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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프랑스는 1795년 설립된 Conservatoire de Paris(현 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와
1980년 설립된 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Lyon, 이 주축되어 각 지방 Conservatoire에서
많은 음악인을 배출했지만 1970-80년대까지 오케스트라들은 이렇다 할 세계적 명성의 오케스트라는 없었다. 자유분방한
프랑스인의 사고로 인한 관습들이 섬세하고 냉정한 계산에 의해야 하고 각 악기가 균형을 이루고 튀어남이 없어야 이룰 수
있는 오케스트라 앙상블에는 방해가 되고 단합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의 주를 이루는 독일계 작곡가들의 곡의
표현에서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칼라의 많은 편차를 보여 취약함을 들어내었다. 라디오 프랑스 파리도 Marek Janowski가
수석 지휘자로 오기전 1980년대 초까지 앙상블에 많은 취약함이 있었고 이런 오케스트라를 야놉스키는 부르크너, 막스 레거,
브라함스 등 독일계 작곡가의 곡을 통해 단단하고 끈기있는 오케스트라 앙상블을 이룬다. 야놉스키는 버진 레코드, 텔덱,
RCA 등 음반회사와 생상, 댕디, 드뷔시, 루터슬롭스키, 메시앙, 풀랑, 루셀, 쇼송, 부르크너, 막스 레거 등 많은 다양한 프랑스
작곡가와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의 음원작업으로 오케스트라 앙상블의 완성도를 높이고 독일계 작곡가의 곡 해석에도
컴플렉스에서 벗어난다. 1984년에서 2000년까지 16년간 이 오케스트라를 음악적으로나 앙상블적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2000년 정명훈에게 바톤을 넘겨 이어받은 정명훈은 더욱 단단한 앙상블과 음악적 깊이를 더하고, 프랑스와 유럽,
아시아 투어를 통해 전 세계에 오케스트라를 알리고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을 맺고 베토벤, 라벨, 메시앙, 뒤튀외의
작품들의 음원작업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양질의 연주자들을 뽑아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들이 고른 기량으로 오케스트라
발란스를 유지 할 수 있게 하였다. 성공적 세대교체로 점차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명성을 얻는다.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는 잦은 통폐합과 명칭 변경으로 인하여 악단의 존재를 알리는 데 많은 장애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低평가 된 오케스트라로 인식되고 프랑스 내에서는 이미 음악인들에게 프랑스 최상의
오케스트라라는 찬사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의 도시 빈과 독일에서도 점차 훌륭한 오케스트라라는 인식을 얻게 된다.
특히 독일어계 국가에서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개개인의 능력에 비해 앙상블의 결집력은 떨어지고 프랑스 음악은
표현력이 뛰어나지만, 독일 음악에 취약하다는 인식들을 이 오케스트라가 프랑스 오케스트라도 견고한 앙상블로 독일
음악을 독일인같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실지 연주를 통해 각인시켜주었다. 이는 지휘자 야놉스키와 정명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는 5관 편성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우리가 인지하고 있듯이 단원들
개개인 능력은 세계 최정상급으로 서울 시향에 주요 연주자를 임대하더라도 자신의 공연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은 막강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각 파트가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들로 채워져 고른 균형을 이루어 이상적인 발란스를 유지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 사람과 어느 오케스트라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10년 정도에서 심한 mannerism에 빠진다.
이런 현상은 오케스트라와 상임 지휘자 관계에서도 생겨 많은 오케스트라는 아주 특별한 지휘자를 제외하고 10년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임 지휘자를 교체한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은 공연 예술에서 10년이란 시간은 신선미와 독창성 등을
확장할 동력을 잃는다. 그러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세대교체는 항상 염두에 두고 해결해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오케스트라들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요즈음 유럽에서 젊은이들의 클래식 음악 전공 선호도가 예전과 같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과 3 - 4년 사이에 세대교체를 잘 이룬 오케스트라는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오케스트라는 바로 퇴보의
길로 빠지는 곳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공연 예술의 현장 속 깊숙이 있는 오케스트라의 숙명이다. 3,4년 사이에 오케스트라
앙상블이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자위적 사고로 필연적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방치하며, 많은 오케스트라는 긴장을 늦추는
모습을 보이는데, 필자가 오랜 기간 세계 오케스트라의 동정을 살펴본 소견으로는 자신 있게 앙상블의 질이 많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안에서 보는 시각과 멀리 떨어져서 본 시각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를 통한 모든
공연을 실황으로 전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좋은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16, Jänner, 2024. København. franciscopaik.
단원 구성: 1.Vn. 2Vn. Viola. Cello. K.Bass.
악장3 , 22명. 17명. 17명. 13명.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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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 Ob. Cla. Bn. Hr. Tp. Tb. Tu. Tim. Pe. Hf. Pi. 총인원. (2024년 1월 현재)
5명. 5명. 5명. 5명. 8명. 5명. 4명. 1명. 2명. 3명. 1명. 1명. - 122명.
(이 오케스트라의 한국인 단원으로는 악장에 박지윤과 제2 수석 바이올린 이은주가 있다.)
*** 직책, 출신국, 입단 시기, 약식 경력. ***
fl.
Magali Mosnier Solo *2003 1. Preis ARD Musikwettbewerb (2004)
Mathilde Calderini, première flûte solo *2020 1. Preis 고베,
Michel Rousseau *1987 deuxième flûte CNSMP, Alain Marion
Justine Caillé, piccolo *2021 CNSMP
Anne-Sophie Neves piccolo solo *2014 CNSMP
"Thomas Prévost (스위스) Solo CNSMP Jean-Pierre Rampal, CNSMP 교수, 2023년 은퇴.
"Nels Lindeblad *1976 CNSMP 2023년 은퇴.
ob.
Hélène Devilleneuve Solo *1995 CNSMP 1st p. Concours Tokyo (1994)
Olivier Doise Solo *2009 CNSMP super soloist Opera of Paris
Cyril Ciabaud *2017(?) CNSMD de Lyon solo de l’Orchestre National de Lille
Anne-Marie Gay, deuxième hautbois et cor anglais *2018 Mahler Jugendorchester
Stéphane Suchanek cor anglais *1996 CNSM de lyon
"Stéphane Part
cla.
Nicolas Baldeyrou Solo *2011 CNSM de Paris. Michel Arrignon 3. Preis ARD (1998)
Jérôme Voisin Solo *2006 competitions Roma, Prague, Toulon CNSM de Paris.
Manuel Metzger petite clarinette *2008 CNSM mention
Victor Bourhis, clarinette basse
Lilian Harismendy, clarinette basse
"Didier Pernoit clarinette basse solo
"Christelle Pochet *2008 Michel Arrignon au CNSM de Paris
" Jean-Pascal Post *1985 CNSM de Paris 2022년 은퇴.
bn.
Jean-François Duquesnoy Solo *1999 CNSM de Paris
Julien Hardy Solo *2007 ARD CNSM de Paris
Stéphane Coutaz deuxième basson *2019 CNSM de Paris
Wladimir Weimer Contrebasson solo *2012 CNSM de Paris
Hugues Anselmo, contrebasson *2019 CNSMD de Lyon, CNSMD de Paris.Gustav Mahler Jugendorch.
Direction
1937 - 1940 : Rhené-Baton (Orchestre Radio Symphonique)
1947 - 1965 : Eugène Bigot (permanent, Orchestre Radio Symphonique)
1951 - 1976 : Adolphe Sibert (permanent, Orchestre radio-lyrique)
1965 - 1970 : Charles Bruck (permanent, Orchestre philharmonique de l'ORTF)
1976 - 1989 : Gilbert Amy (direction musicale, Nouvel Orchestre philharmonique)
1981 - 1983 : Hubert Soudant (directeur musical) ; Emmanuel Krivine (premier chef invité)
1984 - 1989 : Marek Janowski (premier chef invité)
1989 - 2000 : Marek Janowski (direction musicale,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2000 - 2015 : Myung - Whun Chung (direction musicale ; reçoit le titre de directeur
musical honoraire à la fin de son mandat)
2015 - : Mikko Franck (direction musicale)
역사;
1937년에 방송 교향악단(Orchestre Radio-Symphonique)으로 창단된 것이 시초이며, 1941년에는 라디오 리리크 관현악단(Orchestre Radio-Lyrique)이 별도로 창단되었다. 두 악단 모두 초기에는 상임 지휘자 없이 활동했으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52년에는 프랑스 방송 실내 관현악단(Orchestre de Chambre de la Radiodiffusion française)이 창단되었다. 방송
교향악단과 라디오 리리크 관현악단의 초대 상임 지휘자는 각각 외젠 비고와 아돌프 지베르가 맡았으며, 1960년에는 방송
교향악단이 프랑스 방송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rchestre Philharmonique de la Radiodiffusion française)로 개칭되었다.
1964년에 텔레비전 부서의 추가로 방송국 명칭이 바뀌면서 악단 명칭도 동시에 'Orchestre Philharmonique de
l'ORTF(ORTF: Office de Radiodiffusion-Télévision Française)' 로 재차 개칭되었다. 개칭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는 샤를 브뤼크가 맡아 5년간 활동했으며, 1976년에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리리크 관현악단, 실내
관현악단 세 단체를 통합해 라디오 프랑스 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ouvel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로
재창단되었다. 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대 음악 감독으로는 질베르 아미가 임명되어 1989년까지 재임했으며, 에마누엘
크리빈과 마렉 야노프스키도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아미 사임 후에는 야노프스키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신(Nouvel)' 을 뺀 현재의 명칭으로 최종 개칭되었다. 야노프스키는 2000년까지 재임했으며, 후임으로 정명훈이
15년간 부임하였다가 현재는 미코 프랑크가 재임하고 있다.
방송 교향악단과 라디오 리리크 관현악단 모두 창단 목적에 따라 방송 연주회 위주로 많이 활동했으나, 전쟁 중에는 극심한
활동 부진 상태를 면치 못했다. 전후 프랑스 방송계가 개편되고 재출범하면서 다시 재건과 정비가 시작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중반에 재결성 혹은 개칭된 파리 관현악단이나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에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악단의
통폐합도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실시되었으며, 여타 프랑스 악단과 달리 근현대 작품의 소개에 주력하는 형태로
활동 노선이 변경되었다. 지금도 프랑스인 혹은 프랑스 거주 작곡가들의 현대곡을 특히 많이 다루고 있으며, 이외에도
오페라의 연주회 형식 상연이나 기존 명곡의 공연 등도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잦은 명칭 변경과 통폐합이 오히려 악단의
존재를 알리는 데 장애가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녹음은 ORTF 필하모닉 시대부터 프랑스 현대 작품을 중심으로 진행
되었으며, 야노프스키 재임기에는 버진 레코드나 에라토, RCA, 텔덱 등의 음반사들과 계약을 맺고 생상과 댕디, 드뷔시,
루토스와프스키, 메시앙, 풀랑, 루셀, 쇼송, 브루크너, 레거 등의 다양한 작품을 녹음했다. 야노프스키의 후임인 정명훈은
도이체 그라모폰과 버진 레코드에 베토벤, 라벨, 메시앙과 뒤튀외의 작품들을 녹음했으며, 이외에도 조르주 프레트르나
레너드 번스타인, 마리우스 콩스탕, 아르맹 조르당, 엘리아후 인발, 파보 예르비, 샤를 뒤투아 등이 지휘한 녹음도 여러
음반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공연장은 주로 살르 플레옐과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의 살르 올리비에 메시앙을 사용하고
있으며, 악단원들의 실내악 공연도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의 살르 샤를 트레네에서 개최되고 있다. 출처: 위키페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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