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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가산(882m)은 좋겠다. 한국의 100명산에도 끼어들지 못해 늘 아쉬워했는데, 멀지 않는 어느 날 경상북도 도청의 진산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니 하는 말이다.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 자리 잡고 있던 경북도청을 자기 고장으로 끌어오겠다는 유치경쟁을 도내의 쟁쟁한 도시들이 오랫동안 치열하게 펼쳤다. 그런데 지난 6월8일 새 도청 청사를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검무산(劍無山·331m) 남쪽 자락에다 짓고 이전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
새 도청 청사가 들어설 검무산 남쪽 자락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장풍득수형(藏風得水型) 입지에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로 천년의 도읍지가 된 수도 서울의 지세를 빼닮았다. 새 도청이 들어서면 학가산은 도청의 진산이 된다. 새 도청에는 정산(289m)과 거무산(227m)이 좌청룡 우백호가 되고 남북으로 시루봉(185m)과 검무산이 주작(朱雀)과 현무(玄武)가 된다.
평화를 상징할 현무인 주산 검무산 앞에는 생명의 원천인 여자못(好民池)이 있다. 주작(안산)인 시루봉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강 건너편으로는 조산인 봉화산(400m)이 솟아 있다. 낙동강 왼쪽으로는 안동의 하회마을이 펼쳐져 있는데, 하류쪽 오른쪽에는 예천 내성천의 회룡포가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도 풍수지리적 요소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는데, 산과 강 그리고 동서남북의 방위가 사람과 한 지역의 운명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지리적인 자연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겠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이런 합리적인 풍수사상이 검무산 자락을 새 도청 후보지로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보인다.
새 도청 후보지 안동과 예천에는 중앙고속도로(55번)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도청의 청룡인 정산에서 서안동 나들목까지는 10분 거리이고, 도청이 들어서면 인접지역인 의성(30km), 상주(35km), 문경(27km), 영주(28km), 봉화(41km)까지도 100리길 안쪽이다. 지금도 예천이나 안동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전국 각지의 대도시들과도 그렇게 멀지 않는 거리다. 대구까지가 1시간 남짓, 서울과 부산도 2시간30분대로 닿을 수 있겠다. 먼 곳으로 치부되는 광주까지도 3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
대도시 보쌈전문점 능가하는 명소
청기와
강원도 영월과 경북 봉화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구룡산(1,344m)과 서쪽의 선달산(1,236m) 사이에 옥돌봉(1,244m)이 솟아 있다. 백두대간은 이곳 옥돌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오면서 안동대지맥을 이루는데, 안동땅과 예천땅의 경계지점에 우뚝 솟아난 산이 학가산(鶴駕山·882m)이다. 학가산은 그 산세가 마치 소백산에서 날아와 앉은 학을 사람이 타고 노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천 사람들은 학가산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학가산은 예천쪽에서 보아야만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중 어떤 분들은 예천군청 뒷산인 흑응산에서 바라다보는 학가산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주장까지 했다.
예천에서 학가산을 오르는 코스는 매우 단조롭다. 928번 지방도를 이용, 보문면 산성리 당재에서 느리티 마을을 산행들머리로 하고 하산코스를 보문면 우래리, 우래자연휴양림으로 잡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루트가 되어 있다. 들머리쪽에서는 먹거리집이 없고 휴양림으로 내려서면 휴양림에 매점이 딸린 식당(054-652-0114)이 있다.
학가산 산행나들목에서 10km 거리, 예천읍내에는 군청소재지답게 여러 종류의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인터넷에다 ‘예천의 명산’을 연재물로 올리고 있는 예천 흑응산악회의 장광현 사무국장을 만났다. 흑응산악회(회장 전재인)는 1988년 창립, 회원 160명, 257회의 산행기록을 자랑하는 20년 전통의 산악회로 등산로 정비와 정상표지석 설치 등의 사업도 펴고 있었다.
장광현 국장께 산악회 회원이 운영하는 업소 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찾아들어간 집이 군청에서 50m 거리에 있는 보쌈 전문점 ‘청기와 (054-652-7754)’였다. 업주 장덕호씨(40)가 예천 요산회 회원이었다. 예천 토박이인 장덕호씨가 예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외식업계에 뛰어들어 손댄 것이 바로 보쌈이었는데, 서울의 그 보쌈집은 현재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다.
고향에 돌아와서 식당 문을 열게 되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예천땅, 지역주민들은 외지사람이 와서 낯선(?) 음식을 차려내는 것으로 오해하더라는 것이다. 더욱이 부인 엄순희씨가 충청도 출신이라 고객들이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개업 초기에는 고전도 했다지만 이제는 단단히 기틀이 잡혔다고 한다.
먹거리집 식탁에 올라오는 주된 음식의 식자재가 수난을 당한다. 소고기가 그렇고 조류인 닭과 오리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여름철에는 물고기류의 식자재들도 수난이다. 말하자면 육수공(陸水空), 어느 한 곳도 온전해 보이는 곳이 없다. 그런데 육(陸)에 속하는 돼지고기만은 무풍지대처럼 보인다. 이 집에서 차려내는 보쌈의 식자재가 돼지고기다.
업주가 처음 대도시에서 음식공부를 제대로 된 집에서 제대로 공부한 것이다. 콩 심은 곳에 콩 나듯, 청기와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을 차려내고 있었다. 대도시 보쌈전문업소의 수준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보쌈 20,000~25,000원, 감자탕 15,000~20,000원, 소머리국밥·뼈다귀해장국 5,000원, 삼겹살 6,000원, 냉면 4,000원.
“안동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음식이래요”
안동국시 안동식혜
학가산은 안동을 대표하는 하는 산이자 예천의 산이기도 하다.멀지 않는 곳에 솟아 있는 소백산(국립공원) 청량산(도립공원) 주왕산(국립공원)의 명성에 가려 큰 빛을 발하지 못하는 점이야 아쉽지만, 그래도 학가산은 안동을 대표하는 산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동의 산’ 저자인 안동의 신토불이 선비산꾼 권오춘 등반대장(한우리산악회)은 안동시민들이 쉽게 즐기며 오르는 학가산의 예찬론자다. 무엇보다 암릉인 정상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확 트인 주변 경관에 속마저 확 트인다는 자랑이다. ‘조망의 산’으로 일품이라는 뜻이다.
학가산은 안동의 도심에서 멀지 않고 도심에는 워낙 유명한 먹거리집들이 즐비한 탓일까. 산자락에서는 먹거리집을 찾지 못했다. 안동역과 버스터미널 앞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가히 먹거리의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들 중 하나인 건진국수를 잘 한다는 ‘안동국시 안동식혜(054-852-9799)’로 발걸음을 했다. 가톨릭상지대학 입구, 안동시 북문동 음식의 거리에 있는 이 집은 옥호 그대로의 음식이 차려져 나온다.
안동국시의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사투리. 밀가루의 사투리가 ‘밀가리’라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음식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밀가루는 봉투에 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아야 한다고도 했다. 봉투의 경상도 사투리가 ‘봉다리’다.
쫄깃한 면발과 육수에 국시의 맛이 좌우된다는데, 이 집의 국시는 콩가루와 밀가루의 배율을 3대1로 하고 지금도 사람의 손으로 홍두깨로 밀어 만든다. 육수는 다시마, 멸치, 무, 파, 양파를 기본으로 우려낸다. 건진국시란 안동국시를 차갑게 해서 애호박볶음, 실고추 등을 고명으로 얹어 먹도록 한 것이다. 주인은 국시 한 그릇만으로는 대접이 소흘하다고 느낀 것일까. 조밥에 상추쌈, 꽁치조림 등 몇 가지 반찬까지 내놓는다. 무우와 생강, 고추가루로 매콤하고 달콤하면서 톡 쏘는 맛의 안동식혜도 이 업소의 대표음식으로 한 자리 하고 있다.
안동국시·건진국시 각 4,500원.
주부시인의 엿장수마음 괴짜식당
우물가
‘물 / 한 잔 / 목마름을 축이고 // 밥 / 한 술 / 배고픔을 채우고 // 술 한 잔 시름을 달래고 // 친구들과 우물가에서 / 시 한 수 / 읊으며 / 이 밤을 즐길까 하노라’
안동에서 만난 안동의 순종토박이 김윤한 시인이 ‘우물가’로 가자고 한다. 안동은 유난히 더운 고장이라고 하는데, 찌는 듯한 무더위 한여름 날의 해거름, 댐의 고장인 안동에서 시인이 물가로 안내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얼쑤 좋구나!” 하고 따라간 곳이 안동문화원 바로 뒤편에 위치한 괴짜식당 ‘우물가(054-858-0553)’였다.
집 앞에는 분명하게 식당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서니 전혀 식당에 온 기분이 아니다. 마당에는 큰 감나무 한 그루를 둘러싸고 온갖 나무들과 꽃들이 춤을 추고 있다. 집 대문에서 15m나 될까. 식탁이 놓인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인 듯한 여인이 보였는데 반기는 기색도 인사도 없다. 방안 벽면을 살펴보니 그 흔해 빠진 차림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김연숙’이라는 이름으로 적힌 글들이 액자 속에 담겨 벽면 곳곳에 걸려 있다.
‘너는 맑아서 / 천 길 속을 보여줘도 부끄럼이 없고 / 나는 더러워 / 한 치의 가슴도 펼칠 수 없네 // 너는 지혜로워 / 돌아가고 넘어가고 막힘이 없고 / 나는 어리석어 가다가 웃고 춤도 추고 잔치도 열고 / 나는 옹졸해 / 조막손 펴 보려고 날마다 너에게 씻네’
김 시인에게 “주문을 하셔야지요” 했다. 그 말에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우물가’에서 단골들은 주문을 하지 않는단다. 찾아오신 것은 손님 마음이지만 음식을 차려내는 것은 ‘엿장수’인 주인 마음이란다. 주방에 준비된 것이 없는 것을 손님이 아무리 주문해본들 소용이 없는 일이란다. 그래서 단골들은 알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장군멍군’으로 음식값도 손님들이 알아서 계산한다고 했다.
먹음직해 보이는 김치가 큰 쟁반에 담기고 부추전과 아구찜이 식탁으로 올라왔다. 김윤한 시인은 직접 나가서 검정색이 나는 동동주 한 됫박을 담아서 온다. 검정콩 동동주란다. 그제서야 집주인이라는 여인이 나타나서 맛있게 드시라고 한다. 참으로 별난 식당인데, 안동의 시인묵객들은 이 집을 식당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사랑방으로,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우사육농가와 소비자 직접 만나는 마당
황소곳간
한우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한 때는 우리들의 일손을 도운 큰 일꾼으로, 논밭을 갈며 수레를 끌던 큰 머슴으로, 우리들과는 한 식구였다. 또 한 시절에는 농촌 젊은이들의 배움을 뒷받침했던 등록금이었고 살림의 밑천이기도 했다. 지금의 한우는 외국에서 밀려오는 수입소고기에 대항, 우리의 식탁을 굳건히 지키는 토속 먹거리로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안동지방은 예로부터 소를 팔고 사는 집산지로 소시장 등 소와 밀접한 인연을 갖고 있는 고장이다. 깨끗한 물과 알맞은 기후 등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자란 안동한우는 특유의 맛과 향이 어우러진 질 좋은 소고기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이러한 소를 사육해 오던 안동의 풍산명품한우작목회가 영농법인을 설립하고 유통과정 없이 바로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황소곳간(054-843-2001)’이라는 직매장을 열었다.
황소곳간은 한우사육 13농가가 출자, 지난 2월22일 안동시 풍산읍 안교리 풍산장터 외각도로변에다 문을 연 것이다. 300석의 식당과 식육부를 함께 운영하는 이 곳에서는 회원농가에서 직접 사육한 순수 한우의 1등급 이상의 고급 육(肉)만으로 차려내는 등심, 갈비살, 모듬, 불고기, 육회 등을 먹을 수 있다. 도축과 육가공을 직접 하는데다 유통과정이 전혀 없는 터라 음식값이 다른 업소에 비해서 엄청나게 싼 것이야 당연하겠다. 식당 한 켠은 식육부로 고기 구매도 가능하고 전국 각지로 택배도 해 주고 있다.
황소곳간에서는 손님들이 한우를 맛있게 드시도록 도축된 고기를 4일에서 7일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친 다음 내놓는다. 금방 도축된 고기는 신선하지만 질기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고기를 구울 때는 센 불에서 짧은 시간에 익히고 한 번만 뒤집는다. 아무리 좋은 한우 고기라도 굽는 방법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센 불에 쇠고기를 익히면 가열시간이 짧아져 육즙의 유출을 줄일 수 있다.
또 한 가지 냉동된 고기는 서서히 녹이고 한번 녹인 고기는 다시 얼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녹인 냉동육은 녹였을 때 다 먹도록 하고, 다시 냉동할 경우 인체에 해가 될 미생물의 번식 등 위생 상의 세심한 배려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의 업소에 주차공간마저 충분하게 확보해 놓았기에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인데, 업소에서 6km 떨어진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관광객들의 버스가 꼬리를 물고 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전국 각지의 분들이라 금방 전국적인 업소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것이 법인 설립을 주도하고 영업과 홍보를 맡고 있는 송재성(宋在成·52) 이사의 설명이자 자랑이었다.
등심(200g) 14,000원, 갈비살모듬(150g) 16,000원, 모듬(200g) 10,000원, 주물럭불고기(200g) 6,000원.
민속주 안동소주 한국술의 자부심
주선(酒仙) 이태백(李太白)은 ‘만고(萬古)의 시름을 씻어 내리려 연거푸 삼백 항아리의 술을 마신다’고 읊었다. 인생의 유연함과 현실 속 좌절감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이태백은 오강(烏江)에서 뱃놀이를 하던 중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생애나 그의 시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그가 술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술을 사랑했지 술의 노예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선이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는 고유의 전통주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막걸리와 약주, 그리고 소주가 고유의 전통민속주인데, 이 중에서도 소주를 대표적인 전통민속주로 내세운다. 소주는 곡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하여 만드는 증류주다. 아무리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통민속주의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 전승하고 있는 술이 민속주 안동소주다. 안동소주는 1987년 5월13일 도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고 조옥화 (趙玉花) 여사가 그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90년 9월1일에는 안동소주 제조면허를 받아 생산,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 민속주 가운데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은 45도, 목젖을 타고 흐르면서 느껴지는 화끈함과 입안이 개운해지면서 엷게 번지는 취기, 맛에 반하고 흥에 겨워 과음을 하더라도 절대로 뒤탈이 없는 깔끔한 술. 그래서 안동소주는 안동 선비들의 풍류와 함께 안동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의 최상급 명주, 한국술의 자부심이 되어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주 안동소주는 자손 만대까지 전승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능보유자 조옥화 여사의 며느리 배경화(裵京華)씨가 기능후보자로 지정되어 대를 잇게 되었다. 배경화씨는 안동소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에 출강하기도 한다.
안동소주 제조장 안에는 문화관광부 등록(제161호) 안동소주박물관(관장 김연박)이 문을 열어 놓았다.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이 박물관에서는 안동소주의 양조과정을 위시해 민속주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과 전통음식들이 재현되어 있는데, 특히 1999년 4월21일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조옥화 여사가 직접 차렸던 여왕 생일상이 눈길을 끈다.
안동소주박물관은 도산서원이나 하회마을 등 안동권을 찾는 관광객들의 견학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소주를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장과 시음장까지 갖추어져 있다.
경북 안동시 수상동 280. www.andongsoju.com, 전화 054-858-4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