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대륙 동쪽 끝의 작은 섬.
일본 홋카이도 바로 위에 있는 작은 섬.
"사할린(Sakhalin)"
1945년 해방 당시, 4만3천여명의 조선인들이 발이 묶인 채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곳에는 3만여명의 '사할린한인'들이 4세대에 걸쳐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농사지을 때 달력을 봅니다. 초복에는 배추 심고, 중복에는 무도 심고."
러시아달력으로는 알 수 있는 길이 없지만, 한인사회에 대대로 이어져오는 '수제작 음력 달력'으로 제사와 생일을 챙기고, 농사를 짓고 바닷물 빠지는 날을 알아 조개를 캐 내다팔면서 자식들을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집안 수리할 때, 이사갈 때도 음력 달력을 찾았습니다.
양력 달력 아래 자그마하게 적혀 있는 음력.
현재 사할린에는 한인1세가 약 1천여명 생존해 계십니다. 2세, 3세로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변했지만, 한번 정해진 기일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의미는 잘 모르지만 마치 구전설화처럼 삶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음력 달력이 아예 없는 달력도 있지만, 사할린한인들에게 음력 달력은 세대를 이어오고, 고향과 이어주는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달력 하나 구할 수 없어 한국에 다녀오는 사람들과 지원 단체 등을 통해 한국의 달력을 구해왔습니다.
2013년, 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는 <사할린한인 1세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2014'>를 1천부 제작해 직접 전달해드렸습니다.
만드는 김에 한국 달력이 아닌, 러시아가 생활의 기반인 한인들을 위해 러시아 달력을 만들어 음력을 표기하고, 우리의 명절, 절기, 국경일, 기념일 등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우리의 문화를 잘 모르는 3세,4세까지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입니다. (상세 내용은 관련 링크 "달력 하나에 할머니들을 춤을 추었습니다" 참조)
이런 달력 제작을 위해 1,600여명의 한국, 일본, 중국, 독일의 동포와 시민들이 참여해주셨고, 한국의 풍경을 담은 사진, 달력 디자인, 러시아어번역을 위해 많은 분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해주셨습니다.
올해 2014년에도 <사할린한인 1세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2015'>를 만들어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고향과 세대를 이어주는 소중한 끈을 여러분들이 이어주세요!
['사할린한인' 이란?]
일제식민지시기. 러일전쟁 이후 사할린땅의 절반을 차지한 일본은 식민지 개척을 위한 산림/석탄자원개발, 비행장건설 등을 위해 수만명의 조선인들을 동원하였고, 종전 막바지에 이르러 석탄의 수송이 불가능해지자 조선인 광부를 일본 본토로 '이중징용' 하였습니다.
종전과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일본인이 아니다'는 이유로 30만명의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로 돌아갈 때 4만3천여명의 조선인들은 사할린땅에 남아야 했고, 지금까지 4세대를 이어 3만여명의 사할린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일적십자사를 통해 한국으로 영주귀국사업이 시작됐지만, 반세기가 넘게 고향땅 밟기만을 기다리던 1세들은 대부분 사망하고, 1945년 8월 15일 이전 태생자(1세로 규정)와 2인 1가구라는 조건으로 영주귀국이 이루어지고 있어 사할린에 자식들을 두고 와야만 합니다.
게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자식과 떨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사할린에 남은 1천여명의 한인1세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모국으로부터도 별다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진행되고 있는 영주귀국사업도 법적 근거나 정책이 뒷받침 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어 사할린현장에 대한 지원과 영주귀국 사할린동포들에 대한 안정적이고 제대로 된 지원을 위해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이 필요하나, 10년간 국회에 계류와 기간만료폐기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힘들지만 동참해주시면 그분들한테 큰 힘이 되겟지요.이건 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