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성경 욥기서를 들으며 역지사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가르침이다. 욥의 고난은 반드시 잘못에 대한 응징일 것이라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의 대응에 당사자인 욥의 고난은 이루 말로다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성경 기록자는 모든 시련의 출발이 사탄의 참소때문이라는 서론을 대할수 있으니 욥의 친구들과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지 못한다면 우리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지사지라는 단어를 명심한다면 결코 욥의 친구들과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역지사지 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은 날마다 내가 죽는 삶이다. 바로 예수와 동행하는 자는 남을 정죄하지 않는자이고 역지사지 하는 자이다. 오전에 넷째 사촌형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빙모상을 당해 장례식을 마치고 부조해준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차 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안에서는 나 외에는 아무도 부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고 분노와 한탄을 하셨다. 사실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장례식장이 있어서 조문을 직접 다녀오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가 부조했으면 됐지 굳이 뭐하러 가느냐고 하니 그냥 포기했는데, 오늘 전화를 받고보니 후회가 된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성의표시인데 내가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