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노아가 방주를 만듦
[1-2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를 가리킬 수 없다. 왜냐하면 천사는 육체가 아니므로 본질상 사람과 결혼할 수 없으며(눅 20:35-36) 또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천사들에게 징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징벌하셨기 때문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자손들을 가리켰고, ‘사람의 딸들’은 불경건한 가인의 자손들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라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경건한, 거룩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사람의’라는 말은 ‘사람에게 속한, 사람의 본성 그대로의’라는 뜻을 가질 것이다. 본문은 가인의 자손에게서는 이미 일부다처(一夫多妻)의 악이 나타났으나(창 4:19), 이제 셋의 자손들 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많아졌음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일부일처(一夫一妻)는 하나님의 뜻이다. 일부다처의 풍조는 일부일처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람의 육체적 감정과 욕구대로 행하는 악한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3-4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영]이 영원히[항상] 사람과 함께하지[다투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는 본문(LXX, Syr, Vg, Targ)16)을 영어성경들은 히브리어 본문대로 “나의 영이 항상(혹은 ‘영원히’)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 NIV). 사람의 죄악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통제되며 이로 인해 사람이 극도로 죄악된 상태에 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그가 심히 부도덕한 상태에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120년의 기간을 남겨두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성급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래 참으셨고 사람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셨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즉 ‘거인들’이 있었고 또 셋의 자손들도 가인의 자손들을 취하여 고대에 유명한 용사들을 낳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더욱 부패해져갔다.
[5-7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큼]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후회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후회함]이니라 하시니라.
노아 시대에 사람들의 죄악은 점점 커 갔고 그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하였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셨다. ‘후회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슬픔을 인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타락과 부패를 원치 않으셨으나 사람들은 스스로 그 길을 택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과 동물과 새를 다 멸하기로 결심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할 수 없으셨다.
[8-10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事蹟)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아담의 자손들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나며 노아도 예외는 아니며 만일 그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았다면 죄 중에 살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멸망을 받았을 것이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의로운 삶으로 증거되었다. 노아는 의롭고 완전한 자이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이기적이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절 있는 삶으로 나타난다. 또 완전하다는 말은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물론 이런 말들은 절대적인 의미는 아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에 의인이나 완전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람들과 여실하게 다른 선한 인격자이었다고 보인다. 또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경건한 삶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묵상하며 그에게 기도하기를 힘썼음에 틀림없다. 그의 중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을 따르고자 힘썼다. 그것이 그의 의롭고 온전한 삶으로 나타났다.
[11-12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솨카스)[부패]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하나님께서] 보신즉 땅이 패괴[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부패]함이었더라.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패했다. 본문에는 ‘부패함’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사람들의 부패함의 한 특징은 ‘강포함’이었다. 노아 시대에는 강포함이 온 땅에 충만했다. 당시의 세상은 양심과 도덕과 법과 질서가 없고, 힘과 폭력만 있는 공포 사회이었다. 이런 시대적 풍조에 역행하여 노아는 혼자라도 바르게 살았던 것이다. 그는 좁은 길, 외로운 길을 걸었다. 여기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교훈이 있다. 노아는 우리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된다. 우리는 이 시대가 심히 악할지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바르게 살겠다는 신념으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13-16절] 하나님이[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고페르)[소나무나 전나무의 일종]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칸]들을 막고 역청[피치]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300규빗, 광이 50규빗, 고가 30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사람들의 부패함과 강포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날, 곧 세상의 끝날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120년이나 참고 기다리시며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셨으나, 세상의 도덕적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그 끝날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서도 구원의 계획을 가지셨다. 그는 멸망할 세상으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기를 뜻하셨고 이 일을 위해 그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
방주는 나무로 만든 네모난 큰 배이었다. 방주의 크기는, 한 규빗을 약 45센티미터로 보면, 길이가 약 135미터, 너비가 약 22.5미터, 높이가 약 13.5미터이었다. 방주는 3층으로 되었고 그 안에는 많은 칸들이 있었다. 위에서부터 약 45센티미터 아래로 창문 한 개가 있었고 문은 옆으로 있었다. 방주의 안팎은 역청[피치]으로 칠했다. 역청[피치]은 원유를 증유시키고 남은 찌끼를 가리킨다. 아스팔트나 콜타르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좋은 방수제이다.
어떤 구약 학자에 의하면, 방주의 용량은 오늘날 소 20마리나 양 100마리를 실은 짐승운반차 2,000대 분량이라고 하며, 오늘날 양보다 큰 짐승은 290종, 양부터 토끼까지의 크기는 757종, 토끼보다 작은 것은 1,358종이 있다고 하는데, 방주는 이런 동물들 한 쌍씩과 그것들을 위한 충분한 사료를 싣기에 넉넉한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17)
[17-21절] [보라] 내가 홍수(맙불)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氣息)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食物)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食物)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통해 땅을 멸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원문에서는 ‘내가’라는 말(아니 힌니)[보라, 내가]이 강조되어 있다. 홍수를 일으켜 모든 생명체를 죽이실 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가 바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약속을 받은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를 예비하였고 그것을 통해 홍수 심판을 피하였다. 노아가 구원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모든 생물들이 암수 한 쌍씩 노아에게 나아올 것이며 노아는 그것들을 방주 속으로 들여 그 생명들을 보존하여야 했다. 또 그는 그것들이 방주 안에 있는 동안 먹을 식물도 준비하고 저장해야 했다. 이 일들이 노아에게 주어진 임무이었다.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하신 그 일들을 다 준행하였다. 특히 방주 짓는 일은 심히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큰 방주를 짓는 데 아마 수십 년 혹은 100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위해 자기와 자기 아들들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다 쏟았음에 틀림없다. 방주 짓는 일은 그에게 부업이 아니고 본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친척들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많은 조롱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며, 아마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방주를 지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렸고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노아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일부일처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일부다처의 길로 갔다. 그 시대는 쾌락의 시대이었다. 그 시대는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했고 사람들은 심히 강포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이었다. 오늘날도 불경건과 세속주의와 쾌락과 음란과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하고 특히 쾌락과 강포를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도덕적 하나님이시며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신다. 그의 심판은 참으로 두렵다. 그의 마지막 심판은 지옥 불못이다. 예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이 회개해야 할 이유이다.
셋째로,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예표한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순종함으로 멸망할 세상으로부터 여덟 식구를 구원했듯이,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택자들의 구속(救贖)을 이루셨고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구주가 되셨다. 교회는 장차 임할 불 심판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방주이다. 사람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교회 밖에 있으면 구원 얻을 수 없으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면 구원 얻을 것이다. 우리는 방주 안에 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안에 거하는 것이 방주 안에 거하는 것이다. 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노아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경건하고 의롭고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다 악할지라도 우리는 노아처럼 나 혼자라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