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3. 큐티
잠언 30:1 ~ 4
아굴 잠언의 표지
관찰 :
1) 30장의 표제 - 아굴의 잠언
- 1절.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 본 절은 본 장의 표제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는 부분입니다. “아굴”은 ‘모으는 자’, ‘소집하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굴”이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잠언 30장에만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아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굴의 아버지 “야게” 역시 본 장에만 언급이 되는 이름이고, “야게”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거나 편집자들이 만든 허구의 인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아굴은 솔로몬 시대 혹은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지혜자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본 장의 대상이 되는 “이디엘”과 “우갈”은 아굴의 제자이거나 아들 혹은 동료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
- 2절.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 아굴은 자신의 인간적 수준에서의 지혜 추구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진리 탐구의 방법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굴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함으로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3절.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 앞 절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아굴은 참된 지혜와 지식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라는 표현은 인간의 이성적 추구가 진리의 획득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굴은 정직하게 자신이 참된 지혜 추구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거듭 반복해서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굴이 인간적 지혜 추구에 실패했다는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아굴이 참된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아굴은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이 없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을 배워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참된 지식의 원천은 인간의 이성이 아닌 말씀에서 나오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이,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 4절a.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 앞의 2, 3절에서 아굴은 자신의 무지를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무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굴은 참된 지식에 대한 다섯 개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질문을 제외한 네 질문은 누구라도 쉽게 즉각적으로 하나님이라는 대답이 나오도록 하는 유도 질문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연약함과 미약함을 깨닫고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절대적 통치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하늘“은 인간 세상을 초월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를 포함하는 차원의 하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만이 온 우주 만물과 천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왕래하시며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라는 표현은 불멸성, 초인간적 지식, 지혜, 힘 같은 하나님만이 지니신 특별한 속성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켜 둘 사이의 커다한 간격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4절b.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 아굴은 바람을 주관하신다는 단적인 실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을 다스리시고 제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키시고 또한 이를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볼 수도 없고, 그 일부를 잡는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은 바람을 그 손바닥 안에 모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될 때에 자신이 극히 미미한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4절c.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 앞부분에서 아굴은 하나님께서 바람을 통제하신다는 것을 “손”을 소재로 하여 표현했습니다. 여기서는 하늘의 구름을 두시고 비를 내리게 하심을 “옷”을 소재로 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은 ‘빗 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옷”은 ‘외투’라는 의미로서 빗물을 머금고 있는 구름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하늘의 구름이 그 많은 빗물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자연 현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굴은 이러한 자연 현상을 주관하시는 능하신 분이 다른 이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제시함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4절d.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거주지를 세우신 분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은 인간과 모든 동물들이 존재하는 거주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거주하는 모든 곳의 끝까지 다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과 동물이 거주하는 모든 곳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존재가 가능한 터를 만드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 4절e.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 앞 선 네 개의 질문과는 달리 이 질문은 답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대상의 인격과 그 인격이 가진 속성을 파악한다는 의미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이름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서의 이름을 아느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인격을 파악하느냐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엄위하신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인간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의 아들의 이름”은 성자 예수로 이해하기에는 성급한 판단입니다. 여기서의 의미는 “지혜”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되는 하나님의 지혜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굴은 인간 존재의 미미함을 보여주는 네 개의 앞 선 질문과 더불어 어떠한 인간이라도 능히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자신의 지혜와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여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이끌고자 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아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혜가 있던 사람이고, 그가 쓴 글이 솔로몬의 잠언에 수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솔로몬에 필적할 만한 지혜자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받는 은혜가 있는 사람은 깊은 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아굴은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스스로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형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21세기의 상황에서도 과학 기술이 아굴의 시대보다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발달했지만, 여전히 아굴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적인 것에 속한 것이기에 세상 차원의 학문과 과학 기술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것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이 참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많은 종교와 철학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다만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시하셔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4) 아굴은 지혜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노력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굴은 자신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 노력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가 가장 고귀함을 알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을 내 스스로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인이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내게 하나님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 주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으며, 그 속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날마다 소원합니다.
2) 아굴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입니다. 내게 와서 배워라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알 수가 없는 영역입니다. 제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을 드러내주시고 알려주시는 은혜를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십니다.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제 인생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3) 현재의 시간이 아직 고통이 끝이 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혜로 이 과정을 이겨낼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주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는 은총을 경험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