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 해설1에서 처음 법화경을 설하실 때 참석하였던 대중들에 대하여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그 부분에 대하여 소홀히 넘어간 것 같아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법화경에 참석한 대중들은 보살들을 비롯하여 출가, 재가의 수행자뿐만 아니라 이교(異敎)인 바라문교도가 믿고 있는 신들과 인간이외의 귀신(鬼靈)들마저도 이 설법의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함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지 인간만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통하는 진리임을 상징하고 있으며, 또 이와 같은 진리는 궁극적으로 당연히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단적(末端的)인 현상으로 나타날 때에는 그 나타나게 되는 원인과 조건에 따라 갖가지 모습을 가지게 되지만, 그 근본적인 진리는 오직 하나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진리를 설명하는 종교도 민족과 문화가 서로 다름에 따라 형식상으로는 갖가지로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올바른 종교라고 한다면 모든 종교들은 동일한 진리로 귀일(歸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유의할 점은 항간에서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유일한 진리인 줄 오인하고 타종교를 비방 또는 배척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나,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 자기의 종교가 절대 유일한 진리라고 한다면, 다른 종교도 모두 그 절대 유일한 진리로 귀납된다고 하는 뜻에서 이를 포용하고 그들로 하여금 올바른 행을 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 할 것입니다. 무조건 배척하며 무시하고 매도함은 도리어 타종교도 절대 유일한 종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가당착적(自家撞着的)인 모순에 빠지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근원적인 의미의 하나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수학적인 하나로 파악하는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의미인 하나로 파악하면 그 하나에 대립하는 또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있지만, 진리를 근원적인 의미의 하나로 파악하면 그것은 도저히 대립이 성립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일즉다(一卽多) . 다즉일(多卽一)이라는 사상은 앞서 (무량의경)에서 밝힌바와 같이 불교 전체의 사상이며, 이것이 우주의 참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 특히 <법화경>은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는 바다와 같은 가르침으로, 일승(一乘)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백호상의 광명에 의해 모든 세계가 환하게 비추어졌다.’라고 하는 기이한 상서의 의미는 결국 ‘진리의 지혜는, 이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의 참모습을 뚜렷하게 밝혀 주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불교는 이러한 지혜를 그 뿌리로 한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이상적이어서 현대의 진보된 과학으로도 상호 모순 되지 않습니다.
또 그 ‘지혜의 광명에 의해 우주의 모든 세계와 그 세계에 있는 재가, 출가자들이 수행하는 모습과 여러 보살들이 보살도를 구하는 모습 등이 다 보였다.’고 하는 것은 ‘궁극적인 진리는 단지 지구에만 국환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전체에 통용된다는 의미이며,
미륵보살이 이 기이한 상서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문수사리보살에게 여쭤보고, 문수보살은 그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답한 내용 중 ‘성도 이름도 똑같은 일월광명불이라는 부처님이 이만 부처님이나 출현하셨고, 설하신 법문도 처음과 중간과 끝이 모두 올바르게 인도하는 참다운 정법을 설하셨으며,’ 라는 것의 의미는 ‘진리가 하나면,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설하여 가르치는 것도 근본적으로 꼭 같은 것이다’라는 의미이며,
일월광명불의 마지막 부처님께서 ‘<묘법연화경>을 60소겁동안이나 계속하여 설법하셨는데 그 기간이 실로 짧게 느껴졌다.’라는 의미는 ‘진정한 깨달음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지혜는 시간과 공간을 상호 관통하여 모든 존재와 모든 현상의 참 모습을 정확히 밝혀 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법화경> 중간 중간에 어떠한 상서에 대하여 그 의미가 내포된 내용들은 심오하여 자세히 참구하고, 관찰해야 <법화경>의 참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품에서 한 가지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수보살께서 일깨워준 미륵보살의 전생 담인데
묘광법사에게 한 사람의 제자가 있었으니,
그는 본래부터 수행에 게을리 하는 마음 품고,
명예나 이익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명리(名利)를 구하는 마음으로 자주 상류가정에 출입하며 놀이에 정신을 빼앗겨,
배운 것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경의 뜻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니,
그로 인해 구명(求名)이란 이름이 붙여졌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지칭한 말이겠습니까? 물론 여기에서는 미륵보상의 전쟁의 몸을 지칭한 것이지만, 현재 <법화경>을 배우고 있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고 있는 말씀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나에게 아상(我相)은 없는지, 아견(我見)을 가지고 <법화경>을 읽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수없이 자기를 되돌아보며 읽고 외우며 자기 것으로 몸에 익혀야 한다는 복선이 깔려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다음에는 서품 마지막부분의 원문을 올리려하는데, 서품 해설을 마무리하고 올린 이유는 해설을 먼저 보시고 그 뜻을 의미하며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꿔 게제 하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