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12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개역개정판)
잠언 29:12 통치자가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 신하들이 모두 악해진다 (새번역성경)
이사야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59:1 여호와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귀가 둔하여 너희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의 성경)
지도자의 도덕적 파산은
필연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사회악을 가속화시킨다.
잠언 29장 12절은
그러한 영적, 사회적 원리에 대한 고발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말씀대로
이러한 죄악이 반영된 우리네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울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찰스 스펄전 목사님 말씀대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설교도 열심히 들으며,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구원받은 것에 대한 증거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구도자(seeker)이면서도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이 부분이 나에게 와닿는다.
너는 정말 어떠하냐?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잠언 묵상을 하고 (앉아) 있냐?라고 물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문제니까...
여호와의 손이 짧아진 것이 아니다. (사 59:1)
세상 탓만 하고
지도자 탓만 하고 있을 것도 아니다. (잠 29:12)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
마음 속 깊은 곳
여전히 죄를 사랑하고
은밀한 죄를 끊어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성향이라 치부하면서
그걸 그대로 두면
죄악은 가속화된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지지 않았어도
내가 회개하지 않아 죄가 그대로 있으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진 것 같은 막막한 현실과 엄청난 의심이 찾아온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언급한 바 그대로
이사야 59장 7절과 8절은
죄악의 풍경을 서늘하게 묘사한다.
사 59:7-8 (개역개정판)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평강을 알지 못하는 것...
이것보다 큰 재앙이 있을까
사사기 시대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도 알지 못한다.
그것 자체는 죄도, 어리석음도 아니다.
그때는 그러한 시대였고
앞선 사사들의 온전치 못한 구원 때문이었는지
왕도 부재하던 시절
스스로가 왕처럼 행동해서였는지
관원이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면 백성들도 악하게 되는 것처럼 (잠 29:12)
그 시절 사람들도 그러했다.
문제는 여호와의 사자임을 알고 나서의 반응이다.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으니 이제 죽었다고 반응한다.
삿 13: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그러나 아내는 다르게 말한다.
삿 13: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우리 삶에 평강이 없음은
우리 탓이다.
여전히 구하러 오시는 주님의 손길조차 오해함은
지혜가 없는 탓이다.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님 말씀대로
이사야 59장 16절의 위대한 구원의 손길이
매일 같이 우리에게 임하는데 말이다.
사 59: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봐야겠다.
이사야 59장 1절 말씀으로 유명한 찬양이 있다.
그 유명한 최덕신 선교사(일본 Freedom Tokyo Worship Center, 프리덤 도쿄 워십 센터)의 찬양이다.
오직 우리 죄악이 라는 옛 찬양인데
방익수 목사(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사랑의 방주교회 前 담임목사)의 1집 찬양 영으로만 이라는 앨범(1996년)에 수록되었다.
30년 전 가을, 이 찬양을 처음 들으면서 큰 은혜를 누려왔던 기억이 있다.
하나님 사랑 없어서 우릴 절망 가운데 내버려 두심 아니요
하나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이는 우리 손이 피에 우리 손가락이 죄악에
우리 입술은 거짓에 더러웠으며
공의와 진리 없으며 어둠 가운데 행하며
죄와 허물이 심히 많으니
오직 우리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우리 죄가 그 얼굴 가리워서 우리를 듣지 않게 함이라
하나님 우릴 보시고 안타까이 여기사 친히 우릴 찾아오셨네
죄없는 하나님 아들 온 세상 죄를 모두 지시고
갈보리 언덕 오르셨네 어린양 예수
우리 질고를 지시고 우리 슬픔을 당했건만 우린 그사랑 외면했었네
우리 허물인해 찔리고 우리 죄악인해 상하고
우릴 살리시려 죽으셨네
오직 우리 죄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시게 했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
오직 우리 죄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시게 했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
최덕신 선교사야 뭐... 개인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10년전 가을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방익수 목사님과 관련된 소송 관련 소식...
미국에서 자주 들려오는
비자 관련 문제...
자세한 내용을 묵상에서 나눌 것이 아니지만...
오렌지카운티법원 배심원단 전원일치의 판결로 168만 2823달러(재산피해 38만 2823달러, 정신적 피해 및 징벌적 배상 130만 달러)... 당시 기준 18억, 2026년 기준 22억에 해당하는 엄청난 비용을 배상해야 했던 사항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피해를 보신 분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이미 그 사건 몇 년 전
라이브로 찬양할 때만 하더라도
매우 힘든 모습이었는데...
그리고 최근 들려온
최덕신 선교사의 건강 문제(뇌출혈 및 협심증)...
세월의 무상함과 빠름을 체감하게 한다.
누구 말 마따나 시간 금방 간다.
그렇게 더웠던 2026년 8월의 여름도
저 멀리 옛날로 여겨진다.
다시금 추워진다니
그 흐르는 세월 동안
우리는
아니, 나는
하나님이 도와주실 능력이나 의지가 없으신 것은 아닌지
아니면 도대체 내가 하나님과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사탄이 끊임없이 공격하는 바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끊임없이 생각했던 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하나님은
도와줄 능력이나 의지, 심지어 관심조차 없는 것 아니냐는
지극히 유치한 생각이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도록
나 자신을 슬픔과 우울의 자리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옛찬양을 다시 반복해서 드리고자 한다.
남들이야 어찌든지
지난 날이야 어찌되었든지
나는 오늘을 살아야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늙을지언정
조금이라도 더 나아야하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https://youtu.be/0XgaMZ3DxEw?si=GJ-cyqCtMmVB03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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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XF-vk_JMN0?si=kU3puUo7cJBBCV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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