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에 우리 집 가까운 Y거리 깡패 두목이라고 했다.
학생이 뭔 학교 깡패도 아니고 깡패 두목?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문 미는 순간부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니
급기야 올케언니가 오빠에게 일러 주었다.
내가 누구한테 전화번호 알려준 적 없고
내가 전화 받아도 전화 끊는데 모르다고 했더니
오빠도 아무 말씀 못 하셨다
하루는 땅거미가 질 무렵 심부름 갔다 오는데
안면이 약간 있는 동네 청년이 길을 막아서더니
그 깡패가 나를 보자고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자기 보다 어린사람 심부름을...
한심한 생각이 들어 대꾸도 안 하고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는데 내 팔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순간 길옆으로 뛰어내렸는데
어머나 내 키만큼이나 되는 높이었다
그 깊인줄 알았다면 절대로 못 뛰어내리지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심부름꾼도 놀라고
나도 많이 놀랐다
어느 날부터는 직접 내 앞을 막아섰다.
근데 난 그 깡패가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가 나쁜 짓 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도 못 들었고
내가 갑이라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나: 길 비켜.
깡패: 할 이야기 있다 시간 30분만 도고.
나: 할 이야기 나는 없다.
깡패:그라마 5분만 이야기 좀 하자
나 : 지금 길 막아선 지가 벌써 5분 넘었다.
그런 식의 실랑이가 오갔고 결국은 길을 비켜주었다.
한번은 제법 잘생긴 동내 남학생이 만나자고했다.
난생처음 데이트에 설레는 마음으로 나가니
어라 그깡패와 둘이 서있는 것이었다.
상황파악이 안되어 어리둥절해 있는 나보고
그 깡패 중간에 딱 버티고 서더니
너거 둘이 할말 있으면 여기서 해봐라 그런다.
깡패가 중간에 떡 버티고 서있는데 무슨말을 할수 있겠는가.
내 여고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는 그렇게 끝났다.
일련의 사건으로 보아 동네 똘만이들에게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 시킨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도 어떤날은 등교길
어떤날은 하교길에 불쑥 나타났다
하루는 대문 앞에서 화분에 흙을 담아 일어서다
이사한 동네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그를 보고
놀라 화분을 께트린 적도 있었다.
대학 1학년때 한동안 안보여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집 앞 골목에서 길을 막고 서서 군대 간다고 했다.
술을 마신것 같기도 한 모습으로
그때도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는지
그건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날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집으로 들어 와 버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참 많이 미안하기도 하다.
그때 내가 너무 쌀쌀맞게 굴었던 것 같아
그 사람를 만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첫댓글 지금은 시간도 워낙흘러서..
만나도 얼굴을 모르겠지요ㅎ
벌써, 40여년이 지난일이니ㅠ
그래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지난일이
애틋합니다ㅎ
그 남학생 깡패는 아닐성싶네요 ㅎ
약간에 건달끼 정도요ㅎ
물론 얼굴 전혀 기억에 없어요.
애뜻함은 아니고 왠지 빚진 느낌 때문인것 같아요.
혹여나 이글을 본다면 알겠지요.
5분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못한걸 미안해 한다는걸...
딱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좀 주시지 그랬어요
10분도 아니고ㅎ
인기가도를 달리던 여고시절
자주색 책가방만큼이나 그립지요
그게 마음의 빚인것 같습니다.
3년여를 그렇게 주변을 맴돌았는데 5분도 거절한게요.
근데 그남학생의 팔자걸음과 여드름이 눈에 딱 거슬렸거던요.
새순 돋던 날들의 어여쁨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네요.
그 사람도 지금쯤 은보라님을 만나 내가 좀 심한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을 것 같아요.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나 봅니다.
고운 밤이네요.
네 인생이 그런것 같습니다.
그시절 우리는 남학생과 말도 섞으면 안되는 시절이라
많이 곤욕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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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인기로 보는게 아니고 처신을 잘못해
남학생이 따라 온다고 흉을 보던 때라 집에도 말 못했습니다.
꽃 같았던 시절
그런 일이 많았었지요.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이 서성입니다.
솔숲님은 그런일을 많이 겪었을듯 합니다.
전 그 깡패의 교통정리 덕분인지
귀밑머리 2센티 때문인지...
조용히 조용히 여고시절을 보냈습니다. .
인기가 많은 소녀같은데 --
너무나 비싸게 세월을 보냈네요 ~ㅎㅎ
이제 겨울나이로 들어가시니,
그동안의 후회[?]을 만끽하세요 ㅎㅎ
그 깡패가 눈이 삐었던것 같았습니다.
후회까지는 아닌데 나로인해 마음 아팠을
그 학생에게 미안함에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모두가 추억이 그립고..
사소한 일들도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인연이지요..
혹시 누가 잠간 만나자고 하면
안된다고 하시지 말고
이제는 넉넉하게 시간 좀 드리구요 ^^
동창 학교선배 선생님들이 얼굴보고 싶다고 하시면
그 분들도 알만한 친구 대동하고 나갑니다.
국민학교때 잠깐 다닌 교회 반사선생 하신분이 차한잔 하자는데
누굴 대동하고 나가야 할지 미루고 있습니다.
이나이가 되어도 그런자리는 그저 불편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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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 여고시절 통통했어 S라인 실종 눈 실종
이뻐다 소리 별로 못들었습니다.
예비고사 마치고 다이어트를 한것도 아닌데 저절로 7키로나 빠져
내게도 통통시절이 있었다는건 여고친구외에는 아무도 안믿어 주네요.
수선화처럼 싱그럽고 고운
시절 이야기인가 봅니다 ~ ^^
지나고 보니 그런것도 같은데
그 깡패가 지 애인이라고 소문을 내었는지
나만 보면 00 애인 저기간다
그러니 무지무지 챙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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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사촌 시동생도 새형수님 보고 놀랐겠습니다.
빵집도 못가게하던 그시절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것 같습니다.
@은보라
그 시절엔 빵집에도 디제이가 있었고
담배연기 자욱한 그곳에
빵 사주는 남학생들과 얻어 먹는
여학생들로 북적였지요.
갑자기 목포 진고개 제과점이 생각나네요. ㅎ
은보라님~
참 예쁘실 것 같아요^^
@제라 제라님 우리년식에 빵집에 남학생이랑
그건 상상도 못할때입니다.
학교로 오는 편지는 무조건 검열후 손에 들어 왔습니다
오뉴월 하루 빛이 무섭다고 하더니
제라님은 개명한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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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님은 알래스카 중요보직 전임자?
구봉님 보고 싶어 하는 분들 많은것 같던데...
다리께나 떨었다는 구봉님이 영남삶방 번개를
그러면 지도 참석 하지요.
예쁜 여고시절 모습이 그려지내요
삼년이나 주변을 맴돌았던 그맘이 느껴져 짠하기도 ㅎ
늘 고운 인연이 함께 하기를~~
저도 그게 많이 짠합니다.
한 번쯤은 그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했는데
그 가 깡패라고 하니 강한 남자일거라는
선입견에 그때는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 못했습니다
학창시절에 난 짝사랑 전문가였지요 그 즈음 등하교시간에 우연히 꼭 마주치는 여학생!
왠지 모를 연정이 생겨서 마음앓이 깨나 했지만 언제나 마음 뿐이였지요. 이를 안 내 친구가 나를 도와주고자
하교길의 그 여학생에게 강제로 나의 편지를 전해주어 다음 날 12시에 들녘에서 만나자고 전달했는데'
다음날 멀리서 보니 그 장소에 혼자가 아니라 여학생둘이 나와있었는데, 도저히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너무 떨려서요,
그 뒤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끝이나고 말았습니다.들리는 소문에는 교수님 사모님이 되어 서울에서 산다는데요....이제는 옛이야기이지요 허허
그렇죠 들녘에 여학생이 혼자는 절대로 못 나가죠.
그 교수 사모님도 지금 쯤 만남님을
궁금해 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그 남학생, 남자인 제가 봐도 별로인데요 ?ㅎㅎ
깡패 두목은 아니고 동네 날건달 같습니다 ㅋㅋ
5분도 시간 안주신거 마음 아쉬워 하실거 하나도 없습니다 ㅎ
아쉬워 하는건 절대루 아니에요.
누군가의 마음을 3년도 넘게 아프게 했다는게 미안해서
그런지 가끔은 마음에 걸립니다.
그당시엔 모자삐딱하고
가방은 옆구리에끼고 껌씹고다리떨어야
누가 깐보지않는다고생각하던시절이지요 ㅎ
마음만은 순수했을지도모를 그남학생도
가끔은 은보라님 생각할지도요? ㅎㅎ
어쩌면 그때 왜 그런 짓을 했을꼬 하고
그시절 그객기를 후회하고 있을것도 같습니다
와우~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듯하며
풋풋한 하이틴 시절의 이야기...
풋사과 향기를 맡는것처럼 잘 읽었습니다.
어느분이 올리신 사진이 그때 그시절
그곳으로 돌아 보게 했네요
풋사과 향기... 고운 시어 감사합니다
@은보라
네~ 화이팅..!!
모자 삐딱하게 쓰고
앞 단추 두어개 풀고
폼잡던 그리운 고딩의 추억이여?
지금쯤 그녀석도
힌머리 날리며
은보라님 생각할거예요 ㅎ
지금쯤은 그 객기를 후회하고 있을것 같은데요
제가 매몰차게 했던 그시절을 미안해 하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