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分 回香

[bill]

                              春分 回香

                    (경기전 노매를 찾아서)

신묘년 3월 21일

  경기전의 노매를 알현하는 야유의 길을 나섰다. 혼자서 보다는 여럿이 같은 마음을 나누며 가는 길이라면 더한 새로움으로 다가선다던가?  겨울이 휩쓸고 지나간 경기전 돌담길, 봄빛이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스산하다. 500년 세월을 품에 안은 대문을 넘어서면 조선의 역사, 그 애환을 간직한 전주사고의 뜰에 내린다. 아직도 지난 가을의 흔적 속에 유난히도 혹독했던 겨울의 강을 건넌 나무들이 봄을 맞고 있다. 지난  겨울이 매서웠으므로 더욱 찬란한 푸르름으로 피어날 것이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지사이에 내리는 가녀린 햇빛을 흔들며 사늘 바람이 저만큼 대나무 가지를 흔든다. 아직 젊지만 키 큰 매화가지에 피어나는 꽃 들이 성큼 성큼한데 양지 바루 서있는 홍매의 붉은 빛으로 품어내는 감미로운 향기에 발길이 멈춘다.

그 빛, 그 향기에 취해 봄빛을 누리는데 저만큼 큰 나무들 아래 족히 그 들 만큼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음직한 매화 한그루 힘들게 서 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인가 그를 일러 노매(老梅)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굽혀진 허리를 대지에 의지한 채 스러질듯 서있어도 하늘을 향하여 초록의 꽃망울로 찬란한 봄을 잉태하고 있다. 지난주에도 그랬고 이번 주에도 곧 피워낼 것이라고 했지만 봄을 가르는 춘분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노매 !  몸은 늙었어도 여전히 품어 발산하는 그 마음, 그 자태는 지나가는 행락객의 눈길을 모운다. 그 한그루 나무에도 사시는 순환하고 천년의 빛은 멈출 수 없다.

  매화를 군자라 일컫는다. 사군자, 그 중에서도 가장 앞에서는 군자중의 군자라 칭한다. 매서운 칼바람에 고난의 언덕을 넘어 이른 봄에 고매함을 토해 내고 있으니 그렇지아니한가. 많은 문사 화백의 손을 거치며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매화는 명멸해 갔다. 특히나 늙은 매화가지에서 피어나는 그 향기야 만인의 칭송을 받으며 어김없이 안방을 장식하는 병풍 족자의 한 켠을 채워 왔다.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경기전의 노매가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주변의 다른 꽃들이 다투어 피워 가며 회자(膾炙)할 때에도 시샘함 없이 서두르지 않고 최후로 그 향을 풀어 낼 것이다. 가히 고고(孤高)한 군자의 기품일지어라.

  백설이 지나간 간 자리

  겨우내 응고된 자락마다

  연두빛 여린 봉오리

  봄은 봄이어도

  고름 풀기를 거부한다.

  인고에 서러운 밤

  햇살은 가지 끝마다

  봄을 알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에 푸른 마음

  늙어도 늙지 않는 노매의 향기

[산수국]

경기전의 노매를 제대로 알현하지 못한 마음이 되레 무겁습니다. 지금 쯤이면 고름을 풀고 계실지.. 시샘 없는 노매의 고고함을 닮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노매! 그런 노매는 화사한 꽃을 보더라도 시기하지 않고, 초라한 꽃을 보더라도 비하하지 않은 자기 사랑으로 충만하고 우직한 바위와도 같습니다.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둘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의 품성을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군수]

우리 월천 문우님들과 함께 경기전 노매를 찾아나선 보람이 있어 이렇게 좋은 글이 탄생되었습니다. 한 편의 수필과 시가 병풍에 그림이 담겨있듯 잘 그려져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과 생각을 경륜을 통하여 차분하게 잘 펼쳐 나가셨습니다. 노매에 대한 예찬이 다른 사람에게도 잘 전이 되어 친근감을 갖게 합니다. 2연의 짧은 시속에 노매의 기픔이 잘 나타났습니다. 숙제시 감사합니다.

[제비]

노매를 보러간날 감동적인 꽃의 열림에 메모장을 준비하신 모습이 좋았습니다. 노매를 생각하시는 수필과 시가 감동적입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신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늙어도 늙지않는 노매처럼 저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향기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좋은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