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란 꼬리표가 붙었지만 서울 잠실주공5단지 3930가구가 재건축을 할 수 있게 됐다. 서울 송파구청은 28일 안전진단자문위원회를 열고 이 아파트의 재건축사업을 조건부로 진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건부는 시기 등을 구청장이 조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재건축이 허용된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진단은 해당 단지가 재건축이 필요한지 전문기관의 사전평가를 통해 결정하는 것으로 재건축사업의 첫 관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안전진단을 통과한 대치동 은마에 이어 잠실주공5단지도 재건축 궤도에 오르면서 강남권 중층 단지들의 재건축 사업이 불을 댕길 것으로 전망된다.
주공5단지 재건축추진위원회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추진위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함에 따라 곧바로 조합설립 절차에 손댈 계획이다. 2012년까지 조합설립→사업계획승인→시공사 선정→관리처분→이주' 등의 모든 단계를 마친다는 목표다.
추진위에 따르면 재건축이 되면 현재 15층 3930가구인 단지가 50~70층 9800가구의 대단지로 바뀐다. 용적률은 현재 138%에서 법적 상한인 300%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진위 김우기 위원장은 “서울시가 요구한 대로 8만9000여㎡나 되는 땅을 도로 등 기반시설 부지로 기부채납하는 만큼 층고 및 용적률 인센티브를 높여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추진위 계획대로 초고층 재건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서울시 건축정책팀 박경서 팀장은 “잠실주공5단지는 한강 공공성 회복 프로젝트에 따라 유도정비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라며 “올 10월 이 구역의 발전구상안이 나오면 개발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므로 지금 층수나 용적률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건축을 위한 대형 재료가 나왔지만 시장 반응은 차분한 편이다. 잠실동 최명섭 공인중개사는 “안전진단 통과를 예상한 집주인들이 최근 일주일 새 5000만원가량 호가를 높인 때문인지 오른 값에 계약하겠다는 매수자는 드물다”고 전했다.
그래도 이달 초보다는 값이 올랐다. 112㎡형(공급면적)의 경우 이달 초 10억원에 거래됐으나 최근에는 10억원 초반에 나온 저가매물 4~5건이 모두 팔렸다. 지난 23일 제2롯데월드 건축안 통과 및 안전진단 통과라는 겹호재로 아파트값이 오름세로 돌아설 것으로 판단한 매수세가 발 빠르게 유입된 것이다. 실제 28일 매물로 나와 있는 112㎡형의 가장 낮은 매도호가가 10억7000만원이다.
안전진단은 통과했으나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이 많아 사업 진척이 더딜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입주자대표회의·부녀회의 등으로 구성된 반대파들은 추진위 방식으로 재건축을 할 경우 집 크기도 충분히 늘어나지 않고 추가 분담금만 많이 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합원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조합설립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당장 조합설립부터 삐걱거릴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반대 모임의 최석동 위원장은 “현행 제도에서는 사업성이 없으므로 상업지구로 용도가 변경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향후 잠실주공5단지 매매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강남권 전체 재건축 시장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잠실동 박준 공인중개사는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112㎡형의 대지지분이 76㎡로 넓기 때문에 재건축을 하면 수익이 좋을 수밖에 없다”며 “제2롯데월드 건립 호재와 맞물려 중장기적으로 매수세가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다른 강남권 아파트보다 재건축 사업성이 좋은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지금 가격에 아파트를 매입한 수요자들이 재건축을 통해 수익을 남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