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귀환
이사야 2:1-510-1128.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신들은 엘프와 난장이 그리고 인간을 만들고 거기서 살게 했답니다. 악의 힘을 얻은 사우론은 신들이 창조한 세계를 점령해나가자 신의 노여움으로 힘을 빼앗겨 쫓겨납니다. 절치부심한 사우론은 인간 세계에 있는 11개의 마법의 반지 소문을 듣고 그보다 더 강력한 12번째의 「절대 반지」를 만들어 끼고, 여기 저기 쑤시고 위협하다가 손가락이 잘려 잃게 되자 인간세계에 재앙을 내립니다.
한 호빗(빌보)이 반지를 주었는데 「절대반지」였고, 사우론도 알았지요. 그 반지는 불의 산 용암에 녹여야 사우론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프로도와 반지 원정대」 9명은 불의 산을 향해 모험을 떠납니다. 수많은 위협과 음모에 걸려 간달프는 죽고, 엄청난 사우론의 세력 앞에 희생되고 흩어지지만 죽었던 간달프는 백색의 마법사로 거듭나고 엘프 족에 숨어 살던 왕자 아르곤이 여러 종족을 모아 파란만장한 위기를 넘기며 전쟁을 계속하지요.
반지를 맡은 프로도는 절대반지가 강력하게 의지와 인간성을 시험하자 샘과 골룸에게 의지하며 불의 산에 도착하지만 반지에게 유혹되지요. 골룸에게 반지를 빼앗기지만 골룸도 유혹의 갈등에서 반지와 함께 용암 속으로 들어가 절대반지를 소멸시키고 빼앗겼던 곤도르 성을 회복한 아르곤은 왕자임이 밝혀져 왕으로 귀환합니다.
영국은 음산한 날씨, 안개와 눈 비, 혹한과 험한 파도의 거친 환경 뿐 아니라, 북극의 야만 해적 바이킹의 끊임없는 침범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앙이기 때문에 「전설」도 많고, 「모험담」도 많아, 「해리포터와 마법사」「아더 왕의 신검」「로빈 훗」같은 전설이 많지요.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습격하여 남자는 노예로 잡아가고 여자들에게는 임신을 시켜 씨를 뿌렸습니다.
무자비한 악의 횡포 앞에 끝장 날 것 같지만 그 때마다 영웅이 나타나 악의 끝장과 최후의 승리를 봅니다. 반반한 여자들을 납치했습니다. 납치된 여성들은 그 잔인무도한 바이킹의 아내가 되어 교화, 교육시켰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무식과 잔인함은 사라지고 문화와 문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세계 최강 부국을 이루었습니다. 무력으로 점령되었지만, 복음으로 정복했던 것입니다.
「말일」이란 「그 날 뒤를 이어서」 즉 산전수전이 지난 구약시대의 끝에서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성전시대의 뒤를 이어서 「교회」시대가 시작될 것입니다. 만왕의 왕, 메시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왕이 십자가에 달릴 때 성소의 휘장을 찢었습니다.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거룩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모임이 「성도」요, 주님 몸의 지체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 왕의 귀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우론과 같은 악의 세력은 꺾일 것입니다. 할렐루야!
Ⅰ. 왕이 귀환 하시면 「길」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하셨습니다. 천국 가는 길, 평강으로 사는 길, 축복을 누리는 길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는 자, 그 집을 찬양하는 자,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은혜입니다.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122:6-7)「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왕 중의 왕이 계신 곳, 하늘의 왕이 계신 곳, 영적 예루살렘 성은 평강의 도성입니다. 지상의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마호메트교 삼대 성지가 되어 목숨을 걸고 피의 투쟁 한 복판에 있습니다.
1] 인간은 거의 다 현실의 예루살렘처럼 「내적 갈등」을 앓고 있지요. 하나님의 모형이면서도 육체를 가졌고 「생령」은 살았는데 「영」이 죽었으니 먹는 것, 입는 것, 살 집에 대한 현실의 욕구와 영성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육은 「생존본능」에 충실하고, 영은 「말씀」을 따르려 하니 강력한 충돌이 일 수 밖에요. 양심 속에 묻어둔 죄, 수치, 허물이 불쑥 불쑥 나타나 숨겨두자니 전전긍긍하다보면 내적 갈등이 심하지요. 왕의 왕 되신 주님이 내 인생 왕궁으로, 귀환하시지 않으면 갈등은 사탄을 불러들이고, 엉망진창이 되는 거예요.
2] 관계 갈등입니다. 부부, 형제, 부자, 교회공동체, 반상회, 회사 등 나와 관계 되어진 사람과의 갈등은 참으로 끔찍한 현장을 만들어 내지요. 다 내 맘,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요. 제 밥 먹고 컸대요. 세우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깨고 부수려는 자도 꼭 있어요. 갈등이지요.
배필, 또는 직장을 찾다가 「만났다」 싶어 마음을 정하고 나면 더 눈길 끄는 대상이 나타나요. 갈등이지요. 이럴 때 갈등하는 문제와 나 사이에 「왕이신 주님을 세워 놓고」 생각해 보세요. 유혹인지, 더 좋은 길인지 분명히 뚜렷하게 보입니다. 이것 안하고 그냥 갈등하다가 끌려가면 함정에 빠져요.
(시122:1-3)「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인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마음이, 눈이, 관심이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가슴이요, 꿈입니다. 예루살렘을 품은 자는 하나님의 뜻을 품은 자이며, 발이 그 문안에 있는 자는 축복의 땅을 떠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잘 짜인 성읍과도 같이 우리 인생을 축복으로 건설하실 것입니다. 갈등구조가 아니라 찬양구조가 됩니다.
3]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자 자연과도 갈등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 잡초만 납니다. 환경파괴입니다. 욕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어도 잘만 합니다. 반항, 거역, 파괴, 오염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팝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날로 악해 지고 말도 거칠고 사나워 갑니다. 교육환경은 좋아지는데 결과는 악한 세상일 뿐입니다.
4] 영적 갈등입니다. 입으로는 「주여」「주여」 하지만 행동으로는 「죽여」「죽여」…말과 행동이 따로국밥입니다. 기도 따로 염려 따로, 예배 따로, 삶 따로…. 「믿습니다!」 기도하고는 「우얏꼬?」 겉으로는 「사랑하자-순종하자」 속으로는 「시끄러!」「듣기 싫어!」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공부를 시키려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가슴을 키우려는 마음, 생각의 폭을 넓히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눈에 보여야, 귀에 들려야, 손에 잡혀야 믿으려는 세대를 바라 볼 때마다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먼 성도는 사탄의 밥이지요. 이성과 지성으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 턱이 없고, 받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세상에 있습니다. 육신의 「생존본능」을 마귀가 인질로 잡고 탐욕과 정욕과 자랑에 끌려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선한 양심이 하늘을 찾아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과 영은 심각한 대치국면이지요. 지금 연평도 현장과 같습니다. 그러나 왕이 오시면, 과감하게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묻어 놓고, 그렇게 설쳐대던 사탄의 세력을 꺾습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내 왕국을 도로 찾으실 것입니다.
Ⅱ. 왕의 귀환입니다.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 마음이, 삶이 예루살렘의 현실처럼 갈등하고, 분쟁하며, 죽고 죽이는 처참한 현실이지만 만왕의 왕이 오시면 공평과 정의로 판단하시고 판결하십니다. 그 앞에서는 칼과 창을 쳐서 생산성 높은 농기구를 만드는 삶의 전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엔 (마24: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40-41)「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즉 일하는 현장에서 왕을 마지하게 될 것입니다. 같은 장소, 같은 일을 하지만 속에 「왕이 계신가, 내 정욕이 있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왕을 맞이하느냐? 추방되어 영원한 불 못에 빠져서 이를 가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았으나 결혼잔치에 들어갈 등과 기름이 있느냐 없느냐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했는가? 아닌가? 따져봐야 합니다. 사우론 같은 사탄의 유혹에 따라 육체를 위하여 살았느냐? 아라곤 왕자처럼 이족에게 버림 받았으나 왕의 유전자를 그대로 잘 성장시켜 「위기를 극복하고」「왕의 귀환을 맞느냐?」「프로도처럼 끝까지 사명을 성공시켜 악의 힘을 원천 봉쇄하느냐」 딸렸습니다.
(롬13: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연평도 포격이 문제 아닙니다. 원자탄 몇 개 갖고 있다고, 한방에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정신병자들… 지하 핵실험이 잠자던 화산을 깨웠는지 백두산이 심상치 않습니다. 뱀 떼들이 얼빠진 것처럼 기어 나오고, 거북이들이 도망을 칩니다. 인공위성 사진엔 천지 지하에 온도가 범상치 않습니다. (롬13: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 제국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시대, 베스비오스 산 중턱에는 2,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화산재가 만들어준 비옥한 땅은 살기에 안성맞춤 이었지요. AD 63년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에게 외쳤습니다. 「베스비오스 화산이 폭발할 것이오. 살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오.」 그러나 아무도 이 말을 믿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16년 후 79. 8. 24. 베스비오스 화산은 폭발하였고,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종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성경은 역사의 마지막 날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시간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겐 예언이 있습니다. 5)「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아무리 사탄의 세력이 거대하고, 무자비하여 상대를 할 수 없다 해도, 우리에겐 여호와의 빛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만왕의 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할렐루야! 왕이신 나의 예수님! 내가 그를 높이고, 그 이름을 송축하나이다. 할렐루야!
|
첫댓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