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의 판소리… “억눌린 내 소리, 낼 수 있게 됐죠”
7년째 판소리 배우는 로르 마포
민혜성 명창 공연에 매료돼 한국행
“내가 배운 판소리의 힘 전해줄 것”
로르 마포 씨는 올해 4월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대사관 신축 개관 행사에서 판소리 공연을 했다. 본인 제공
2015년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명창(51·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부가 이수자)의 판소리 공연이 열리던 때였다. 카메룬 출신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대학에서 회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로르 마포 씨(39)는 삼성전자 파리지사에 재직 중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러 드나들었던 한국문화원에서 ‘춘향가’가 울려 퍼진 순간 “내 안의 억눌려 있던 소리를 모두 뱉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민 명창을 찾아가 대뜸 “당신에게 배우고 싶다”고 했다. 민 명창은 “원한다면 10년이든 20년이든 가르쳐 줄 테니 한국으로 오라”고 답했다. 마포 씨는 2년 뒤인 2017년 직장을 그만두고, 반대하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포 씨는 “그날의 판소리 공연이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고 했다.
올해로 7년째 민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마포 씨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9일 만났다. 그는 능숙한 우리말로 “7년 전에 내가 불렀던 ‘흥부가’와 요즘 내가 부르는 ‘흥부가’는 완전히 다른 소리”라며 “갈고닦을수록 나의 소리를 찾아가는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소리의 끝이 어디인지 한계에 부닥쳐보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개최된 한-프랑스 대통령 만찬 등 여러 무대에 오른 그가 꼽은 최고의 무대는 어머니가 사는 고국 카메룬의 한국대사관에서 2019년 열린 공연이다. 당시 그는 ‘사랑가’를 프랑스어로 불렀다. 그는 “판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카메룬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어머니가 그제야 내 꿈을 인정해주며 ‘갈 데까지 가보라’고 했다”며 웃었다. 마포 씨는 2020년부터 한-아프리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13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저에서 ‘몰입과 히든 탤런트, 나누는 즐거움’을 주제로 개최한 ‘2023 문화소통포럼’에서 판소리 공연을 했다. 태권도 2단인 필리프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가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고,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가 쇼팽의 녹턴을 피아노로 연주한 이날 무대에서 마포 씨는 흥부가 중 ‘가난타령’ 대목을 불렀다.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에 판소리 전공으로 입학한 마포 씨의 꿈은 “언젠가 스승인 민 명창처럼 한국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살 땐 어딘가에 억눌려 내 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판소리를 배우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며 “이제는 내가 느끼고 배웠던 판소리의 힘을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