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의 관계의 기초는 1:1의 관계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앙인이라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켜 나가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관계 형성에서는 나와 나의 주님과의 사이에 형성된 다이렉트 라인이 아닐까.
그 생각을 확실해 준 것이 사실 우리 어머님의 기도였다.
어제 성 토마스 축일 미사의 강론도 복음도 "나의(저의) 주님, 나의(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또 어머님의 기도를 떠올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 아드님을 하늘 나라로 보낸 후 우리 집에 오신 어머님.
그 슬픔을 갈무리하고, 어머님은 우리 집만의 독특한(?) 문화에 잘 적응하고 계신다.
그것이 올곧이 당신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기초한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나와는 달리 시댁은 개신교 집안이다. 아이 아빠는 쉬고 있지만,
어머님은 내가 어머님을 안 그날로부터 이날 이때까지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신다.
약간의 치매기를 동반하신 어머님,
그 어머님은 물을 한 잔 마실 때도, 약을 드실 때도 기도를 잊지 않으신다.
나는 그런 어머님의 기도를 처음엔 예사로 들었다.
그 기도들이 꼭 방언을 하듯, 내용을 알수 없는 기도들이 특이한
곡조를 타고 울려퍼졌다. 그래도 그저 방언을 하시나?하긴...성령이 충만하면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간과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날은 쉬는 날이라 아침나절 내내 이부자리에서 뒹굴고 있었는데
아침을 드시면서 하는 기도가 아주 또렷하게 내 귀에 와 박혔다.
그리고 나는 그 기도를 들으며 가슴이 벅차 울어버렸다.
"주님, 오늘은 2007년 0월0일입니다, 당신 종 000가 이제 아침을 먹습니다.
된장국과 김과 밥 한공기를 당신 은총으로 먹게됐습니다. 된장국은 멸치을 우려낸 물에
감자와 풋고추와 양파와 두부를 넣고 며느리가 끓여줬습니다. 이 밥을 먹을 때 흘리거나
실수하지 않게 해주시고, 소화를 잘 시키게 해주시고, 교회에 갈 때 길을 잃지 않게 해주시고,
다른이들과 다툼이 없게 하시고, 설교를 잘 알아듣게 해주시고,....."
그렇게 기도를 하신 후 어머님은 된장국과 밥 한공기, 그리고 약간의 김만으로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 아침 식사를 하신다.
그 시간에는 보시던 TV도 끄고 오직 밥을 드시는데 온 정성을 다하신다.
나나 아이아빠, 아이들 그 누구도 그 긴시간 어머님의 밥상을 지켜드릴 수가 없다.
정성된 기도에 이은 정성된 밥 먹기. 그것은 차라리 주님께 올리는 제사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의 모든 일상을,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당신 하느님께 정성껏 고하는 그 기도는
벼락처럼 나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으며, 순간 하느님이 보시기에 어머님의 기도는
얼마나 예쁠까....그저 어머님의 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오롯한 주님께 지향하는 마음인
것을...노래처럼 하루 일과를 말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나는 그날 아침
베개가 젖을만큼 모처럼 순수하게 울었다.
아이들은 가끔 쉬는 날 할머니의 기도를 듣고 "엄마, 할머니 기도 이상해"라고 말한다.
나도 그랬으리라,. 젊은 날에는.
하지만 나는 여지껏 어머님처럼 기도해 보지도 못했고,그런 기도는 생각지도 못했다.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아름답게 올라가는 기도인가.
그날, 어머님의 기도를 듣고 흠뻑 울어버린 날,
나는 그냥 어머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분명 그것은 은총이었다.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듯,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받아들이기 원하는 것이리라.
지난 주말에는 어머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어머님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그 작고 가녀린 어깨를 보듬으면서
살아오신 세월이 잡혀 또한번 눈물이 났다.
나를 나아주고 길러주신 내 엄마는 지금 중풍으로 누워계신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목욕을 가고 싶어도 갈 수도 없다.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다만 아이 아빠를 낳고 길러주신 분이 내 곁에 있다.
내 몫은 그분과 함께 가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올케와 함께 가는 것이리라.
아주 단순하고 오래된 우리네 관습이 그날따라 왜그리 깊이 마음에 박히는지...
내가 어머님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내 안에 스스럼없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오빠네 집에서 우리엄마와 오빠와 올케와 조카들이
그런 관계로 형성되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을 낳았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수고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단지 엄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단지 아버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분들은 당당하게 살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어머님의 기도를 통해 사심없이 받아들였다고 고백한다.
삶은 수고하는 것이고,
그 수고가 주님 안에서 되갚아질 때...
그 무거운 짐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날의 은총이 아닐까.
첫댓글제가 사모하는 어떤분이 글에서 그랬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을때 목욕가서는 반드시 한분의 할머니를 의식적으로도 찾아서 등을 미셨답니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엄마도 누군가에게 등을 맡겨지기를 하고요 어째보면 굉장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것 같지만 좀더 열린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공동체적 선(하느님보시기에 아름다운)이 뚜렸함을 발견할 수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것을 배제하고라도 부모의 열외는 궁국적으로 자신의 열외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공동체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으므로 제대로된 사랑으로 운영이 되어야 하겠지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저께 출장에서 돌아와서 늦은 저녁으로 상치를 씻어 맛있게 쌈을 사서 먹는 나를 지긋이 보시더니 오늘은 시장에서 싱싱한 상치를 사오셨습니다. 내일은 또 어머님이 사주신 상치로 쌈사먹어야겠어요.오늘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거든요.ㅎㅎ 애린님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제가 사모하는 어떤분이 글에서 그랬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을때 목욕가서는 반드시 한분의 할머니를 의식적으로도 찾아서 등을 미셨답니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엄마도 누군가에게 등을 맡겨지기를 하고요 어째보면 굉장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것 같지만 좀더 열린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공동체적 선(하느님보시기에 아름다운)이 뚜렸함을 발견할 수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것을 배제하고라도 부모의 열외는 궁국적으로 자신의 열외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공동체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으므로 제대로된 사랑으로 운영이 되어야 하겠지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어느 때인가부터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마음에 들어섰을 때부터 어쩌면 나의 관찰과 관계성이 새로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친정엄마나 시어머니나...나루터님, 늘 행복하세요.
글을 읽어가는동안 제 눈시울도 젖어들고 있음을...아름다운 '관계'에 감동먹고 갑니다. 두 분, 늘 평안하소서..
그저께 출장에서 돌아와서 늦은 저녁으로 상치를 씻어 맛있게 쌈을 사서 먹는 나를 지긋이 보시더니 오늘은 시장에서 싱싱한 상치를 사오셨습니다. 내일은 또 어머님이 사주신 상치로 쌈사먹어야겠어요.오늘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거든요.ㅎㅎ 애린님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중심에 받아들인 글빛고을 삽님! +주님의 은혜을 입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