들의 정기를 흐려놓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다 사용했다. 국토의 맥이 흐르는 곳에 쇠말뚝을 박는다든지,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든지, 일본식으로 성을 바꾸었다든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투전 노름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화투를 의도적으로 보급하여 화투에 온 국민들을 빠트려 민족정기를 흐트러지게 하려고 들여왔다는 말이 있다.
화투가 들어오면서 도박의 판도가 바뀌어 옛날식 투전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화투가 도박의 전형으로 토착화되었다. 화투를 이용하는 놀이에는 오락으로 주로 하는 민화투(늘화투), 육백, 고스톱, 나이롱 뽕 등이 있고 도박성이 강한 쪼기, 짓고땡, 섰다, 버티기 등이 있다. 그 밖에 아낙네나 노인들이 재미로 하는 재수보기와 운수 띠기가 있다.
요즘에는 가장 많이 하는 오락으로 고스톱이 있는데 이것은 방식도 다양하고 지방에 따라서, 혹은 시기에 따라서 방법이 다르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대표적 화투 오락이다.
90년도 초반에 미국에 연수차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서울 김포 공향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는 논스톱으로 대략 1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는데 그 좁은 비행기의 좌석에서도 세 명이 1조가 되어 고스톱을 치는 판이 여럿 있었다. 긴 시간을 무료하게 그냥 보내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나라 사람은 세 명 이상이 모이고, 단 몇 분만 여유가 있어도 공항이고, 기차 안이고, 음식점이고, 가릴 것도 없이 화투를 꺼내들고 고스톱을 한다. 심지어 가까운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고스톱 판은 빠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 사람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좋은 평판도 많다. 미국은 200년에 걸쳐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어 냈는데 단 40년 만에 민주주의를 실현시킨 나라, 다른 나라에서는 100년에도 이루기 어려운 경제 발전을 단 40년 만에 이루어 내 세계 경제권 10위에 올려놓은 나라, 무엇이든지 ‘빨리빨리’로 완성시키는 나라, 세계 30위정도 되는 축구실력으로 월드컵 경기를 유치하고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일사불란하게 길거리 응원으로 4강까지 간 나라, 그리고 응원한 그 자리에는 휴지 조각 하나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등등...
그러나 반대로 나쁘게 생각하는 것도 많다. 가족이 어렵게 모이는 명절에 음식을 먹고 난 뒤에는 돈 놓고 돈 따 먹기 놀이를 하는 나라, 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져 수많은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나라, 한강의 다리가 차가 지나가는 순간에 끊어져 사람과 차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나라, 세계에서 단절된 나라는 모두 통일이 되었는데 단일민족이면서도 통일을 못 이루고 서로 싸우고 있는 나라 등.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민화투나 육백을 치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위에서 말한 대로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으니 심심풀이로 했던 것 같다. 가끔은 어머니께서 나한테 육백을 치자고 해서 같이 쳤던 기억도 난다.
우리 마을에는 나보다 5-6살 정도 더 먹은 ○○가 있었는데 화투 치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 또래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들을 데리고 자주 화투 놀이를 했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바깥 놀이가 어려워지면 그 친구네 집의 골방에 모여서 주로 버티기를 했는데, 돈은 종이를 돈 크기로 잘라서 만든 가짜 돈을 가지고 놀았다. 그래도 노는 방식은 거의 성인의 노름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친구들 네댓 명이 모여앉아 노는데 준비한 종이돈이 다 떨어지면 빌리고 나중에 헌 공책이나 책을 오려서 갚았다. 종이돈을 가지고 놀았지만 많이 잃으면 기분이 몹시 나쁘고 좀 따면 기분이 좋고 그랬다.
집에서 화투를 가까이 할 기회가 없거나 적었던 친구들은 배우면서 하기 때문에 대부분 돈을 잃는 편이었지만, 나는 어머니와 가끔 민화투나 육백을 쳐서 화투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따는 편이 많았다.
그리고 가끔 ‘쪼기’, ‘버티기’나 ‘도리짓고땡’도 했는데 노름 중에서 ‘도리짓고땡’이 가장 재미있고 큰 노름이라는 것을 그때에 알았다. ‘도리짓고땡“은 화투를 안다고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아니다. 도리짓고땡은 화투 중에서 동, 비 및 껍데기(피)를 빼고 20장을 가지고 하는데, 선수가 판꾼 세 사람과 자신에게 한 장씩 떼어 모두 5장씩 나누어주면 각각 3장을 모아서 10, 20을 만들어 짓고 나서, 나머지 2장의 수 합계에 따라 승부를 결정한다. 만약 3장으로 지을 수 없는 사람은 실격이 되어 무조건 자기가 건 돈을 선수에게 주며, 다른 사람은 끗발(2장의 합계)로 견준다. 2장의 숫자가 같으면 ‘땡’(혹은 땅)이라 하는데, 이 중에서 ‘장땡’이 가장 높으며, 9땡, 8땡의 순서로 낮아진다. ‘땡’이 아닌 경우에는 2장을 합한 것의 한자리 수가 9가 되면 갑오라 하여 가장 높고, 다음으로 8, 7, 6…의 차례로 내려간다. 그리고 가보가 되는 수 가운데 1과 8은 ‘알팔가보’, 2와 7은 ‘이칠가보’, 3과 6은 ‘삼육갑오’, 4와 5는 “세오가보‘라 한다. 2장을 더한 수가 10처럼 한자리수의 끝이 0이 되는 경우에는 ‘무대’라고 하여 가장 낮은 끗수로 친다.
도리짓고땡을 잘하기 위해서는 석 장으로 10, 20을 만들어 빨리 짓고 나머지 두장의 합계를 알고, 판 전체의 합계를 통해서 자기 것이나 상대방의 점수를 빨리 알아내야 하는데 그 계산이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
석 장씩 계산하는 공식이 21개인데 도리짓고땡을 오래 하다보면 저절로 익혀진다. 콩콩팔(1,1,8), 삐리칠(1,2,7), 물삼육(1,3,6), 백세오(1,4,5), 삥구장(1,9,10), 니니육(2,2,6), 이삼오(2,3,5), 이판장(2,8,10), 싱싱새(3,3,4), 삼칠장(3,7,10), 삼빡구(3,8,9), 살살이(4,4,2), 사육장(4,6,10), 사칠구(4,7,9), 꼬꼬장(5,5,10), 오륙구(5,6,9), 오천평(5,7,8), 쭉쭉팔(6,6,8), 칠칠육(7,7,6), 팔팔새(8,8,4), 구구리(9,9,2)인데, 21개의 공식을 다 외웠다 해도 실제로 놀이를 하면 특이한 경우에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당하고 만다. 4,4,2,9,9는 구구리 짓고 사땡이기도 하지만 살살이 짓고 구땡도 된다. 그런 경우가 또 있다. 5,5,10,4,6의 경우는 잘못하면 꼬꼬장 짓고 4,6 망통으로 계산하여 지가 쉽지만 사실은 사육장 짓고 오땡이 된다. 이런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돈을 잃지 않고 딸 수 있다.
다섯 장을 가지고 이리저리 맞추어 석장으로 짓게 만들고 두 장의 합계를 빨리 계산해 내는 데에는 수학적인 계산 능력도 필요하다. 더하기도 잘 해야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빼기도 해야 한다. 어떤 친구는 오랫동안 해도 영 쉽게 계산해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런 놀이를 자주해서였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때에 논리적 사고력이 남들보다 앞서 수학은 언제나 앞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렸을 적 화투 노름을 통해서 사고력의 신장이나 계산력, 기억력을 향상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모임이나 가끔 초상집에서 자주 이루어지는 고스톱 판에도 끼어들지 않지만 섰다나 도리짓고땡은 잊은 지 오래다. 눈이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에는 어린 시절 동네 따뜻한 골방에서 화투를 가지고 놀았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끝>
첫댓글 긴~~~글 속에
아기자기한 사연들이며
화투놀이의 종류
화투 자재
즐기는 모습등
참~~~ 재밋고
나도 그언젠가는 경험자였었다는 야릇한 미소...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규제를).
고스톱 모임이 있어
한달에 한번쯤은...
고마워 재밋는 글.
언제 만나서 짓고땡 이나
섯다 한판 할까?ㅋㅋ
결코 짧지 않은글~
어쩌면 이다지도 세심하고 재미있고
실감나는 표현력을~~
덕분에 어린시절 고향집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사랑채 모습이 아련하게~
자세히 보니 화투놀이 이거 꽤나 재미있는데~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어렵겠지만 올겨울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푸른솔 말마따나 언제 만나서
꿈도 야무지게 "도리짓고땡 " 판에
도전장을 어디한번 내 볼까나 ? ~ ㅋㅋ
그야말로 전혀 오염이 안된 순수 무공해 재미있고 소중한글
엄청 고맙고 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