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본 요한복음](요한복음 1장 5절)
어두움/소리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심리학에서는 어두움을 악으로 동일시하기도 한다 어두움은 선의 결핍이지 악이 아니다
1.주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는데 악은 소리로 존재 한다 이 소리는 자기 파괴적이다
우울증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심하게 비난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나를 다 싫어할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와의 관계에서 관계란 숨통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산다
하느님도 나를 미워할 거야 하며 관계를 끊고 나와 너와의 관계도 끊고 나와 나의 관계를 끊고
너는 죽어도 싸 하며 생각할 때 자살을 선택 한다
나와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미워할 때 자살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인 사람은 약을 주어 조금 몽롱한 상태로 업 시키는 것이다 늘 몽롱한 상태만 원하면 중독이 된다
2.자기 파괴적인 소리
이 소리는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속삭인다 그래서 유혹이라고 한다
옆에서 계속 속삭이니까 그 소리를 따라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들이 말을 크게 안하고 속삭이며 얘기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말의 소리의 힘이 얼마나 있는가 로 그 정도를 본다
들리는 소리가 속삭이기 때문에 자기 소리로 착각을 한다
그래서 어두움에서 오는 소리를 유혹자라고 보는 이유는 꼭 내 소리처럼 들린다
내면화(internalization)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남들이 나에게 해주는 소리가 내 것처럼 들려버린다 피정에서 세속이니 마귀니 하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그 정서적 문제(정신분열 현상)가 의심이 가는 것이다
심리적 병에 신경증(neurosis)과 정신병(psychosis)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심리적으로 망가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정신적 세계가 분열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앙이건 윤리적 생활이건 중도가 좋다 균형이 중요하다 지나친 영적 지향은 위험하다
3.소리가 핵심 신념이 되기 쉽다
심리학자 프랑스와 돌또(Francoise, Dolto)는 중간층 출신으로 어머니가 우울증이 심했다고 한다 12세에 언니가 죽었는데 엄마가 이 아이에게 네가 기도를 안 해 언니가 죽었다고 얘기를 해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주위에서 배려하지 못하고 그냥 내뱉는 말들이 쌓여 평생 갖고 산다 자기 안에 깊은 데에 넣어두고 누구도 바꾸지 못하는 깊은 신념이 되어버린다 이런 좋지 않은 씨앗을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 부모이다
심리학에서 핵심 신념이란 생애초기에 심리적 외상과 결손을 경험하는 사람은 왜곡된 핵심 신념을 갖기 쉽다
자신을 부족하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여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내 자신을 좋게 볼 수도 있고 좋지 않게 볼 수도 있는데
초기에 부모가 나에게 해준 던져진 말들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아이들은 자신감이 생기는데 안 좋은 아이들은 평생 자기를 따라다니는 넌 쓸데없어 하는 소리를 하며 산다
자기 자신의 내적인 상태가 꼬여 병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핵심 신념이 스스로 미운 짓을 하게 한다 심어준 주체는 부모이라는 것이다 대물림을 한다
내 안에 있는 핵심 신념이 어떤 것이 있는가를 알고 싶으면 독백일기를 써보라 혼자서 꿍얼거리는 말이다 그 중에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이 몇 개가 있나?
눈치꾸러기인 사람들이 핵심신념이 병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4.소리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예수님과 악의 구분은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와서 쉬라고 하셨다
기도를 할 때는 기도를 하면서 쉬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기도를 해도 죽도록 하고 일도 죽도록 하는 항상 뭘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 부모님의 칭찬을 못 들은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나는 못난이 인가봐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사람들은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죽어라고 쉬지 않고 일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심리적인 힘의 한계가 오면 쉬어야 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상한다 재충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남들도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주지 않는다 내가 내 자신을 아낄 때 남들도 나를 아껴준다
사람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자기 안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종이 아니라 벗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다 행복하게 좋은 인생을 오래 살기를 바라신다 너는 절대로 그렇게 못 살아하는 마귀의 소리같이 들리는데 우리가 그것을 구별할 줄 아는 그런 의미에서 영적 식별이 중요하다 하느님의 소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
5.소리가 사람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사람의 몸과 같이 마음도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안 해주면 성장을 멈춘다 그런데 육신보다 정신의 성장이 더 쉽게 멈춘다
정신발달론에서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 욕구와 충동에 직면하게 되고 이것을 다루어야 되는데 이것을 다루는 방법을 어머니 또는 양친의 반응에 비롯되어 자라면서 주위의 가족, 친척, 선생님, 친구들 사이에서 양육, 발전하여 점차로 세련되고 성숙해 진다
양가감정에 증오심과 부러움이 동시에 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지나치게 편애한 아들은 미성숙하다 적절하게 욕구충족이 안 되어 그렇다
고착의 경우, 아들들은 내가 옛날에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 라고 말하는 것은 정신적 발달이 덜 된 사람이다 딸들은 악착 같이 돈을 벌어 옷을 사놓고도 못 입는다
너는 이거 입을 자격이 없어 하는 소리 즉 부모의 소리가 계속 맴도는 것이다
적절한 보호를 못 받은 경우에 위의 양쪽 다 발달이 멈추는 것은 소리 때문이다
6.과소통제(under-control)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당당하다 어딜 가든지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눈치 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과소통제 현상이 나타난다
중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대화하는 중에 가운데 앉아 있다 자신감이 없으면 구석진 곳에 자신을 놓는다
과소통제의 현상이 자신을 모든 상황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간
가장자리에 던져놓음으로써 자신을 어떤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일을 하다가도 남들이 안 도와주면 슬며시 들어가 버린다 모든 사건의 결과 자신이 벗어나 있다고 느낀다 자기 스스로 자기 위치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심한 자기비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치료방법은 계속 중심에 앉혀 놓는 것이다
7.충동조절 장애
발달장애, 정신적 질환 중 하나이다 내 안의 내면의 소리가 건강치 못한 것이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충동을 잘 조정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갖고 싶은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은 사는 맛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비웠다고 하는 것도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진짜 건강한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때이다 경험, 즉 인생의 맛을 보고 싶은 것이 건강한 것이다 이런 욕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무기력증이다
사람의 마음은 채워서 넘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간다 비우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채우고 살아라 가능하면 많은 것을 맛보고 경험하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아라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을 하십시오 방 안에서 꼼짝 않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불쌍하다 인생이란 것이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라고 깨달으면 자기인생의 방향설정이 된다
인생은 음식 맛을 보는 것처럼 사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맛을 보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차례차례 맛보고 사는 것이 마음이 건강한 것이다 너무 충동적으로 사는 것은 곤란하다
충동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는 15세 이전에 부모가 사망 별거 등으로 상실해
훈육이 부적절할 때 충동조절을 못한다 물질, 재물에 대한 너무 높은 가치관을 가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충동조절을 못한다
어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사람이 자기가 만나는 사람이나 사물, 일에 대한 평가기준이 돈일 때 사람을 볼 때도 저 사람이 얼마짜리인지, 연봉은 얼마인지를 얘기 한다 아이들이 이런 것을 보면서 배우기 때문에 위험하다
부모가 나중에 돈을 못 벌면 부모를 버린다 [심리학이 본 요한복음](요한복음 1장 6~18절)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1. 병적인 죄책감
지나친 부끄러움과 자기 학대하는 기도
죄와 약간의 죄책감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모자람이다 부족함이 하느님께 오히려 가까이 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날 용서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학대가 심한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한다 그런 분들은 치료가 어렵다
지나친 병적인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다 하느님께 마음이 안 가 있는 사람들이다 겸손이 아니라 교만한 것이다
죄인이라며 안 빠져나오고 그 안에서 쾌감을 맛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병적인 신앙인이다
자기를 스스로 학대하며 그것을 기도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건강한 죄책감과 병적인 죄책감은 어떻게 다른가
내 자신을 점검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학대는 다르다 자신을 학대하면서 양심성찰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한 죄책감은 죄를 짓고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 하느님이 내가 못 보는 나의 결점을 보여주셨구나 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부끄러움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성령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나의 결점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경우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자신의 길로
가고자 하는 결심을 하는 것이 회개이다
반면에 병적인 죄책감은 너 같은 건 죽어도 싸다고 하며 유다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단죄하지 않으셨는데 자기 자신의 죄책감에 자신이 시달렸던 것이다
회개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건강한 죄책감을 가지면 관계회복에 다시 한 번 노력한다
그러나 병적인 죄책감은 심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많이 걸리고 자기 자신 비난하며 남을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한다
고해소는 들어갈 때 짐 지고 들어갔다가 짐을 놓고 나오는 곳이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고해소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다 요즈음 정신과에 오는 사람들이 고해소를 찾는 사람보다 많은 것을 미국 정신과의사들이 걱정하고 있다 이것은 병적인 죄책감 때문이 일어난 것이다
2. 자기기만
자기를 기만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초대교회 때는 신자들이 자유기도를 했다 신자들의 기도가 생기며 타인을 비방하기 시작했다고 스캔들을 만들어서 교회에서 없애버리고 지정해준 기도만 하라고 한 것이
요즈음의 신자들의 기도이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자기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인정하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더 많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얘기하며 자기 자신의 가지고 있는 문제를 못 보게 하는 것을 자기기만 전술이라고 얘기한다
남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지만 자기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착한 척 하면서 남들이 바뀌기를 바란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 안 바뀌는 상대를 그대로 끌어안고 사는 것이 사랑이다
자기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도 못 보게 되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을 못 받아들인다
심리학에서 타인을 속이려는 자기의 경향을 인정하지 않는 결벽주의자는
이중 기만으로부터 온다 그의 자아는 속임수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완전히 자기를 속이고 세상에서도 공공연히 속이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경향성은 자아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결과로 생긴 타인을 속이려는 경향을 인식함으로써 정직해질 수 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성령은 빛이다
하느님이 가까이 오시면 빛으로 오시기 때문에 성령의 빛 안에서는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자기 기만적인 사람들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을 싫어한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죄책감 부끄러움 같은 것도 있다 나에게 좋은 것만 취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이것을 식별해야 한다
심층심리학에서는 탐색, 내면탐색을 한다 상담에 처음 올 때는 남 때문에 온다 내가 불행한 것은 너 때문이야 하고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는데 이때는 한 풀이를 시켜주어야 한다
상담기법 중에 제일 힘든 것이 듣기이다 그 이유는 들어주어야만 풀어내고 그 다음에 자기 안의 문제를 볼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인정할 때까지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한다 10년 후 자기 자신을 볼 때까지, 죽을 때까지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는 한 절대로 안 바뀐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려면 내가 나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자기 안의 분노의 원인을 보지 않으면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야한다
의식은 생각을 통해 떠돌아다니고 머리 쪽에서만 무의식은 감정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가슴 쪽에서 움직인다
사람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다 저 사람은 저렇고 나는 안 그렇고 하는 것이 자기기만이다
가톨릭에서의 양심성찰이란 것은 자기 내면세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숨기지 말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영성론에서 사람이 행복할 때는 자기 안에 들어가기 힘들고 불편할 때 자기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분노가 일어나면 자기 자신에게
왜 화냈냐고 물어보는 것이 자기 탐색이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탐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3. 자아발달이 덜 되었을 때
하느님을 못 받아들인다
Loevinger의 자아발달론에서
1)전사회적 단계
갓난 애기들은 자기 욕구충족을 위해서 운다 아이들이 울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이 오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장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반응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발달장애가 온다고 한다
애기들은 자기 욕구충족에만 관심이 있고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도 애기 같은 사람은 오로지 자기만 알고 신앙을 가져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어렵다
2)공생적 단계(2세)
애기가 자기 엄마에 대해 공생적 관심을 갖고 공생적 단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3)충동적 단계(3세)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자기 안에 일어나는 충동을 절제 못하고 그대로 표현한다 이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면 어른이 되어서도 통제 불능이 된다고 한다
4)자기 보호적 단계
지나친 고통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배운다 깨닫는데 선악구분이 아니라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전 단계의 생각인데 규칙위반이 나쁜 것이 아니라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5)순응적 단계(청소년기)
사회적 인정과 수용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청소년 단계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예민하다
고정관념이 심할 때 이다
사람을 볼 때도 네 편, 내편, 은 사람, 나쁜 사람 식으로 본다 이 단계의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하느님, 마귀에 대해 관심이 많다(선과 악)
이분법적 시각이 문제다 흑백론과 같다
지나치게 몰아 부치는 것은 사람의 자아발달이 미성숙할 때 그런 시각을 갖는다 매도하는 뒤에는 위험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객관적 소리를 밟아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6)양심적 단계는 너그러움이다
성서 여러 저자들의 특징은 너그러움이다 역사적인 기형들도 그냥 두고 보는 것이다 이 단계부터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발달단계이다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욕구를 다양한 역동력을 갖고 있는 것 다양한 특성을 인식한다
내면화된 규칙을 갖고 있지만 규칙과 역할은 다면적이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너그러움의 표현 중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만
세계 공동체의 수준은 이 단계에 못 다다르고 아직은 순응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7)자율적 단계
내부지향적인 행동을 버리고 우호성을 참을 줄 알고 내적 갈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갈등을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측면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정도로 들어오면 현자 소리를 듣는다
8)통합적 단계
극소수의 성인들이다 이 단계는 자아실현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그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자리를 인정해주고 그냥 두는 것이다
종교란 개인적인 쉼터이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상대가 스스로 개종을 한다면 그것이 진짜 개종이다 그 때 받아들이는 것이 통합적 단계이다 개인적 감정을 종교에 투사시키는 경우는 안 좋다
*자아팽창을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못 받아들인다
융의 이론에
심리학에서 자아의식이 사회적 역할과 그 힘에 억눌려서 무의식 세계로의 단절이 일어나면 개인적 무의식은 집단적 무의식에 지나친 영향을 받아 권태적 신화적 색채를 띠게 된다
이것이 투사되면 대인관계에 갈등은 평상시 보다 엄청난 강도를 지니게 된다 신화적 의미의 투사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무의식이 투사됨이 없이 안에 머물러 자아의식을 점차 동화되어 가면 의식에 변화가 생겨서 자아실현과 신비화적 결과로의 시도를 과속 귀결하게 된다
신앙생활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주위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을 계속 떠받들어 주면 구세주콤플렉스에 걸린다 자아도취가 마성(魔性)인격을 자기 자신을 신비화한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자기 것 인양 가르치게 된다
너희는 너희 생각을 하느님 것 인양 가르친다는 말씀이 잇듯이
부모를 보양해야지 그냥 코르반이라고만 하면 안된다
강의 강론을 하면서 그냥 자기 생각을 하느님 것 인양 하면 곤란하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자아팽창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더 크다
끊임없이 기적을 일으킨다고 얘기하는 것은 더 심각하다 자아팽창에 빠지게 되면 성인 도인 느낌 속에서 살게 된다 신부인 경우 자기가 하느님인양 또는 신부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거짓 위신(false prestige)
거짓위신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고고함이다 방어기제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안 만난다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많다
정말 건강한 사람은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낯 설은 사람 안에도 서슴없이 들어간다 불편해도 그냥 앉아 있을 수 있다
거룩함이 신앙생활로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거짓 위신에 빠진 사람들이 내가 너희 보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룩함에 대해 많이 말한다 세속적인인 것이나 거룩함이나 이 두 가지가 내 안에 다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한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거룩함이란 완전강박증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이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신 안의 자기 느낌으로 부정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불편함과 부정적인 느낌을 마귀에게 전가하는 것이 이것이 다 마귀의 짓이야 하며 분노의 마귀, 질투의 마귀라 한다
사람은 상처받은 것들이 분노와 불편한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그냥 보면 된다 그 욕구를 풀어주고 화난 것을 풀어주면 되는 것이다 마귀 탓으로 하면 거룩한 척을 하게 된다 마귀들은 소리로 존재하지 이런 분노나 감정들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아무기(ego-weapon)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종교계 안에서 지나친 거룩한 척하는 사람이다 마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하느님 말씀이 안 먹힌다 바리사이인들은 정말 하느님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자기네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체로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자리에 있으려 한 것이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역할을 한다 죄를 짓고도 잘 모른다 들여다보고 깨져야 한다
*답답함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서 판별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답답함이다
내게 있는 욕구를 해소할 수 없을 때 무기력함을 느낄 때 청소년 가출의 이유도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가출과 출가는 비슷하다 답답함의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족하라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라
자족을 못하면 그 다음부터 불만과 갈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분노, 좌절하게 된다 그래서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주란 그냥 이대로 살 거야 하는 것이다 게으름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 유아기 상태이다
사람은 성장을 해야 되고 성장 욕구를 느꼈을 때 가지게 되는 감정이 답답함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도 엄마의 자궁에서 커 가며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앙생활 안에서 계속 성장하면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가는 것이
정상이다
한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게으름이란 죄를 짓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하신 것도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떠나라
아브라함 마슬로(Abraham Maslow)의 사람의 욕구단계
생리적인 단계는 소유의 단계이다 정서적 단계는 지위와 명예 등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성공했다고 한다
유혹이란 성공할 만큼 성공했어하는 것이다 재벌들은 정서적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다
영적인 단계는 나눔의 삶이다 또 다른 행복 이것을 참 행복이라 한다
나눔이란 가진 것을 나누는 또 다른 소유양식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떠나라고 하시는 것은 소유의 단계에 머물지 말고 영적인 단계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소유단계에서만 머물면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 우리 집만 사랑해주시는 하느님 우리 집을 돌보아주신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이 내 것만 중요한 것이다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것이 정상이다 내 마음 안에서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아 이게 아닌데 하는 답답함, 즉 갈증은 심리적 성장을 위한 것이다
마음 안에 어떤 답답함을 갖고 추구하는 사람이 진짜 건강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심리학이 본 요한복음](요한복음 1,26~34)
겸손과 가난함
세례자 요한의 증언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느님의 어린양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요한이 자기 자신을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표현은 논란이 많았다 그 당시에 예수님은 알려지지 않았던 분이었고 요한은 이미 자기 자리가 있었다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후대에 제자들이 문헌에 삽입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있다 예수님의 12세 부터 30세까지의 기록이 없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아마도 에세네 공동체 수도원에 들어가셨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당시 바리사이파들은 율법학자들이었고, 사두가이파는 제사장들이었는데 에세네파는 정결례에 대한 예의식이 철저하게 지켜졌던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공동체였다
요한이 그 공동체 안에서는 선배였지만 같이 수도생활을 했기에 신발 끈을 풀 자격이 없다고 한 것으로 본다
요한의 겸손함
1. 겸손(humus, humilitas)
겸손함이란 자기의 부족함을 본다는 것이다 humilitas는 땅이란 뜻으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겸손이란 본다는 것이다
1)진짜 겸손한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자기 부족함을 깨닫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 능동적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은 찌그러진 인생이고 우울증이다
2)겸손이란 배워가는 과정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내가 언제 행복하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참 나를 깨닫기이며 자기를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과 자기내면을 탐색하는 수직적 관계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수평적 관계인 이 수직, 수평적 관계의 확대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릇이 크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이 이 수직 수평을 잇는 원의 모양이 원형에 가깝다
내 안, 내면세계를 보지 않고 하느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편식하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원은 반원 같다
사람은 내면세계에 즉 자기 안의 보고 싶지 않은 것들과 불편함을 겪어야 성장살 수 있게 하느님이 만드셨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과 같이...
겸손한 사람은 자기 내면의 원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키워야 할 공간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다 이 원을 깨달음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2. 가난함
외적 가난이란 영성적 수준을 예측하는데 중세 수도원의 수도자들의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경을 쓴다는 것은 심리적 에너지를 뜻한다
나를 자극과 관심을 갖는 대상에 대해서 내적 성장에 대해 쏟아야 하는데 하느님에 대해 집중하는 것 이외의 내 눈길을 끄는 것을 제거하는 것을
가난한 삶이라고 한다 영성적 눈속임이란 삶의 외적 가난으로 자기 방어기제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1)가난한 마음
가난한 마음이란 긴장(tension)하는 마음이다
긴장이란 고무줄이 팽팽한 상태에 있을 때의 건강한 상태 고무줄이 고무줄다운 상태와 같다
감내할 수 있는 긴장의 정도가 늘어졌을 때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무기력 상태에 빠졌을 때이다
내가 성취한 것과 성취해야 될 것 사이에는 늘 긴장이 있다 긴장이란 내가 뭔가 해야 되는데 하기 직전까지 일어나는 심리적인 에너지의 긴장 상태이다
지금의 나와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나에 대한 초상화를 그리고 살아야 심리적 에너지가 집중된다
심리적 에너지를 투사할 대상이 없으면 널브러져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긴장 없이 살게 되면 노화가 빨리 일어난다 그러면 내적이나 외적인 삶이 망가져 내려간다
많은 사람들이 긴장 없이 사는 것과 혼돈하는 것이 평상심과 편안한 마음이다 아무 걱정이 없다는 것이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조금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이 건강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력해진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고 투자하는 긴장의 상태가 중요하다
사람이 사는데 살맛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킬 때 살맛이 난다 내 수준이 향상됐을 때 이다
나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와 내 스스로의 평가가 올라갔을 때 살맛이 난다 그러기위해서는 긴장하고 살아야한다 노인들도 자기가 하는 일이 있으면 눈에 총기가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생동감 있게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자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면 내면적인 휴정 상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면적인 긴장상태가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이 긴장상태가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하다고 한다
상담에서도 상담자가 내담자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긴장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왜 살아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고 그 사람 마음 안에 긴장감을 일으켜주는 것이 진정한 치료이다 일상적 편안함은 무력감을 일으킬 수 있다
2)가난한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이다
점을 자주 보면 수명이 준다? 점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불안장애자들이다
심리적으로 중독현상이 되어 오래 못사는 것이다 불안 장애, 건강염려증, 병원 중독증 등 점 자주 보면 안 된다
기도는 하느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하느님께만 눈길을 주는 것이다 대화상대가 하느님 하고만 할 때 그것을 기도라고 한다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라고 한 말씀, 나 이외의 다른 신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
하느님께 집중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안치료에 좋다
불안한 대상에 눈의 초점이 가 있으면 불안한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영화를 찍는다 자기 마음 안에 불안을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자기 마음 안에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도는 안하고 그냥 불안한 상태에만 머문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그 상태만 보면 안 되고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을 보아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성상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그런 것이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대상들이 나를 건너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심리적으로 힘이 있는 것이다 -도반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