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추석주일이고 금주가 추석 연휴라 벌써부터 다들 마음이 분주합니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가정마다 가을철 별미이자 추석 음식을 대표하는 메뉴 중 하나인 들깨 알토란탕을 준비합니다. 토란에는 가렴증 성분이 있고 또 끈적한 점성 뿐 아니라 아린 맛이 나는 독성도 있어서 껍질을 까는 일부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 때는 우리네 식탁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오랜 전통식입니다. 저도 전에 교회밭을 가꿀 때는 토란을 직접 심고 수확해 꼭 들깨 알토란탕을 끓였는데 요즘은 시장에서 사다 끓여서 그런지 왠지 맛이 덜한 느낌입니다.
껍질을 손질한 토란은 쌀뜨물에 소금을 좀 넣고 삶은 후 흐르는 물에 몇 번이고 씻어주면 깔끔해집니다. 거기다 마늘, 마른 새우, 들깨 가루, 간장을 넣어 골고루 섞어 놓고 보통은 다시마로 육수를 내기도 하지만 마른 새우를 넣었기 때문에 그냥 적당량 생수를 부어 끓여도 좋습니다. 팔팔 끓기 시작하면 거품을 떠내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식탁에 올릴 때 송송파를 얹어내면 되는데 저는 소고기 양지로 맑게 끓인 것보다는 들깨를 넣고 끓인 걸 더 좋아합니다. 맛이 진하고 톱톱하고 고소하고 포근포근하여 추석절에는 이보다 더 어울리는 탕도 없을 듯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전통 음식이 있습니다. 지난 3천 년 간 지켜온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가장 철저한 푸드 전통인 <코셔>(Kosher)가 바로 그것입니다. <코셔>란 <적당한, 합당한>이란 뜻을 가진 말로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나오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한 율법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따라서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만이 코셔 푸드에 해당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끼, 너구리, 낙타, 돼지 등은 부정한 동물로 분류돼 도살, 섭취, 유제품 생산 등이 다 금지되어 있습니다. 조류와 어류, 해산물 중에서는 박쥐, 독수리, 매 등의 맹금류,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장어, 미꾸라지, 조개류 등이 코셔 푸드에 들지 못해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식품 <트라이프>(Traif)로 분류됩니다.
유대인들의 코셔 푸드는 무슬림의 할랄 푸드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엄격하고 극단적이어서 무슬림은 코셔 푸드를 이용해도 유대인은 할랄 푸드를 먹지 않습니다. 심지어 코셔 푸드는 출애굽기의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23:19)는 말씀에 근거해 육류와 유제품을 동시에 섭취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맥도날드에는 치즈버거가 없습니다. 도축도 랍비의 입회 하에 병들지 않은 건강한 짐승을 한 번에 고통 없이 죽인 뒤, 피를 모두 제거한 고기만을 식품으로 유통하거나 조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코셔>란 율법에 따라 식재료 선정에서부터 도축,유통과 조리는 물론 조리기구와 심지어는 십일조를 낸 기업의 제품까지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인증 절차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코셔 푸드>는 이제 유대인들만의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미국과 캐나다 같은 북미권을 중심으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안전한 식품>으로 인식되면서 해마다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코셔 푸드 시장 규모는 약 2500억 달러(약 278조)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2011년에 청정원이 업계 최초로 천일염 <신안섬 보배>라는 브랜드에 대해 코셔 인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글로벌 식품사들인 네슬레, 스타벅스 같은 기업들 또한 대표적인 코셔 기업으로 광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코셔 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알배기 배추전에 들깨 알토란탕이면 올 추석도 더 바랄 게 없을 듯...
모쪼록 넉넉하고 풍성한 추석 연휴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