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전 종친회 부회장님
수고가 많습니다
김자상(27대) 할아버지의 ‘고녕가야의 문화’ 자료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수고 쓰렵지만 함창김씨 파계도[咸昌金氏 派系圖] (2013년 6월) 수정본이
홈페이지에 뜨지 않습니다. 다시 게제를 부탁 드립니다
숙제 1 고녕가야 古寧伽倻[고녕가야]로 통일하는 일(高靈伽倻가 아님)
2. 함창에 고분은 많은데 상주시에서 함창박물관 건립 요청
6가야중에 박물관이 없는 곳이 고녕가야, 성산가야 두곳)
3. 친일 사학의 임나일본부에 적극 항의
4. 임나일본부가 고녕가야를 진주에 도읍 했다는 엉터리 주장에 반발
5. 함창김씨로 왕손의 후예임을 자긍심과 자부심 갖기 운종전개
6.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 고증합시다
*7. 김석하 교수의 古寧伽倻國 史蹟碑文 (고녕가야국 사적비문) 가야 이야기 널리 보급
古寧伽倻[고녕가야]는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을 도읍으로 하는
우리 함창김문의 시조 태조 고로왕의 가야국입니다.
高靈伽倻[고령가야는]
가야사에 없는 글입니다
경상북도 고령군에있는 大伽倻입니다.
함창김문을 앞으로 古寧伽倻[고녕가야]라 쓰도록 합시다
가야사에 분명하 고녕가야(古寧伽倻)입니다
삼국유사 삼국 사기에 가야국 명칭에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았습니다
김해(金海)는 가락(駕洛)이고, 금관가야(金官加耶) 42~532
함창(咸昌)은 고녕가야(古寧伽倻)이며, 42~255
고령(高靈)은 대가야(大伽倻)이고, 42~562(신라 합병)
성주(星州)는 벽진(碧珍) 또는 성산(星山)伽倻이며, 42~
함안(咸安)은 아라가야(阿羅伽倻)이고, 42~531
고성(固城)은 소가야(小伽倻)라하였다. 42~248
*함창김씨는 고녕가야(古寧伽倻) 입니다
* 가야를 5가야, 6가야, 7가야로 말하는 사학자도 있다
5가야(금관, 고녕, 성산, 대, 아량)
6가야(금관, 고녕, 성산, 대, 아량, 소가야)
7가야(금관, 고녕, 성산, 대, 아량, 소가야, 비화가야(창녕)
고녕가야 도읍지 함창의 지명변경사
고령가야국(古寧=고녕 - 지금의 함창)
서기 42년 고녕가야(古寧伽倻) 건국 당시 古冬攬郡(고동람군)
서기 562년 신라 진흥왕 - 古冬攬郡(고동람군) 혹은 고릉(古陵)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 고령군(古寧郡)
서기 964년 고려 광종 - 함녕군
서기 1018년 고려 현종 - 함창현(상주목 속)
서기 1413년 조선 태종 - 함창 현감
서기 1895년 함창군(7개면-현내면, 동, 북, 남, 수상, 수하, 상서)
서기 1914년 상주군에 병합되었음.
[고령(古寧) - 고동람군(고릉) - 함녕 - 함창]
함창김씨 본관에 대해 咸昌(咸寧) 김씨
757년 신라 경덕왕 – 고령군(古寧郡)이
964년 고려 광종 – 함녕군
함녕군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본을 함녕김씨로 하였으나
1018 고려 현종때 함창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지금까지 함창으로 쓰고 있다
최초로 西紀 1782년 古寧紀元 1741년[正祖(정조) 6년] 壬寅譜 임인보 5권(미보유)
족보(임인보)가 만들어짐에 따라 "함창"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함창 및 주변에 거주하시는 분들에게 익은 함녕을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본관 (관향,본)은 함창김씨이다.
사이비 사학자 식민사관을 가진 매사(매국국사학자) 가야국史 비하
(임나일본부 주장)
아유카이 후사노신과 일제 관변 식민사학자 소키치· 이마니시 류·
쓰에마스 야스카즈 등이 왜곡·조작한 ‘조선사 35권’을 바탕으로
일제는 조선인에게 우리 조선 ‘국사’라며 강압적으로 가르쳤고,
해방 후에는 일제에 기생하던 이병도·신석호가 독재에 부역하며,
뿌리내려 온 것이 지금의 강단 식민 사이비 역사학계다.
그들은 철저히 ‘도제 사학’ 형태로 대를 잇고,
뿌리 뻗어 대한민국 전체 사학계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렸다.
국립 중앙박물관ㆍ국립 경주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립 김해박물관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한 7개 박물관의 가야국史 기록은
일본서기의 임나 국명·지명으로 간교하게 왜곡하였으며,
지방자치단체의 가야국 역사편찬사업은 가야국史가 아니라,
『일본서기』‘임나일본부설’의 ‘임나史’로 완전히 도배하여
대한민국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여 왔다.
천만다행으로 2020년 8월 남원시민 '역사광복군'에게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에
조작된 기록이 들통났고,
또 몰래 추진해왔던 『전라도천년사』는 봉정식 직전 발각되어
그나마 ‘선공개 후발간’의 실오라기 기회에서 이제 폐간 길에 봉착해있다.
2010년 한ㆍ일 역사공동위원회가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한다고 한 것은 임나일본부에서
‘임나’는 그대로 두고, ‘일본부’를 안 쓴다는 뜻이다(국민을 속임),
그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마치 ‘임나일본부설’이 폐기됐다며 지금까지 속여 왔다.
참으로 뻔뻔스럽게 그들은 입장문에 "일본서기에 대한 엄정한 사료 비판을 통해
‘임나일본부설’ 등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한편,
고대 한·일 관계사를 재구축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라고 써놓았다.
“『일본서기』 ‘임나일본부설’의 임나 국명·지명을
한반도에다 제멋대로 비정하지 말라”
"선동의 악의적 매도이며, 학계에 대한 모독"이라 적었다.
저들의 언행은 참으로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그들의 거짓 기만에 기(氣)가 막히고,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매國매史의 역사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역사를 기록하라
식민사관청산 가야국史 바로잡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 (함창2)
고녕가야사 바로 찾기 과제
함창박물관 건립, 오봉산 및 병풍산 고분이 700기 관리 발굴이 필요하다.
고녕가야국의 함창 존립설에 대해서는 22년, 23년 3회째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이어가려며 지난 연구의 범위를 벗어나 새롭고 구체적인 연구의 주제로 학술대회가 진행되어야 한다.
2007년에는 경상북도 내의 고녕가야국, 사벌국, 압독국, 사로국, 우산국, 이서국, 조문국, 감문국, 골벌국의 9 개 성읍국가를
'고도읍'이란 명칭으로 고도가 존립할 당시 전해오는 유물 · 유적을 활용한 '지역 활성화 포럼'을 순회하며 개최하고 있다.
「가야문화권중장기종합 조사 · 연구 및 정비 」 의 일환으로 추진된 「가야문화권중장기 중합 조사 · 연구 종합계획)」수립에
함창의 고녕가야국을 포함하고자 가야연구전문가에게 건의와
「함창김씨 대종회」등 4 천여 명이 문화재청장에게 청원,
상주시장의 문화재 청장면담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공검지는 잔존 원형 제방,「이부곡 토성」 보존이 시급하다
출토 된 유물의 한 사례 를 본다면 갑옷의 일부인 같은 외형의 목 가리개가
국립 박물관 에서 유물 분류를 할때 함창 신흥리 는 '한국 / 삼국 ' 으로,
남원 월산리 는 ' 한국 / 가야 ' 로 분류한 오류를 범했다.
함창은 시대명칭으로 , 남원은 국적명칭으로 분류 하였으며 ,
함창은 같은 유형의 유물이라도 신라 지역 이므로 가야 로 표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술 대회에 상주 지역 암각화 의 문화 유산적 가치
함창 오봉산 바위 구멍 유적이 논의 되어.
함창지역의 고녕가야국 존립성 에 대한 의미 가크다.
학술 대회에서 고녕가야국 , 사량벌국 의 중심 추정지 주변에서 집중적 으로나타나는
암각을 문화유적의 언급이 필요하다
사량벌국 중심유적으로 소개되는 자산산성은 석축성으로서
687년 축성기록이 전하는 사벌주성으로 보인다.
상주의 성읍국가 연구검토 및 논의가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동일한 내용이 중복 또는 재논의 되는실정이다.
1세기에 건국된 5가야, 6가야
5가야 6가야 등 오가야로 불리는 가야는 애초에 없었으며
가야라는 이름을 달지 않은 소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가 건국되면서 몇몇 사람들이 공연히 그렇게 기록했다는 것이다.
김부식과 일연스님이 사서를 쓸 때 참고한 역사책은 고구려의 유기, 신라의 고기,
백제의 서기 등 다양한 역사책을 근거로 하였다.
중국의 삼국지, 후한서, 전당서 후당서 등 당시 유명한 사서는 모두 동원했다.
고려의 사가들이 아무런 근거나 검증 없이 임의로 사서를 썼을 리 없으며
식민사학자들, 종속사학을 추종하는 자들의 매국사관, 왜곡사관은
역사에 큰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하였다.
특히 일연스님은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국사의 신분으로서 고려의 자주성을 내세우며
고군분투하여 저술한 것이 [삼국유사]이다.
무엇이 실증인지 그 당시의 사상과 철학도 충분히 섭렵하지 못한 지식으로
우리의 고대 사서를 함부로 폄하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함창3)
첫댓글 연필 한자루님
매일 카폐에 좋은 글 올려 주셔 감사합니다.
근데 희철 전 회장님을 부회장님으로 직함을 잘 못써셨내요
그리고 종친 카페는 필명 보다
실명으로 몇대손
누구하면 더 정감이 가지않겠는지요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