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과 세금계산서”
죽어서 저 세상까지 따라오는 것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낸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Γ홍역」이라는 답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홍역은 어떤 인간이든지 치르고 넘어가야 하는 병이다. 요즘은 예방약도 나와있지만 홍역을 가볍게 앓도록 해서 면역을 길러 주는 것이지 홍역 그 자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똑 같은 수수께끼에 서양사람들은 Γ세금계산서」라는 답을 내놓는다. 세금이 얼마나 지겹고 원망스러웠으면 그런 농담까지 생겼을까 싶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되었던 Γ매드매드 대 작전」 이라는 영화에 보면 네 명의 도둑이 30만 달러를 훔쳐 가지고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30만 달러니까 1인당 7만5천 달러가 돌아가는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도둑 하나가 외친다.
Γ가만 있어 봐! 여기서 세금은 따로 떼어놓고 계산해야지!」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우스개에 불과하지만 그 사회가 세금에 대해서 얼마나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짐작 하게 해준다.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이며, 또 신경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세금문제가 엄격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 사회에서는 납세자가 스스로 세금계산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되어 있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이만큼 벌었소 하고 미주알고주알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넣는 것이다. 거짓말로 적어 넣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어림없는 짓이다. 그냥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만약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이 거짓말에 대해서 만은 가혹한 처벌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거짓 세금계산서로 들통이 나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가혹한 법도 습관이 되면 괜찮은 모양이다. 그러나 세금계산서를 작성하는 시기가 되면 술집마다 매상이 부쩍 오르고 교통 사고율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정직하게 내긴 내는데 생각할수록 화가 안 날 수 없다. 그래서 도둑들 조차도 엉겁결에 세금을 따로 떼어 놓자는 그런 코미디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세금에 관한 한 우리 사회에도 참으로 아름답고 흐뭇한 얘기가 있다.
고 유일한씨가 창업한 Γ유한양행」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70년대 초반 유한양행이 조직적으로 탈세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국세청으로 들어갔다.
국세청은 비밀리에 20명의 조사관들을 선발해 가지고 불시에 유한앙행을 찾아가 세무조사를 감행하였다. 단돈 1백원짜리 영수증 한 장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한 세무조사였다. 회사측에서 내놓은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그야말로 엄격한 원리 원칙대로 직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유한양행이 단돈 1원도 탈세한 일이 없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럴리가 없다며 아무리 계산을 다시 해봐도 요지부동의 사실이었다.
너무나 감격한 국세청장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하여 유한양행의 너무나도 깨끗한 기업정신을 찬양하고, 세법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내외에 공표하였다.
고 유일한씨는 기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대신 자신이 설립한 육영재단 앞으로 물려준 분이다. 그 사장에 그 회자, 그 자식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한양행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세무조사만 했다 하면 몇 십억씩 추징금을 내야 하는 기업들, 며칠이 멀다 하고 뇌물을 먹어 신문사회면을 장식하는 공직자들, 흔히 있어 왔던 일이긴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뭔가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선진한국을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