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설날연휴는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5일간이었다.
꽤 길었다.
本家와 妻家에서 각각 1박2일씩을 보내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본디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가벼운 트레킹을 할 심산이었으나 정상부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트레킹은 포기했다.
복장이나 신발도 트레킹 여건이 아니었으니까.
대신 화엄사 탐방과 온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제 성왕 때(544년) 축조된 '화엄사'는 호남불교의 대총림이자 조계종 19교구 本刹로서 그 장대한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또한 웅장한 지리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천년고찰이자 화엄성지였다.
무량사, 천은사, 연곡사 등 50여개 사찰을 末寺로 거느리고 있는 대본산이기도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겸허한 마음으로 산문에 들어서자 저 멀리 어딘가에서 그윽한 게송이 낭낭하게 들려왔다.
숱한 고승대덕들의 수행터전이었던 백두대간 남녘의 대가람 華嚴寺.
부처님의 자비광명과 불국토의 선양을 위한 독경과 염불이 넓고 깊은 산하를 청정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당우'들은 맑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더욱 깊은 멋을 뽑내고 있었다.
외곽의 숲 속 마다엔 작은 암자들이 조촐한 앉음새를 한 채 대총림 고유의 원력을 성성하게 내뿜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경내 이곳저곳을 겸허한 마음으로 일주했다.
그러는 새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반야'를 생각했다.
명절을 맞이하여 한 번의 떡국을 더 먹은 만큼 내 삶의 면면에서도 더욱 깊은 '반야의 발현'이 임하길 발원했다.
탐방과 참배를 마친 뒤에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눈을 감았다.
가능한 한 꼼지락거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명상 속에 몸과 마음을 풀었다.
눈을 감았으나 '화엄사상'에 대한 궁구와 '반야'에 대한 사유가 내 뇌리에서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헤진 한 벌의 장삼과 낡은 하나의 발우에도 안분자족하며 경전의 수지독송에 힘쓰라 이르셨던 노승의 단호한 죽비가 내 등짝을
이따금씩 후려치는 듯했다.
반야에 대한 사유의 끝은 결국 '조고각하'로 이어졌다.
기독교도인 내가 어찌 불가의 가르침들을 속속들이 잘 이해하며 깨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따금씩 이삭 줍듯 접했던 불교의 글편들 때문인지 명절 직후에 내게 던져진 '照顧脚下'는 병신년의 화두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저 모든 게 감사로 다가왔다.
온천을 마치고 나왔다.
심신은 더없이 개운하고 가벼웠다.
'만의'의 지경이 이런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슬슬 허기가 느껴졌다.
숙소로 향했다.
그동안 몇 번을 방문했던 낯익은 동네, 바로 지리산 매동마을이었다.
마을은 여느 때처럼 아늑하고 고요했다.
동네 동쪽을 에워싸고 있던 상록수림은 겨울인데도 여전히 따스하게 느껴졌다.
동네 초입에 깨끗하고 단아한 이층 민박집을 새로 들였다.
저번엔 보지 못했던 앙증맞은 처소였다.
신축한 그곳 이층에 여장을 풀었다.
쥔장의 배려로 보일러를 일찍 틀어 둔 까닭에 바닦이 설설 끓었다.
좋았다.
우리 부부도, 온천 후에 회동한 친구 부부도 만족스러운 듯 모두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잠시 후 그 건물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아주 오래된 전통가옥으로 이동했다.
그 집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공 할머니'표 시골밥상을 받았다.
소싯적에 맛보았던 고향의 '오리지널리티'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다채로운 찬들이 밥상 위에 가득했다.
하나같이 고소하고 담백했다.
할머니께서 지리산 자락에서 직접 뜯어 말려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각종 산나물들.
그 맛깔스런 음식들이 한겨울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손님들을 매동마을로 부르고 있었다.
음식들이 죄다 지리산 소출이었다.
그야말로 '身土不二' 건강 먹거리였다.
칠십대 중반의 공 할머니.
할머니의 소문난 밥상은 허언이 아니었다.
강호동의 일박이일, 6시 내고향, 한국인의 밥상 등 온갖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사람을 반기고 배려하는 할머니의 깊은 정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분만의 손맛 때문이었다.
새콤달콤 짭조름한 나물들과 장아찌 그리고 전통방식으로 담가 사용하는 풍미있는 장류들이 깊은 맛을 더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할머니는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에 밥상머리 곁으로 오셔서 다정다감하고 구성진 얘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셨다.
旅行의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켜 주기에 충분했던, 또 한 분의 고마운 어머니셨다.
바로 그런 멋쟁이 엄니 한 분이 지리산 청정 자락에 살고 계셨다.
감칠맛 나고 구뜰한 시골밥상에 지리산 농주 한 사발까지.
"크으~~ 좋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일 년에 三四日을 빼고는 360일 이상 손님들이 줄을 잇는 지리산 매동마을의 사랑방이 바로 공 할머니네 집이다.
과연 그 유명세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맛있고 감동스런 식사 후에 다시 민박으로 자리를 옮겼다.
겨울밤이 깊도록 두 부부, 네 명의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소중한 친구, 아주 오래된 우정에 감사했던 밤이었다.
산청, 함양, 남원, 구례, 곡성지역에 일이 있거나 지리산권역을 여행하고 픈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 보시길 강추한다.
말이 필요없다.
먹어보면 안다.
꼭 한 번 가보시라.
정보나 달라고?
DAUM 검색창에 '공할머니'를 치면 끝이다.
도처를 여행하다보면 이런 보석같은 분들로 인해 세상 사는 맛이 송글송글 샘솟는다.
그래서 떠남과 만남이 설레고 즐겁다.
"공 할머니"
"격의없는 베풂과 호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저희도 그런 배려의 정신으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저도 이모부가 수년전 지리산 둘레길 추천해주셔서 함안산청 둘러보다가 함안산청 양민학살 추모공원 근처 방곡마을 작은 민박집을 아직도 연락하며 지냅니다.
그래. 그런 모습들이 바로 여행의 참맛이겠지. 담백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분들이 군데군데 많이 계시는 까닭에 길을 떠나보면 거의 동일한 감동과 감사함을 선물로 받아오곤 하지. 커다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