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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과 기도(2)
거룩한 믿음을 가집시다
유다서 1:20 / 강성찬 목사
캠벨 목사는 자신의 17년 동안의 목회와 전도생활이 거친 광야 생활 같은 그야말로 아무런 반응도 없고 별다른 성과도 없는 고달픈 생활이었다고 느꼈으며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비로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회복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서재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풍성히 공급을 할 만한 자원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캠벨 목사의 경험은 1949년도 영국 루이스와 스웨이 지방의 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캠벨 목사는 루이스와 스웨이 도서 지방에도 자기가 찾아가기 전 이미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고 계셨다고 느꼈습니다. 그 지방에서는 몇몇 남자들과 두 노파가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도우심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 선교를 위한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지방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까지 1주일에 3, 4일씩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으나 아무런 징조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던 중, 1949년 어느 날 아침 교인 중 한 젊은이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3-5])라는 말씀이 마음에 떠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말하는 그도 목메어 울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도 애통해 하고 회개하며 눈물을 흘려 참회하는 가운데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정체적 삶이거나, 혹은 퇴보적인 삶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삶입니다.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자기의 삶을 거룩한 믿음 위에 건축한다고 말씀합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터, 곧 기초입니다. 기초가 잘못된 집은 쉽게 무너지거나 파손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땅을 깊이 파고 기초를 튼튼히 세운 후에 집을 짓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앙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출발하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을 목표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삶을 건축하는 재료를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초를 영원히 변함없는 것 위에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영원한 것이라고 속이며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참 진리는 개인의 사견이나 주의 주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님으로만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사도들과 교회에 의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진리를 믿는 믿음 위에 삶을 건축해야 합니다. 만약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에 자기 삶을 건축한다면 그 주장을 낸 사람이 썩어짐과 함께 그의 삶도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지만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이 말 곧 성경말씀 중심해서 지혜로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티코미로프는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농업하기에 좀더 유망한 곳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그의 부모는 콜레라로 죽었고 그 소년도 쓰라린 고생 끝에 도적 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8년 간 그들은 농사짓는 이웃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일당은 두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버렸는데 그 중엔 두 책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약성경이었습니다. 그날 밤 숙소에 누워 로마서 3:15, 18을 들쳐 읽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신약성경의 앞면에 씌여진 글을 주시했습니다. “1898년 5월 15일 주님께 회개함으로 중생을 체험하다. 그날 주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거룩한 보혈로 나를 씻어주셨다.”그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누가복음의 십자가의 두 강도의 이야기는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고 그는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일곱 명도 그와 함께 자수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 후 이 도적들은 10년의 중노동형을 받았고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백칼 해 건너편으로 보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나 국가의 경축일에 그는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는 걸어서 소련에 돌아갔습니다. 오는 도중에 그는 많은 신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간증한 장소에서는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소스노우카에 돌아와서도 계속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 성직자들의 반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다시 구속되었고 1년간 감옥에서 감옥으로 전전했습니다. 그 후 다시 그는 이단을 믿는다는 이유로 2년간 시베리아로 귀양 보내졌습니다. 여기에서도 다시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였던 사람으로부터 얻은 신약성서의 첫 페이지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가 죄 속에 빠져 있었을 때 당신을 죽게 했소. 주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시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소. 그의 죽으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영생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오. 이 성경은 나의 굳어진 마음을 생수같이 부드럽게 해주었소. 그것은 내 목마름을 달래고 계속하여 흐르면서 다른 영혼에게 생명을 주며 활기를 띠게 하고 있소. 이로 나는 그대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오. 아멘.”
나아가 성령안에서 거룩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하시는데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런 삶을 명령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구별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것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 빌 만이라는 성가 가수가 어느 날 놀라운 연주를 했습니다. 관중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번 앙콜에 응답한 뒤에 분장실로 들어왔는데,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귀머거리였고, 벙어리였습니다. 거기에다 전혀 볼 수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녀는 빌 만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장실가지 찾아온 그녀는 피곤한 그에게 부탁을 합니다. 바로 자기 앞에서 한 곡 해달라고 말입니다. 빌만은 기꺼이 그리고 우렁찬 소리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하고 흑인영가를 불렀습니다. (찬송가 136장) 그녀는 그의 목에 손을 대고 감각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역하는 이는 노래가 계속될 동안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 말을 받아 헬렌 켈러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주가 죽을 때 그리고 살아날 때, 한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이제 나는 성령의 소원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나는 이 거룩한 욕심을 따라서 살 것입니다. ' 라고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이 여인이 바로 헬렌 켈러 였습니다. 그녀는 삼중고의 아픔을 딛고 성령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장엄하게 싸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형체를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알 듯이 열매로서 서로를 압니다.
더욱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아 거룩한 믿음을 갖게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자라가면 점점 더 그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라 합니다.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다”(리처드 포스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코 한 순간에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귀히 쓰시길 원하는 사람마다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정금 같이 쓰시기 위해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게 했습니다.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를 쓰시기 위해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게 쓰시기로 작정하실수록 거룩한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시키십니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란다합니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란다합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합니다. 참나무와 같은 인물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신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 거룩을 완성하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거룩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이라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구원은 은혜와 믿음으로 받지만 거룩은 은혜의 수단인 영성 훈련으로 완성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룩에 대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화장하는 여인들은 그리는 눈썹도 마음대로 안된다고들 합니다
■ 독일의 어느 조각가가 예수의 초상을 볼 마음이 생겨 시작한 지 4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는 만족하여 주일학교 학생을 불러서 자기가 조각한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누구와 같으냐?'라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어떤 유명한 사람과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작업에 들어가 6년 만에 예수의 초상을 조각한 후에 그 학생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놀라며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하신 예수님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만족하였습니다.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에서 국신(國神)인 비너스 조각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은 예수를 조각한 거룩한 손이므로 당신 나라의 더러운 신의 초상을 조각할 수 없소.'라고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그에게 기도드리고, 그의 본을 따라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그를 닮게 됩니다.
즉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그를 향하여 세상과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거룩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원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입니다. 크리스토퍼는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자' 란 뜻입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황금을 지고 다녔습니다. 그의 눈은 황금 찾기에 혈안 되었습니다. 결국 콜롬버스는 인생이 끝나가고 있을 때 괴로워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내 이름은 그리스도를 지는 자인데 지금까지 저는 헛된 것만 지고 다녔습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크리스토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콜롬버스는 그 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만 지고 가는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자기를 부정하게 됩니다.
■ 하와이의 모로카이 섬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된 곳입니다. 신부 다미엔이 복음을 들고 찾아갔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사랑하신다' 고 말하면, 문둥병자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를 이렇게 나병에 걸려 죽게 하시느냐고 빈정대었습니다. 결국 데미안은 자신도 나병이 들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얼굴에 반점이 피어나는 자신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나병이 걸리게 해주시다니요'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여, 이제 나도 당신들처럼 나병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전도하자 많은 병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병에 걸린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난 다미엔은 모로카이의 성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지고 가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십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의 모습이 현저하게 달라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이나 행동의 동기가 그에게 더 가까워져가는 만큼 점점 더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거룩을 이 지상에서 다 이룰 수는 없다며 아예 경건의 훈련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방종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 1920년대에 미국을 휩쓸던 아더 배리라는 유명한 도둑이 있었다합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의 돈과 보석을 훔치는 지능범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더 배리는 강도질을 하던 중 3발의 총알에 맞았습니다. 총알에 맞은 눈에 유리 조각이 박혔기 때문에 그는 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앞으로는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18년간의 감옥 생활 후에 그는 한 작은 마을에 정착하여 모범적인 시민 생활로, 지역 주민들은 그를 지역 재향 군인회 회장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에 대한 미담이 사방에 퍼지게 되었고 전국에서 기자들이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로 와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어느 기자가 “아더 배리 회장님! 당신은 도둑질을 할 때 부자들의 재산을 많이 훔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누구의 재산을 가장 많이 훔쳤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더 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 말씀드리지요. 내가 가장 많은 재산을 훔친 사람은 바로 이 아더 배리입니다. 나의 능력을 선용했더라면 성공적인 사업가나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도둑이었기 때문에, 나의 성인 생활 중 3분의 2를 감옥에서 낭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더 배리는 ‘거룩한 도둑’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 ‘거룩한 도둑’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고 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되 a;edma이에 굳게 서서 보배로운 믿음 큰 믿음 마귀를 대적하는 믿음 인정 받는 믿음 거룩한 믿음으로 나아가며 영광돌리고 사명 감당합시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관리
서윤발 목사
Ⅰ. 서 론
내가 꼭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물건을 사게 되었을 때, 참 기분이 좋지요? 그런데 그런 좋은 물건을 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물건을 사서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사용하기만 한다면 오래 오래 쓸 수 있지마는 설명서도 잘 읽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용한다면 얼마 못 가서 못 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귀한 물건일수록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겁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인생만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인생이야 말로 우리가 잘 관리해서 정말 값지고 귀중한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품을 만든 사람이 설명서를 동봉해서 넣어 두듯이 우리 인생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설명서가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 인생을 잘 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인생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정확한 설명서가 있습니다.
뭡니까?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인생을 관리해야 하는지 설명서를 함께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제품의 설명서를 잘 읽어보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설명서를 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설명서를 잘 읽어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이 유다서에서도 우리 인생을 관리하는데 대한 몇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어떻게 관리하라고 했습니까? 본문을 보면
Ⅱ. 본 론
1. 좋은 기초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끔씩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집을 짖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엡2:20을 보면 "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말씀하시면서 터 위에 세워졌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고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자기를 건축하라"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집을 짖듯이 인생도 지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해야 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집의 기초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에 건축을 하시는 분이 여러분 계십니다만 저는 집 짖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 주변에서 집 짖는 곳이 여러 곳이 있는데 기초를 어떻게 하는 건지 한 번 자세히 봤습니다.
보니까 땅을 파고 그 위에 콘크리트로 기초를 만드는데 아주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을 만드는 것을 봤습니다. 다른 곳도 그렇게 합니까? 아마 높은 아파트를 세우려면 더 깊이 파고 더 두껍게 콘크리트 바닥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콘크리트가 비싸니까 그러면서 좀 얇게 만들어 가지고 집을 세운다면 당장은 값싸게 지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니 그런 집은 아예 안 지은 것 보다 훨씬 더 못한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고, 어떤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 더 먼저 해야 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기초를 만드는 일입니다.
EX)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대학생이 자기 아버지도 죽이고 할머니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무시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알고 보니까 아버지는 일류 대학의 교수였는데 아버지가 바라는 만큼 아들이 따라주지 못하니까 아버지는 늘 아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박대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은 그것 때문에 분노하다가 결국은 아버지를 죽인 겁니다.
이 아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해서 대학에 진학은 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삶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능력을 갖추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기초를 갖추는 겁니다.
오늘 읽은 20절 말씀을 보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말씀하시면서 거룩한 믿음이 우리 인생의 기초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믿음
거룩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그 믿음을 말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상주시는 날이 있다는 그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 인생에 주어진 사명을 알고 살아가는 그런 믿음을 말합니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그 아들이 만약에 그 심령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데,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셨는데, 그 은혜가 감사한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초가 든든한 사람은 좀 늦어지더라도 분명히 세워집니다.
그러나 기초가 부실한 사람은 일찍 세워지더라도 곧 무너집니다.
여러분, 우리 삶을 거룩한 믿음이라는 기초 위에 잘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20절을 보면 "성령으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엡 6:18에서도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 ." 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속에 이미 계시는데 이 성령께서 우리가 기도하도록 도우시는 겁니다.
롬 8: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 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내가 기도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감동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영적인 갈급함이 있어서 '기도해야지'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도 역시 성령의 감동이고 도우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며 머리 숙일 때, 우리 속에 확신과 평강이 주어지는 것. 안심이 되는 것. 그것도 다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끝없이 참소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끝없이 기도하며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확신하고 성령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신호를 주실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마치 기계에 윤활유를 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EX)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엔진이 무겁게 느껴지고 소음이 심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엔진오일을 갈아주고 나면 부드러워진다. 엔진오일은 윤활유다. 이 윤활유가 공급되면 기계가 서로 돌아가면서도 마찰이 생기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간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바로 그렇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윤활유를 치는 일이고 우리 인생에 윤활유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분명한 믿음 위에 기초를 세웠다 해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힘 주셔서 평강을 주십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도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풀어 주시고 열어주십니다. 믿으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른 믿음을 가졌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힘들어 집니다.
그곳에 생기가 돌지 않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기도해야 되는 줄 잘 알지만 기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기도할 줄 몰라도 아닙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마음의 문젭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을 때는 기도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겁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이기 이전에 특권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함으로서 우리 삶에 윤활유를 공급하고 새 힘을 공급해서 잘 달려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좋은 기초를 만들고 언제나 기도함으로서 인생이라는 집을 잘 지어 가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잘 지어 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데 우리 인생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키라는 말씀은 물들지 말라. 뒤섞이지 말라. 그런 의미가 강합니다.
특히 18절을 보면 이 당시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면서 세상과 구분 없이 사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 구분되어 살라고 충고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 세상과 구분되어 사는 것입니까?
그 중 한 가지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 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기도 응답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위로를 체험해야 합니다.
2. 그리고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일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변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까지 시대의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늘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또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EX) 어떤 여자 분이 쓰신 수필집을 읽었다. 이 분이 이스라엘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성지순례 가이드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다. 어느 날 비싼 옷을 입고 아주 부유하게 보이는 분이 자기 팀이 되었다. 늘 불평하고 따지고 가이드를 종처럼 생각하더라는 것. 그리고 외국에는 팁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절대로 팁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어떤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그 점원에게 무거운 짐을 버스까지 들어달라고 했다. 외국에서는 그럴 경우 반드시 팁을 준다. 이 가이드가 그 분을 쳐다보면서 제발 팁을 줬으면 하고 있는데 정말 팁을 주더라는 거다. 그런데 급하게 손에 팁을 쥐어 주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상해서 짐꾼을 쳐다보니까 받은 팁을 내동댕이치고는 가더라는 거다. 나중에 보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몇 십 원 되는 돈을 팁으로 준거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 이 분이 로타리클럽 회원이라고 마침 그곳에서 열리는 클럽 회의에 참여하겠다는 거다. 영어도 모르면서. 가이드보고 가자고 명령하다 시피 해서 할 수 없이 따라 갔는데 그 클럽의 회장보고 자기가 이곳에 기부할 수 있다고 말해달라는 거다.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숙이고 있는 것까지 내 주면서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으스대고 인색한 모습을 보면서 슬퍼지더라는 거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한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런 한국인들을 보고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거지요.
인자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에게 넉넉하게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시고 또 사랑 하셔서 정말 세상과 구분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Ⅲ. 결 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설명서중 세 가지를 찾아 봤습니다.
좋은 기초를 만들라.
기도하라.
사랑으로 자신을 지키라.
하나님께서 주신 설명서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설명서대로 행하게 되면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먼저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신다" 말씀하셨다.
'거침이 없다'는 것은 '비틀거리지 않는다', '사람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설명서대로 살면 비틀거릴 일이 없고 방해받을 일이 없다는 거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니까.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것이라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데 그 보증기간이 언제까지인가?
1년, 2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그 날까지라 하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그 분의 신실함을 믿고 주님의 보증기간 까지 설명서대로 인생을 잘 관리하셔서 더 값지고 더 풍성한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 스스로를 걸작으로 만들라
유다서 1:20-23 / 오정호 목사
왜 우리는 걸작인생으로 살아야 합니까? 왜 우리는 멋있는 삶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련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물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이 아름다움은 현대과학과 인류역사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모아도 만들어내거나 흉내내지 못합니다. 러시아의 우주정거장 '미르호'는 무게가 무려 140톤에 달하고, 1년 유지비용만 2억 4천만 달러가 드는 현대과학의 총아요 산물입니다. 그런데도 15년만에 용도폐기되어 대기중의 불꽃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것은 걸작입니다.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는 창조질서를 순종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목련이 봄이 되어 꽃을 피우듯이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순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창조물 가운데 걸작 중의 걸작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인간만은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음해하고 괴롭힙니다. 자연을 오염시킵니다. 우리는 꽃 한송이 보다 더 훌륭하고 탁월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상속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십자가의 절대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으로 쓰임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모든 가족들이 믿음의 정도(正道)를 걷는 걸작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뒤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신분이 따라다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발자취는 거룩하신 하나님 이름의 명예가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걸작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망가뜨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걸작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영적원리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시다.
1. 스스로 신앙의 균형감각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성과 지성의 균형과 교회안에서와 교회밖에서의 삶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건, 진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에서 편견의 비늘을 벗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편견에 붙잡혀 살까요?
❶ 거짓교사들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가만히 교회에 들어옵니다(4절). 우리가 가진 자유와 축복과 특권을 시기하고 깨뜨리기 위해 가만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편견에 빠지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고 믿음을 배반하게 만듭니다.
❷ 잘못된 이론 때문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기도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은사 사용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이론을 받아들이면 평생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말씀합니다(3절).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자녀를 위하여, 믿음의 후손을 위하여 비진리와 세속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은혜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앙의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해주신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홍해를 갈라주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걸어서 건너갈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책임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생각이 깊은 성도들을 원합니다. 세상의 소리와 주님의 뜻, 나의 생각과 주님의 명령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나의 생각을 비우고 마음속에 주님의 뜻을 담을 때 우리의 편견은 사라지고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11절에는 이러한 신앙의 균형이 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가인은 감정의 균형이 깨어질 때 동생 아벨을 살해했습니다. 발람은 물질에 대한 태도가 균형을 잃고 욕심에 미혹되었을 때 이방인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는 특권을 상실했습니다. 고라는 하나님께 부름받아 성막에서 섬기는자로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균형이 깨어져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지도자를 대적함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신앙의 균형감각을 개발하십시오. 이 봄에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생각의 깊이와 수준을 더해 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스스로 자신을 세우기를 힘써야 합니다(20절).
비전이 있는 사람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집니다. 그러나 비전과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정욕대로 행하며(16절), 본능대로 행합니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자신을 세우기를 원합니다(25절).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거침이 없게 하시고 영광가운데 흠없이 세우고자 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24절). 이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기를 작정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믿음의 지도자들에게 불순종합니다(8절). 자기를 세우는데 실패한 사람들은 결국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7,13절).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세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서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위해 모든 조건을 구비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걸작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다른 사람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22-23절).
우리가 도와야 할 몇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의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정죄하지 말고 부드럽게 대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22절). 둘째, 영혼과 육체를 좀먹고 미래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죄에 빠진 사람들입니다(23절). 우리는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 셋째, 본능적인 욕정에 빠진 사람들입니다(23하). 이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결혼관계를 벗어나 성적으로 문란한 죄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죄인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죄 자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합니다. 죄는 궁정안에도 침실안에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는 경건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되게 하십시오. 나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희망과 복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 교회가 복 받는 것이 대전광역시의 모든 형제교회에게 복이 되게 합시다. 우리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모든 나라에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부여하신 한번밖에 없는 생애를 걸작으로 사시기를 다짐하십시오. 이를 위해서 균형잡히지 않은 감정과 편견과 고집을 버리고 스스로를 믿음 위에 세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은혜가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 풍성히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즐겁게 서게 하실 분
유다서 1:20-25 / 조재호 목사
여러분의 인생 속도는 시속 얼마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0대에는 20km, 30대에는 30km, 이렇게 올라가서 60대에는 60km, 70대에는 70km가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지난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인 듯 합니다. 시간은 참 빠릅니다. 마치 누가 훔쳐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은행들이 있는 것 같이 우리에게는 인생은행이 있습니다. 그 인생 은행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고객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돈보다도 더 귀한 시간을 통장에 공평하게 넣어 주셨습니다. 통장에 각각 우리의 이름을 기록해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시간 통장에서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빼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은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신 자본금과도 같습니다. 이 자본금을 잘 사용한 사람에게는 승리가 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이제부터 5주동안 좋으신 하나님에대해 함께 나누며 은혜받고, 감사하며, 세상에서 힘 있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서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유다라는 이름이 소개되고 있지만 오늘 본문의 저자는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1절)"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다는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육신적인 형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다도 처음에는 자기 형제 예수님을 무시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더 이상 예수님을 육체대로 알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이전에 알고 있었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두렵고 무서운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깨닫고 고백하게 되는 참 좋으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일까요?
1. 좋으신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알면 아는 만큼 힘과 자신이 생깁니다. 반면 모르면 부자연스럽고 자신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아는 만큼 우리에게는 믿음의 자신감이 생기고 삶의 힘과 할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깊으신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아 갈수록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체험하게 되고 만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살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생각, 특출난 열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홀로 한분이신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큰 은혜요 우리에게 큰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 가운데 한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신 4:39)."
이런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곧 기적이요 신비한 일이요 대단한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라고 부르시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은혜요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의 만 사람을 믿는 것보다 위대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세상의 천만 사람 붙잡는 것보다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토록 능력과 은혜의 좋으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우리의 능력과 힘이 되심을 믿고 그것을 늘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거침없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24절)"
여기에서 "거침없다"라는 말은 오직 유다서에서만 등장하는 소중한 단어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그 단어는 '비틀거리지 않게 한다, 굳게 서게 한다, 넘어지지 않게 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사람이지만 영혼이 흔들거리고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비록 겉보기에는 장애가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흔들림 없이, 거침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을 험악한 이 세상에서 비틀거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살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심으로 든든하게 서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능력으로 은혜로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으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보호하사 세상에서 거침이 없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마지막에 그 앞에 즐겁게 서게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24)"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를 흠이 없게 하셔서 하나님 보좌 앞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슬픔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자리에는 기쁨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불안이 존재하지만, 하나님 앞에는 평안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미움도, 심한 경쟁도, 한숨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는 위로와 평화와 사랑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홀로 한분이시며 우리를 거침이 없게 하시며 그 앞에 즐겁게 서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며, 하늘에서 기쁨으로 설 수 있도록 하시는 이 좋으신 하나님을 힘있게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서게 하실 분
유다서 1: 24~25 / 고신일 목사
할렐루야! 예배의 자리에서 만남을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가슴 펴고, 소망으로 당당하고, 사랑으로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사는 복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1970년대 충북 음성에 논농사를 짓는 ‘최재명’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수확량이 많지 않더라도 무농약 농사를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논에 잡초가 생기면 농약을 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뽑았답니다. 그분의 아들은 식용 우렁이 도매 사업을 했는데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아들이 팔다 남은 우렁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자신의 논에 버렸습니다. 그 후에도 최재명 씨는 잡초를 뽑기 위해 수시로 논에 나갔는데 … 우렁이를 버린 뒤부터 논에 잡초가 생기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우렁이가 탁월한 제초꾼인 것을 알게 되었고 우렁이 농사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5월에 … 살아온 날들 중에도 …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 실패한 일, 답답한 일, 속상한 일 … 있었을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우리 주변을 보아도, 또 성경에 소개된 사람들도 …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때가 있었고 누구에게나 늪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실망스럽고, 답답하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맡기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가슴 펴세요. 내 힘으로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더라도 ‘그건 내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세요. 참고 견디고 기다리며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 30:19)
“ …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사 30:19)
모두 성경 높이 들고 … 믿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서게 하실 분
교회에는 구원과 복음의 소식을 잘못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나쁘게 해석하여
교회와 성도들의 경건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거짓 선생”이라 표현했습니다. (벧후 2:1)
한 장의 편지형식으로 된 ‘유다서’에는 ‘거짓 선생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은
-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고, (4절)
-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부인했고, (4절)
-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인 성도의 육체를 더럽혔고, 교회의 권위를 업신여겼습니다. (8절)
- 교회 일에 자기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내세웠고, (12절, 16절)
- 탐욕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16절)
이에 대해 유다서는 교회 안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성도들이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3절)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 받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15절)
동시에 유다서에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유 1:24)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생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신다”고,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도들 각자가 잘못된 복음과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 교회를 지키기 위해 …’
싸우고 노력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보호하시고”, “기쁨으로 서도록”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표현이 쉽게 번역된 성경(새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시고 …” (유 1:24, 새번역)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된 우리는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습니다.
혹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승리의 간증자로 당당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결국 승리하게 하실 것이니 …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사명이고 역할입니다.
목적지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고 민첩한 사람이라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넘어진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어느 날 자기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험한 길을 가지 않더라도, 집 안에서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고, 유리창에 부딪히고, 책상에 부딪쳐 발 다치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미끄러집니다. 다칠 수 있습니다. 때로 아파서 못 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 한 명은 지난 주일에 교회 못 왔습니다. 목사가 주일에 교회에 안왔습니다.
토요일 아침 출근하려고 하다 재채기 한 것 밖에 없다는데 … 허리가 아파 걸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병원에 3일 있다가 나왔는데 … 지금은 멀쩡해졌습니다.
아플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이들 수록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넘어지면 … 걷기 힘들면 … 그냥 한 없이 거기 앉아 계십니까?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경우가 아니라면 곧바로 일어섭니다.
사람이 많은 길거리에서 넘어졌다면 민망해서 훌훌 털고 재빨리 일어납니다.
길을 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가는 이유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서게’ 하시는 것은 천국 백성인 우리에게 분명한 목적지 하나님 나라,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출생하는 것도, 사람이 된 것도, 지금 살아가는 것도 다 우연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정해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우연히 생겨난 우리가 우연히 죽게 된다면 … 진리도, 정의도, 옳고 그름도, 정해진 것도 없는
우연히 되어가는 세상에서 목표라는 것을 세울 수 있나요?
결국 우연히 되어갈 텐데 ….
우연히 되어가는 그런 세상에서는 인생에 대해,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목적지가 없는 배는 ‘항해’할 수 없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배는 ‘항해’가 아니라 ‘표류’할 뿐입니다.
물론 ‘표류’하더라도 배를 열심히 조종할 수는 있습니다.
열심히 노를 젓고, 온 힘을 다해 폭풍우를 헤쳐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착할 지점이 없는데, 목적지가 없는데,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삶은 ‘표류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연히 시작되고, 우연히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 2012. 4. 20. 김장환의 큐티365 ‘목적지가 없는 배’ 참조(나침반 출판사 홈페이지 발췌). >
■ 영국의 어느 교수가 옆 나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더블린 역까지 이동하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된 까닭에 학회가 열리는 학교까지 제 시간에 가기가 빠듯했습니다. 그래서 역에서 택시를 탄 교수는 타자마자 “최대한 빨리 출발해 주시오.” 손님의 성급한 모습에 놀란 기사는 재빨리 출발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교수가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언제쯤 학교에 도착할 수 있나요?” 기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학교라니요? 선생님은 빨리 출발하자고만 하셨지 학교로 가자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저는 누가 선생님을 쫓아와서 그러시는 줄 알고 시내 여기저기를 달리는 중입니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은 교수는 결국 행사에 늦고 말았습니다.
목적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빠른 속도를 내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한걸음씩 걷더라도, 답답하게 느리게 가더라도 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천국이라는 푯대를 향해 가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요즘 ‘백세인생(百歲人生)’을 말합니다.
전에는 ‘노년(老年)’이라 불리던 시간들을 ‘신중년(新中年)’이라고 부르며 인생을 길게 봅니다.
모잠비크의 평균수명이 42세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배 이상의 삶을 삽니다.
이 땅에 머물 시간이 옛날 사람들보다 길어졌습니다.
그렇다고 … 이제 우리에게 시간 많다고 가야 할 길 빙빙 돌아가시겠습니까?
사는 시간이 길어진 인생이라도 목표가 잘못 설정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푯대를 향해 … 받을 상급을 위해 … 처음부터 바르게 움직여야 하고 끝까지 가야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목적지가 올바른지 확인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 하나님 뜻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남미 대륙 가장 남쪽에는 칠레에 속한 ‘혼 곶(Cape Horn)’이 있습니다.
‘곶(cape)’은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내민 땅”을 말합니다.
미국의 어느 어선이 ‘혼 곶’ 근처를 항해하던 중 강한 바람이 불어 목적지는 남쪽이었지만
반나절 내내 남쪽으로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장은 ‘남쪽을 고집할 필요가 뭐가 있나?
북쪽으로 가도 고기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 뱃길을 돌려 북쪽으로 항해했습니다.
그런데 1시간 쯤 뒤, 네 척의 작은 배가 보였습니다.
그 작은 배들은 열흘 전, 화재가 난 배에서 탈출한 구명정들이었습니다.
다행히 미국 어선에 의해 14명의 선원들이 구출되었습니다.
훗날 한 책에서 선장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매일 자신의 일과의 시작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를 염두에 두셨던 하나님께서 그 날, 센바람을 불게 하셨고, 선장의 마음을 돌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내 마음의 생각이 커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흠이 없이
유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십니다. (유 1:24)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평생 흠 없이 산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 노아는 과음으로 망신을 당했습니다. (창 9:21)
- 아브라함은 아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창 12:13, 20:2)
- 모세는 혈기를 참지 못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출 2:12)
- 다윗은 충직한 부하의 아내와 몸을 섞었습니다. (삼하 11:4)
하지만 그들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돌이켜 회개했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다시 응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용서 받은 확신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의 소리를 내는 각자 독특한 악기입니다. 다 다릅니다.
며칠 전에 목사님들 몇몇 분을 만났습니다.
뭐 드시겠냐고 물었는데 … 먹고 싶은 음식이 다 달랐습니다.
흩어져 각자 먹고, 다시 모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짜장면으로 가자고 정했습니다.
사람은 제각각 다릅니다. 각자 독특한 악기입니다.
음이 다 틀립니다. 소리 내는 방법도 틀립니다. 이상한 소리를 낼 때도 있습니다.
각기 다른 악기와 같은 우리가 소리를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돌이키며 믿음을 조율(tuning)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리가 바로 잡히면 우리 각 사람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곡을 연주하실 것입니다.
가정에서 … 일터에서 … 넘어지고, 주저앉았다고 생각될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 기도하면서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조율(tuning) 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리에 맞추어야 합니다.
눈물 나고 기막혀도 다시 하나님의 원하시는 소리를 찾아 맞추어야 합니다.
- 기도하면서 삶의 목적지가 올바른지 점검해야 합니다.
-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그 날을 기대해야 합니다.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기다려야 하고, 아픔이 심하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혀도 … 다시 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래도 “기도”가 정답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시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입술, 목소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때로 넘어지고,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 있었더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일어서야 합니다.
주저앉아 거기 머물러 있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웨슬리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날마다가 아니라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주십니까? 일어나라고 ….
왜 일으켜 세워주십니까? 목적지를 향해 가라고 ….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춰 조율하면, 튜닝하면
하나님께서 지휘하시는 오케스트라에 아름다운 악기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저 높은 곳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고
세상에 눈 돌리지 말고, 세상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날마다 날마다 전진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