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7/26)
-가장 큰 소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고 원하면서 생을 유지하는 것 같다. 되든지 아니되든지 간에 바라는 욕망과 욕구로 내일을 기대하고 오늘을 지탱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기대와는 달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서운하고 낙심한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다음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로또(복권)’같은 경우가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깊고 클수록 마음이 더욱 상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만큼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라고 원하는 마음을 비워보려고 애쓰며 노력도 해보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을 내 생각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끝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신(神)을 찾고 찾는다. 자기의 욕망과 소원을 이루어 주는 힘있는 자를 말이다.
그리고 찾은 신에게 정성을 바치며 자신의 간절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요즘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바치는 돈과 정성에 따라 복도 차등이 생기는 것으로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인간은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바라는 것이 성취되었다해도 그것이 얼마가지 않아 또다시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나이가 들어 늙었어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욕심이 끝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정 인간으로서 가장 소원하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본다. 그것은 새롭고 완전한 곳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영생(永生)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생을 갈구하면서도 인간들은 이 세상에 영생의 길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땅에 영생과 천국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 있으시다. 그리고 그 분을 내 안에 모셔 들이면 그는 빛이시며 생명이시므로 나의 죄악된 몸을 죽이시고 새 몸을 입히셔서 나를 천국에 들이신다는 사실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주후 52~53년경 마게도냐의 두아디라 성이라는 곳에서 사도 바울이 전도할 때에 점을 치는 여종의 주인들로 말미암아 모함을 받게 되어 그만 감옥에 갇히게 된다.
때에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을 구원하시는데, 마침 옥문을 지키는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할때에 바울이 막아 멈추게 하고 보호를 한다.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과 일행들에게,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0,31)고 가르친다.
또한 한때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던 베드로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것을 확인하고서 예수님을 죽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증거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예수 믿으면 인생의 가장 큰 소원 곧 영생의 소망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