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2-3 경건한 유대인들은 통곡하며 공회에서 금지한 장례를 위험을 무릎쓰고 치렀지만 반대로 사울은 맹수처럼 날뛰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믿는 자들을 끌어냈다.
이전 말씀에서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헬라파 유대인들이 교회를 핍박한 것으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씨앗이 되어 흩어졌다. 이어지는 말씀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슬퍼하며 스데반을 장사 지내는 반면 사울은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는 장면이다.
2-3절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크게 통곡한 것과 사울이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는 모습이 대조된 것이다. 먼저 2절에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이란 좋다는 뜻을 가진 말과 붙잡는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붙잡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가복음 2:25절에 나오는 시므온을 경건한 사람이라 했다. 또 사도행전 2:5절에서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라는 말에도 나온다. 사도행전 22:12절에서는 아나니아를 경건한 사람이라 했다. 사도행전 10:2절에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경건한 사람이라 했는데 한국어 번역은 같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고넬료에게 쓰인 말은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에게 쓰던 말이다.
이들 하나님 말씀을 잘 붙잡고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장사하였다고 했는데 장사한다는 말은 여럿이 함께 운반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몹시 통곡하였다" 라고 했다. 이는 당시 산헤드린 공회에서 죽음의 정죄를 받은 사람을 위해서 곡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기에 이는 대단히 용감한 행동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옳은 행동을 한 것이다. 이들은 마치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한 아리마대 요셉과도 같다.
이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던 유대인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헬라파 그리스도인들만 핍박을 받았다고 본다면 히브리파 본토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장사 지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경건한 유대인들이었다고 말한다. 그 중간입장에서 경건한 유대교 신자들이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고 핍박 때문에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는 스데반이 다른 유대인들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문맥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3절은 원어에 보면 "그러나" 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2절의 스데반을 장사 지내며 크게 통곡을 했던 경건한 유대인들과는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건한 유대인들은 사울처럼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들일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렇게 스데반을 위해 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고도 잘했다고 생각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울이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었다는 말은 맹수가 먹이를 찢고 삼켜버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진정으로 슬퍼하던 예수를 믿지 않던 유대인들과 맹수처럼 찢고 삼키려는 사울이 대조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잘 붙잡고 사는 사람들은 스데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들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을 잘 붙잡고 사는 신실한 사람들은 교파나 교리에 상관없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교회를 파괴하려고 날뛰었나? 먼저 집집마다 찾아 들어갔다고 했다. 2:46절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집에서 떡을 떼었다고 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집집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다니며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면 틀림없이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이다.
사울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었다고 했다. 끌어 냈다는 말은 요한복음 21:8절에 보면 그물을 끌어 낸다는 말에서 썼다. 무거운 것을 힘을 써가며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도행전 14:19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사울을 끌어내었다는 말에도 썼다. 사울은 집집마다 다니며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하면 강제로 질질 끌어내어 감옥에 넘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종류의 서로 상반된 반응은 예루살렘에 살던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들의 반응을 비교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금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진정으로 슬퍼하며 장사를 지내주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사울처럼 극단적으로 혐오하며 적극적으로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살아갈 때 만나는 교회 밖의 사람들도 이와 같이 두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