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티는 11일(한국시간)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서 열린 파르마와의 세리에A 경기에 출전했다. 452번째 경기(세리에A, 코파 이탈리아, UEFA 주관 경기 등 포함)에 출전한 토티는 지아코모 로시(1955∼1968)를 제치고 AS 로마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로마에서 태어난 토티는 정통 AS 로마맨. 어렸을 적부터 AS 로마의 열혈팬이었던 토티는 AS 로마 유스팀을 거쳐 지난 1993년 16살의 나이에 AS 로마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빅 클럽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지금까지 AS 로마서만 활약하고 있다. 토티는 38살까지 AS 로마서 활약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로 대단한 충성심을 소유자이다.
이적이 자유로운 현대 축구에서 토티와 같이 한 클럽에서 활약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적이 지금보다는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특정 클럽에서 데뷔해 은퇴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 옮기고, 또 옮기는 저니맨
한번도 이적을 하지 않은 선수가 있는 반면 이적을 수시로 하는 선수들도 많다. 자주 유니폼을 바꿔입는 선수들을 가리켜 저니맨(Journeyman)이라도 한다.
새로운 무대에 도전, 빅클럽의 러브콜, 구단·감독·동료들과의 불화, 임대 등 구단을 옮기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저니맨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존 부릿지를 들 수 있다. 잉글랜드 출신의 골키퍼였던 부릿지는 선수 생활 27년 동안 15개의 잉글랜드 클럽, 5개의 스코틀랜드 클럽의 경기에 출전했다. 4개의 잉글랜드 클럽, 1개의 스코틀랜드 클럽에서는 1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다. 또 6개의 논리그(Non-league) 클럽을 거쳤다. 부릿지가 속해본 클럽만 31개다.
자주 옮겨 다니고 있는 현역 선수로는 프랑스 대표 출신 공격수 니콜라스 아넬카(볼튼)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995년 파리 생제르망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아넬카는 이후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페네르바체 등서 활약했다.
잉글랜드 출신 공격수 마커스 벤트(찰튼)도 이력서에 브렌트포드, 크리스탈 팰리스, 포트 베일, 세필드 유나이티드, 블랙번 로버스, 입스위치 타운, 레스터 시티, 에버튼 등 10개의 클럽을 올렸다.
K리그행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는 코스타리카 출신 공격수 파울로 완초페(FC 도쿄)도 무수히 옮겨다녔다. CS 에레디아노, 더비 카운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말라가, 알 가라파, 로자리오 센트라 등이 완초페의 둥지들이었다.
이탈리아 대표 출신 크리스티안 비에리(아탈란타)도 이력서의 줄이 부족할 정도로 이적이 잦았다. A.C.프라토, 토리노, 피사 칼치오, 라벤나 칼치오, 아탈란타, 유벤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치오, 인터밀란, AC 밀란, AS 모나코 등이 비에리의 거처였다.
◆ 시작부터 끝까지
데뷔한 클럽에서 은퇴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팬들은 이들을 소년 티가 남아있는 10대부터 중후함이 뭍어나는 30대 중반까지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팬들은 전설(레전드)로 추앙하며 여전히 가슴 한켠에 그들을 묻어둔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지만, 잘 생긴 나무도 산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다.
현재 잉글랜드 포츠머스서 코치로 재직 중인 토니 아담스는 아스날의 전설이다. 아담스는 수비수 출신이라 화려한 맛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늘 아스날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아스날 유스팀 출신으로 1984년에 성인 무대에 데뷔한 아담스는 2002년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은퇴했다. '선수'로서 요담에서 무덤까지 아스날서 함께 한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 출신 공격수였던 매튜 르 트시에도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사우스햄튼서만 활약했다. 트시에는 요즘도 페널티킥 상황이 연출될 때 자주 언급되곤 한다. 트시에는 현역 시절 총 50차례 페널니킥 키커로 나서 49회를 성공, 명중률 98%를 자랑한 명사수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도 AC 밀란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은퇴까지 했다. 1978년부터 1996년까지 AC 밀란의 역사는 바레시를 빼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다. 바레시의 공헌과 충성심을 기리고자 AC 밀란의 6번은 영구 결번이다. 현재는 바레시와 AC 밀란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파울로 말디니, 알렉산드로 코스타쿠르타가 바레시의 뒤를 잇고 있다. 코스타쿠르타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AC 밀란의 연고 라이벌 인터밀란서는 주세페 베르고니가 대표적이다. 베르고니는 1981년부터 1999년까지 네라주리(푸른색과 검은색의 인터 밀란 유니폼)만 입었다.
스페인서는 데포르티보서만 활약했던 프란이 대표적이다. 프란은 1989년부터 2005년까지 데포르티보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토마스 샤프는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 기념비라도 하나 만들어줘야 할 정도. 브레멘서 1978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94년 은퇴한 샤프는 현재 브레멘의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도 훌륭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태영(전 관동대 코치), 박태하(포항 코치) 등이 전남, 포항에서만 각각 활약했다.
◆ 현재 진행형의 터줏대감
토티, 말디니, 코스타쿠르타처럼 현재 진행형인 터줏대감들도 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등 베테랑 3총사가 그들이다. 모두다 맨유의 유스팀 출신으로 현재까지 올드 트래포드를 안방으로 누비고 있다. 맨유서 은퇴할지가 관건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애제자들의 은퇴까지 배려할지는 미지수다.
리버풀의 스티브 제라드도 진정한 리버풀맨이다. 마이클 오언(뉴캐슬)이 떠나면서 제라드가 리버풀서 차지하는 상징성은 더욱 높아져, 어느덧 리버풀하면 가장 먼저 떠어오르는 아이콘이 됐다. 소년의 티를 벗지 못했던 1997년 성인 무대에 첫발을 딛은 제라드는 한때 첼시로 이적할 수도 있었으나, 리버풀에 남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미국 구단주가 제라드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약속대로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리버풀을 우승할 수 있는 클럽으로 만든다면, 제라드도 끝까지 할 가능성이 높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라울 곤살레스도 레전드의 길을 밟고 있다.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 2군을 거쳐 지난 1994년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했다.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서 겪어본 감독만 10명이 넘고, 회장도 6명이나 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반드시 언급되어야할 백사자군단의 간판이다.
토티는 11일(한국시간)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서 열린 파르마와의 세리에A 경기에 출전했다. 452번째 경기(세리에A, 코파 이탈리아, UEFA 주관 경기 등 포함)에 출전한 토티는 지아코모 로시(1955∼1968)를 제치고 AS 로마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로마에서 태어난 토티는 정통 AS 로마맨. 어렸을 적부터 AS 로마의 열혈팬이었던 토티는 AS 로마 유스팀을 거쳐 지난 1993년 16살의 나이에 AS 로마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빅 클럽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지금까지 AS 로마서만 활약하고 있다. 토티는 38살까지 AS 로마서 활약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로 대단한 충성심을 소유자이다.
이적이 자유로운 현대 축구에서 토티와 같이 한 클럽에서 활약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적이 지금보다는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특정 클럽에서 데뷔해 은퇴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 옮기고, 또 옮기는 저니맨
한번도 이적을 하지 않은 선수가 있는 반면 이적을 수시로 하는 선수들도 많다. 자주 유니폼을 바꿔입는 선수들을 가리켜 저니맨(Journeyman)이라도 한다.
새로운 무대에 도전, 빅클럽의 러브콜, 구단·감독·동료들과의 불화, 임대 등 구단을 옮기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저니맨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존 부릿지를 들 수 있다. 잉글랜드 출신의 골키퍼였던 부릿지는 선수 생활 27년 동안 15개의 잉글랜드 클럽, 5개의 스코틀랜드 클럽의 경기에 출전했다. 4개의 잉글랜드 클럽, 1개의 스코틀랜드 클럽에서는 1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다. 또 6개의 논리그(Non-league) 클럽을 거쳤다. 부릿지가 속해본 클럽만 31개다.
자주 옮겨 다니고 있는 현역 선수로는 프랑스 대표 출신 공격수 니콜라스 아넬카(볼튼)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995년 파리 생제르망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아넬카는 이후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페네르바체 등서 활약했다.
잉글랜드 출신 공격수 마커스 벤트(찰튼)도 이력서에 브렌트포드, 크리스탈 팰리스, 포트 베일, 세필드 유나이티드, 블랙번 로버스, 입스위치 타운, 레스터 시티, 에버튼 등 10개의 클럽을 올렸다.
K리그행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는 코스타리카 출신 공격수 파울로 완초페(FC 도쿄)도 무수히 옮겨다녔다. CS 에레디아노, 더비 카운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말라가, 알 가라파, 로자리오 센트라 등이 완초페의 둥지들이었다.
이탈리아 대표 출신 크리스티안 비에리(아탈란타)도 이력서의 줄이 부족할 정도로 이적이 잦았다. A.C.프라토, 토리노, 피사 칼치오, 라벤나 칼치오, 아탈란타, 유벤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치오, 인터밀란, AC 밀란, AS 모나코 등이 비에리의 거처였다.
◆ 시작부터 끝까지
데뷔한 클럽에서 은퇴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팬들은 이들을 소년 티가 남아있는 10대부터 중후함이 뭍어나는 30대 중반까지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팬들은 전설(레전드)로 추앙하며 여전히 가슴 한켠에 그들을 묻어둔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지만, 잘 생긴 나무도 산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다.
현재 잉글랜드 포츠머스서 코치로 재직 중인 토니 아담스는 아스날의 전설이다. 아담스는 수비수 출신이라 화려한 맛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늘 아스날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아스날 유스팀 출신으로 1984년에 성인 무대에 데뷔한 아담스는 2002년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은퇴했다. '선수'로서 요담에서 무덤까지 아스날서 함께 한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 출신 공격수였던 매튜 르 트시에도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사우스햄튼서만 활약했다. 트시에는 요즘도 페널티킥 상황이 연출될 때 자주 언급되곤 한다. 트시에는 현역 시절 총 50차례 페널니킥 키커로 나서 49회를 성공, 명중률 98%를 자랑한 명사수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도 AC 밀란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은퇴까지 했다. 1978년부터 1996년까지 AC 밀란의 역사는 바레시를 빼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다. 바레시의 공헌과 충성심을 기리고자 AC 밀란의 6번은 영구 결번이다. 현재는 바레시와 AC 밀란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파울로 말디니, 알렉산드로 코스타쿠르타가 바레시의 뒤를 잇고 있다. 코스타쿠르타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AC 밀란의 연고 라이벌 인터밀란서는 주세페 베르고니가 대표적이다. 베르고니는 1981년부터 1999년까지 네라주리(푸른색과 검은색의 인터 밀란 유니폼)만 입었다.
스페인서는 데포르티보서만 활약했던 프란이 대표적이다. 프란은 1989년부터 2005년까지 데포르티보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토마스 샤프는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 기념비라도 하나 만들어줘야 할 정도. 브레멘서 1978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94년 은퇴한 샤프는 현재 브레멘의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도 훌륭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태영(전 관동대 코치), 박태하(포항 코치) 등이 전남, 포항에서만 각각 활약했다.
◆ 현재 진행형의 터줏대감
토티, 말디니, 코스타쿠르타처럼 현재 진행형인 터줏대감들도 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등 베테랑 3총사가 그들이다. 모두다 맨유의 유스팀 출신으로 현재까지 올드 트래포드를 안방으로 누비고 있다. 맨유서 은퇴할지가 관건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애제자들의 은퇴까지 배려할지는 미지수다.
리버풀의 스티브 제라드도 진정한 리버풀맨이다. 마이클 오언(뉴캐슬)이 떠나면서 제라드가 리버풀서 차지하는 상징성은 더욱 높아져, 어느덧 리버풀하면 가장 먼저 떠어오르는 아이콘이 됐다. 소년의 티를 벗지 못했던 1997년 성인 무대에 첫발을 딛은 제라드는 한때 첼시로 이적할 수도 있었으나, 리버풀에 남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미국 구단주가 제라드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약속대로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리버풀을 우승할 수 있는 클럽으로 만든다면, 제라드도 끝까지 할 가능성이 높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라울 곤살레스도 레전드의 길을 밟고 있다.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 2군을 거쳐 지난 1994년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했다.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서 겪어본 감독만 10명이 넘고, 회장도 6명이나 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반드시 언급되어야할 백사자군단의 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