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조재형 신부
복음; 루카21,29-33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에 와서 피정을 2번 하였습니다. 한번은 2020년 1월 뉴멕시코 갤럽에 있는 피정의 집에서 개인 피정을 하였습니다. 미국 생활을 잘 하고 싶었고, 저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수녀님께서 소개해 주셨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의욕적으로 신문사를 운영하려고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생겼고, 계획한 것들을 뒤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두 번째 피정은 2023년 11월 뉴저지 라크랜드에 있는 돈보스코 피정의 집에서 ‘요한복음의 여인들’이라는 주제로 피정하였습니다. 첫 번째 피정이 개인 자유 피정이었다면 두 번째 피정은 강사 신부님을 모시고 단체로 피정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을 주제로 신학적인, 영적인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영적인 갈망이 있었던 65명의 피정 참가자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피정은 신앙생활에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을 줍니다. 하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면 계속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멀어지고 있다면 다시 하느님의 뜻대로 살도록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인 에너지를 채우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기름을 채워야 달릴 수 있고, 스마트폰도 충전해야 사용할 수 있듯이 신앙생활도 피정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야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첫 번째 여인은 ‘성모님’입니다. 영화도 처음 시작이 재미있어야 끝까지 보고, 책도 처음 부분이 재미있어야 끝까지 읽게 됩니다. 복음서를 쓴 요한도 예수님을 만난 첫 번째 여인을 ‘성모님’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모님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났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모범이었던 성모님은 ‘승천’했다는 신심이 있었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이 만난 장소는 ‘혼인 잔치’였습니다. 축제의 자리인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일꾼들은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웠고, 그것을 과방장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요한이 말하고 싶은 것은 ‘결합과 일치’였습니다.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완전성의 결핍을 의미합니다. 현재 이 상황이 구원의 은총이 결핍된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메시아의 오심이 요구되는 상태입니다. 성모님은 신약의 새로운 하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실천하여라.” 예수님과 성모님의 공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일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꾼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신앙인이 이런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마치 하느님을 ‘자판기’처럼 생각합니다. 나의 잣대로 믿음을 정하곤 합니다. 나의 입맛대로 믿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나의 잣대와 입맛에 맞지 않으면 믿음까지도 버리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나의 뜻대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표징에서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 이것을 실천하면 물이 포도주가 됩니다. 존재가 변하게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사람도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표징에서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영광은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존재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느님과 내가 일치되는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날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좋습니다. 성모님은 이 신비를 드러내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일꾼들의 모습을 지켜본 제자들은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지요?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감동하려고 합니다. 기쁨과 재미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자선’입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의 심판의 기준도 ‘자선’입니다.
자선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존재가 변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성모님께서 보여 주신 모범.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실천하여라.”에서 시작됩니다. 그날 복음 말씀을 그대로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
들음은 가슴에 남아서 나를 행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들음입니다. 들음이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완전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습관을 지녀봅니다. 기억하고 가슴에 담으려고 하면 그 말씀이 살아납니다. 실천하게 되면 기쁨이 쌓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전해 주는 첫 번째 표징의 의미입니다.
사실 저는 첫 번째 표징을 좋아했습니다. 술을 좋아했기에 바이런의 시도 좋아했습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도다.” 그런데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도록 그렇게 해서 유혹을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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