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조재형 신부
복음; 마르13,33-37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3년에는 ‘성지순례’를 6번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는 것은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지를 보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도 하고, 사진에 담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 성지순례를 다닐 때는 주로 보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습니다.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오병이어 성당, 진복팔단 성당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무덤성전을 보았습니다. 나자렛에서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보았습니다. 로마에서는 베드로 대성당을 보았습니다. 루르드에서는 성모님의 발현 동굴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목적이 되면 눈은 즐겁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앙의 선조들이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순례를 통해서 나도 신앙의 선조들처럼 치열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지순례의 목적은 ‘멈춤, 만남, 변화’가 됩니다. 성지순례를 위해서는 일상의 삶을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성지에서 신앙의 선조들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만났다면 더 나은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했던 것처럼,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처럼 변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지순례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오늘은 교회의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 주일’입니다. 세상의 달력은 아직 24일이 남았지만 교회의 전례는 오늘부터 새로운 한해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는 ‘깨어있음’입니다. 깨어있음에도 2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아침 4시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잠에서 깨어났기에 지금 이렇게 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깨어난 모든 생명은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생존과 종족의 보존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먹히는 ‘양육강식’의 세계입니다. 환경에 적응한 것이 살아남은 ‘적자생존’의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인 깨어남입니다. 우리는 이런 깨어남을 ‘깨달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구도의 길을 갈 때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영적인 ‘깨달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깨달음에도 2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선물처럼 주어지는 깨달음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 벅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치열한 성찰과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깨달음입니다. 부처님은 7년간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을 이웃에게 전하였습니다.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비록 배움이 부족해도, 이방인일지라도, 죄인일지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완고해진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하느님의 기적은 이방인이었던 시렙다의 과부에게서 일어났다. 엘리사 시대에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치유의 기적은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서 일어났다.”
율법과 계명을 잘 알았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선물처럼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거룩함을 찾아라.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새들을 보아라, 들의 꽃들을 보아라. 저들은 수고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다 먹이고 입히신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런 걱정하지 마라.”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짐 진다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다.” 다른 하나는 ‘말씀’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이 말씀에 ‘예’라고 응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요셉 성인도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나자렛의 성 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청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 안에 살았을 때는 낙원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악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을 때는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2024년 교회의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겸손과 온유로 마음의 문을 열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선물처럼 받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얻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