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4. 큐티
잠언 30:5 ~ 9
아굴의 찬양과 간구
관찰 :
1)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 5절.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 아굴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 절대적 간극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하다는 것을 말하고 그 말씀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방패와 같으신 분이라고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 수단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전투에서 중요한 무장이었습니다. 전쟁에 사용되는 방패를 통해서 묘사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과 더불어 그 말씀에 집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완전한 보호를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6절.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 본 절은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자의적으로 어떠한 것도 추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무오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패역한 범죄이기에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와 같은 행위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예언의 책에서 말씀하신 모든 재앙을 더할 것이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책망이 임하여 엄중한 징계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방패와 같으신 분이시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의 거짓을 낱낱이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2) 아굴의 두 가지 간구
- 7절.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 아굴은 지혜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아굴이 지혜에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한 두 가지의 간구를 아뢰고 있습니다. 이 간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전제로 합니다. 아굴이 간청하는 태도는 인간 지혜의 한계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깊이 인식한 존재로서 거의 삶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기도의 보범을 보임으로써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 8절.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 아궇은 두 가지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내면 자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외면의 환경적 조건에 대한 간구입니다. 아굴은 자신의 전적 무능력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맡겨드리고 있습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의 가식 혹은 이중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여기서의 “거짓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의뢰하지 않는 태도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아굴은 자신의 마음조차도 스스로는 완전히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직하게, 또 말씀을 진심으로 의지하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굴은 가난도 부도 주지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부요함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물질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재물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따르는 삶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굴의 간구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육신의 필요와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의 과정에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철저히 그 모든 삶을 의탁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아굴은 육신의 필요를 부정하는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8절에서 아굴은 부와 가난을 동일선상에서 부정하면서 날마다의 필요한 양식을 간구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부와 가난 모두를 부정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순종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와 가난 자체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미치는 결과로 인해서 부정하고자 한 것입니다.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가능성을 아굴은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욕구의 만적과 더 나아가 인간적 행복과 번영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 태도는 “여호와가 누구냐”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 존재조차 무시하는 교만하고 완악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자들의 모습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아굴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패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특히 그것을 오염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물질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부요함이라는 가치까지도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 태도를 지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굴은 자신이 물질적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굴의 인식은 정직하고, 또 정확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아굴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진실하게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의 말씀은 무오합니다. 순전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면 모든 것을 막아주는 방패와 같이 진실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첨삭을 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그 의미를 바르게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내용을 덧붙여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범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부하게도 말고 가난하게도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해 달라는 아굴의 간구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적용하고 있는 지혜자의 소원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아굴은 이 소망이 다른 이들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하기에 세상에서 아니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악행을 한 자가 자신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악한 방법을 사용함으로 죄책을 피하는 것이 지혜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행위를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서 그러한 부분을 언급하셨기에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중국에서 한인교회를 섬길 때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바르게 드러나도록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의도성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3) 물질의 문제가 하나님을 떠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부하면 그로 인해서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모하고 누리고자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예들을 봅니다. 또 너무 가난하면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구하기보다 물질적 충족을 위한 길을 찾고자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아굴은 자신에게 그러한 사실을 적용하여 하나님께 간절한 두 가지의 간구를 드린 것입니다. 저 역시 주님을 간절히 찾고자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