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중국 조선족,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10]
중국공산당보다 국민당정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서부권의 조선인은 국민당정부의 조선인정책이 배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따라야 했다.
이들은 국민당정부가 오랜 기간 동안 이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국민당정부와 남한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라는 점이 작용한 측면이 크다.
이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남한출신 조선인이 많았는데, 이에 따라 국민당정부와의 관계가 비교적 활발했다.
대부분의 서부권 조선인은 1948년 국민당정부 세력이 중국공산당 세력에 밀리게 되자 한반도로 귀환했다.
한반도로 귀환하지 못한 일부 조선인은 그곳에 남아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며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했다.
동북지역 동부권 및 북부권 등 해방 초기부터 중국공산당 세력이 우세했던 지역의 조선인은 공산주의 노선을 수용하며 친북한적 성향을 보였다.
이는 해방 이전부터 중국공산당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해방 직후 소련군이 진주한 데 이어 전후 질서수립 과정에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의 활약,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조선인에 대한 우대정책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조선인들은 이 지역에서 국공내전 기간 내내 중국공산당 세력의 중요한 세력기반이 됐다.
그러나 심양과 장춘 길림 등 동북지역 서부권 조선인은 이 지역이 해방 초기부터 국민당정부 세력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에 친국민당정부 성향을 보였다.
이들은 동북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의 행패를 목격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1946년 봄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국민당정부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이들은 국민당정부의 노선을 적극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국민당정부 세력이 종국에 가서 동북지역을 지배할 것으로 믿었는데 이는 곧 한반도에서 남한에 유리한 정세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했다.
이에 따라 심양과 장춘 등지의 조선인은 국민당정부와 연계를 위한 관련 단체들을 잇따라 세웠다.
그러나 서부권 조선인들 중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국민당정부의 조선인에 대한 탄압과 귀환정책 등으로 중국에 정착하기보다 한반도로 귀환하려는 경향이 컸다.
1948년 들어 국민당정부 세력이 중국공산당 세력에 밀리게 되면서 이곳 조선인은 한반도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중국공산당 세력이 이 지역을 탈환했을 때 조선인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동북지역 조선인의 이러한 이념적 지형은 당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두 정치세력-중경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독립당과 연안의 중국공산당과 연대한 조선독립동맹-간 갈등과 해방 이후 이들의 동북지역 조선인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항일투쟁 시기 내내 사실상 이념 및 방략에 따른 갈등으로 제대로 된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던 두 세력은 해방이 된 후 동북지역 조선인과의 관계 정립에도 각각 다른 입장을 취했다.
해방 직후 중국 동북지역의 정세는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참고서적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지음, 인간사랑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