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씀/마가복음13:14-37
예수님의 재림이 믿어지십니까? 아니면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나라 이야기 같습니까? 예수님의 초림이 역사적 사실이였습니다. 실제로 2000년전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재림 또한 곧 역사적 사실로 있게 될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더디다해서 불신하고 안일해져서는 안될 일입니다. 세월호가 침몰된 후 가장 비난받은 사람은 이준석 선장입니다. 그는 학생들로 빨리 선실을 나와서 갑판 위로 올라오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로 가만히 대기하라고 하고 자신은 조용히 배를 탈출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의 교회도 각종 질병과 재앙과 전쟁의 파도가 이는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선장인 목사는 성도들로 하여금 마지막 때가 가까웠음을 알리고 갑판위로 다 대피하라고 하는데 어떤 성도는 여전히 자기 일에 바쁘고, 폰보고 노느라 바쁘고, 얘기하느라 선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인류 역사의 전 과정에서 종말의 상황을 예수님은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종말임을 암시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대환란이 끝나고 마지막 날에 있게 될 무서운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무서운 일이 있은 후에는 드디어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심은 여전히 낯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영혼의 닻이 됩니다. 세상 풍조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고 안일에 빠지지 않게 하고 영혼의 잠에 들지 않게 합니다. 오늘 말씀 통하여 마지막 날에 있게 될 무서운 일이 무엇이며 이런 무서운 일을 통하여 재림신앙이 확고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들어서게 됩니다. 14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가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우상이나 동성애를 의미합니다. 우상이 들어서지 못할 곳은 성전입니다. 재림이 임박해지면 하나님만이 예배받으셔야 하는 그 자리에 가증한 우상이 들어서고, 동성애자들이 성전에 서 목회하고 결혼식하여 신성모독을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와서 회개하고 은혜를 받는 것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이런 가증한 것이 성전에 들어오면 도망치라 하십니다. 지붕밑에 다락에 있는 자는 내려올 것없이 바로 도망가야 합니다. 집에 있는 것을 가지러 가지 말고 곧장 피해야 합니다. 밭에서 일하다가 옷을 챙기러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는 더 중요한 생명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세상 것에 미련두지 말고 급하게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그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하셨습니다. <화가 있다>는 것은 영어로 보니까 ‘How dreadful 얼마나 무서운가? 끔찍한가?’ 입니다. 주님은 그 날에 끔찍한 일을 당할 어머니들과 아이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아팠던 것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급하게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날들은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택하신 백성을 위해 그 환난의 때와 기간을 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환란 중에서도 주님의 마음은 자기 백성을 향하고, 그들의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벧전 3:12절은 말합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귀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항하시느니라"
21절을 보시면 이런 마지막 대환란의 때임에도 불구하고 택하신 백성을 속이고자 하는 사단은 기승을 부립니다. 그래서 거짓 그리스도가 여기 저기 일어나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단은 이단을 통하여, 페미니즘을 통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하여 믿는 성도들을 속입니다. 23절을 보면 "너희는 삼가라(=경계하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럴 가능성을 미리 경고하심으로 항상 주의해서 자신을 지켜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세상 만물이 일시에 무질서 상태(카오스)가 됩니다.(24,25) 해가 어두워져 온 지구가 혼돈과 흑암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쟁반 같던 둥근 달도 빛을 내지 않고 핏빛으로 변하고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천체가 흔들려서 행성과 소행성들이 자기 궤도를 벗어나 서로 충돌합니다. 이 때 곳곳에서 교만한 인간의 바벨탑이 무너질 것입니다. 63빌딩, 롯데빌딩, 대장동 아파트도 다 무너지고, 컴퓨터, 최신 핸드폰들은 모두 먹통이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21장을 보면, 이 때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혼란 중에 고통스러워하며 사람들은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다가 너무 무서워 기절하게 됩니다 (눅21:25,26). 이것은 지진이나 태풍 정도가 아닙니다. 만유인력이 없어지고 지구가 소행성들과 충돌합니다. 어디 피할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기절해서 죽고자 합니다. 바로 이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인생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세주로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르게 말구유 간에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십니다. 그 때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큰 빛들이 일시에 쏟아집니다. 그 빛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천군 천사들의 우레와 같은 나팔 소리가 울리면 천사장이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호령 소리가 들립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수많은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고 가슴에는 황금빛 금띠를 띠시고(계1:13) 가시면류관 대신 금 면류관을 쓰시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십니다 (26) "예수님 오신다" 큰 소리가 나면서 영광의 주, 심판의 주, 왕의 왕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범우주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어느 한 구석에서 일정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일시에 볼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27절을 보면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기만과 재난과 박해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환란중에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한 자들이요, 주님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며 끝까지 견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느라 많은 고생을 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계시록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그리고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소망의 날입니다.
넷째, 심판이 이루어집니다.(마24:51) 그날은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날에는 심판의 기준이 지식이나 돈이나 타이틀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서 나온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이것은 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믿음에서 나온 사랑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의 주권과 그 통치를 거부하였던 것을 말합니다. 그 날에는 의사, 교수, 사장, 검사의 타이틀도 소용없고 억만금의 재산도 소용없고 오직 믿음에서 나온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 날에는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충분한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 스스로가 세상 쾌락과 안일과 두려움을 따라 그것을 선택하며 살았기 때문에 결국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은 성도들에게는 승리와 영원한 안식의 날이 됩니다.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이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읍니다. 성도들은 새로운 몸으로 변화됩니다(고전15:51).“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그리고 휴거하여 공중으로 들려 올려지게 됩니다(살전4:17).“그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dfl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생로병사의 번뇌가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님을 대면하여 볼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에서 우리를 맞으시며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칭찬하십니다. 이 땅에서 속상해서 흘렸던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영원히 우리를 다스려 주실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재림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 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재림의 희망으로 사는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될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28절을 보면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그 잎사귀가 무성해지면 누구나 여름이 가까운 줄 압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말세의 징조를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준비해야 합니다. 천지는 없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십니다. 어떤 사람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재림의 날짜를 계산합니다. 그러나 본문 32절을 볼 때 모두 맞지 않습니다. 32절을 보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성부 하나님만 아시고 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아들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 시기는 꽁꽁 감추어진 비밀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 날이 언제인지 알려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재림의 시기를 알려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늘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떤 집 주인이 해외 출장을 떠나며 종에게 깨어 있으라 명령하고 갔습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저녁일지, 밤중일지, 새벽에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자지 말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자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언제 오실지 모르니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 특별히 안 오실 것 같은 밤에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1) 초대교회는 곧 오실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2) 그후 2천년 동안 교회가 예수님 곧 오신다 곧 오신다 많이 이야기 했고, 3) 특히 이단들이 많이 강조하였다보니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져서 안일해지고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4) 이 땅이 너무 살기 좋아져서 다시 오시든지 안 오시든지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을 잊게 되면, 영적 긴장이 사라져 영적으로 잠들기 쉽습니다.
자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면 업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들게 되면 그 정도로 둔해지고 무감각해집니다. 영적으로 잠들면 1) 찬양을 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졸립니다. 맛집이야기, 드라마이야기, 여자, 남자 이야기 할 때는 졸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2) 잠들면 성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내 힘든 것, 내 즐거운 것에만 깨어 있게 됩니다. 3) 잠들면, 영적인 도덕적인 민감성도 상실합니다. 그래서 쉽게 반복해서 죄를 짓고도 그 심각성을 모릅니다. 4) 잠들면,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자발성과 민첩성을 상실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14:37, 38절을 보시면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와보니 베드로는 한밤중이었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는 ‘깨어서 나와 같이 기도할 수 없더냐!’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눅21:36) 이처럼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깨어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1시간 기도할 수 없더냐! 구체적인 시간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1시간의 기도가 나를 23시간 깨어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바쁜 우리 삶에 마이너스 1시간이 아니라, 23시간을 얻는 플러스 시간입니다. 돌아보면 기도하지 않는 하루는 지는 하루입니다. 죄와 짜증에 시달리느라, 우선순위 없이 허둥대느라, 뭔가 바쁜데 돌아보면 뭘 했는지 모를 멍한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내가 끝까지 목숨 걸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기도하면 1)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기도하면 내가 피할 것, 조심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기도하면 넘어져도 십자가 붙들고 금새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무슨 일을 만나도 뚫고 지나갈 담대함을 얻습니다. 4) 기도하면 맡겨진 권한과 일에 대한 감사가 생깁니다. 감사가 생기면, 최선을 다할 힘이 납니다. 한마디로 기도하면 깨어 있습니다. 이런 기도의 힘을 마귀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를 공격할 때 어찌하든 이 기도를 못하게 하는데 집중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 어렵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만 못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잠들고, 잠들면 맡긴 사무도 못할 것이고, 사단이 무슨 짓을 해도 모르게 됩니다. 기도는 영적 레이더입니다. 늘 켜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최소한 하루 1시간 기도함으로 주님 다시 오시든지 우리가 가게 되든지 그때까지 깨어 있길 축원합니다.
37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깨어 있으라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라 재림을 앞둔 바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교회는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갖고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 다시 만날 주님이 사모되고 기다려지는 삶, 그분께 드릴 열매가 가득한 인생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