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들은 공식적인 우두머리는 허수아비를 내세우고 실세는 ‘제2인자’로 위장하는 것이 관행이다. 북한에서 김영남이 헌법상 국가수반인 것이 그렇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가 이석기의 앞잡이에 불과한 것도 역시 그렇다.)
통합진보당의 ‘제2인자’ 이석기의 정체는 이렇다:
민혁당은 북한 지령에 움직이는 종북 지하당으로 1999년 실체가 드러나 수뇌부가 체포되면서 와해되었으나 체포되지 않은 잔존세력들이 조직을 재건해 점조직 형태로 유지해 오다 민주노동당을 거쳐 현재 통합진보당 당권을 장악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는 민혁당 창당에 참여해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지내다가 민혁당 간첩사건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3년간 도망 다니다 체포되어 200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서울고법 판결 후 5개월 만인 그해 8월 노무현 정권의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다.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참으로 어렵고 아슬아슬했다. 박헌영이 이끄는 남(조선)로(동)당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므로. 살인, 방화, 유격전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투쟁 행태는 ‘과연 해방된 독립국가가 제대로 설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을 불러 일으기에 충분했다.
이래서 이승만은 영웅인 것이다. 그의 탁월한 지혜와 용기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은 많이 지체되었거니 최악의 경우 무산될 수도 있었다.
남로당의 북한 사랑은, 그러나, 짝사랑이었다. 김일성은 남로당원들을 동지로 받아들이기는커녕 하수인으로 이용만 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렸다.
박헌영은 6.25동란의 패전 책임을 다 뒤집어 쓰고 가혹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었다. 그는, 그러나, 김일성 정권 아래서 외무상까지 지냈으니 어느 정도는 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하기야, 그는 국제 공산당 세계에서 워낙 잘 알려진 거물이었으니 김일성도 일단은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불쌍한 희생자 중의 하나는 김달삼이었다. 그는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 유격대 총사령관’으로서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북한 정부가 수립될 즈음에 이덕구에게 지휘권을 넘겨주고 월북했다. 아마, 투쟁성과를 보고하고 무훈의 보상으로 북한 정부의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얻게 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들은 미관말직을 주기는 커녕 ‘그간의 투쟁성과를 높이 (입발림으로만) 칭찬하고 더더욱 힘차게 투쟁대열을 이끌어 달라’고 ‘격려’하며 강원도 지역 유격대장으로 임명하여 '쫓아냈다.' 그는 강원도 산중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중에 아군 토벌대에게 사살되었다.
조정래 원작의 영화 태백산맥에는 6.25 당시 인민군이 남로당 출신 지리산 빨치산들을 하대 또는 괄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빨치산들은 다만 ‘굴러온 돌’이었을 뿐이다.
이석기 등의 통합 진보당 핵심 요원들은 미 핵잠수함의 방한 정보를 북한에 넘기는가 하면 북한 김일성 시신을 참배하여 ‘수령님의 유훈인 조국통일을 위해 일꾼이 되겠다’고 방명록에 기재하는 등 공공연하게 북한에 짝사랑을 바치고 있다.
그들은,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짝사랑’은 오로지 배신 당할 뿐이라는 것을!
(참고: 1949년 6월 어느날, 이덕구가 사살됐을 때 그의 목을 대창에 매달아 제주도를 한바퀴 순회하며 공개한다는 소문이 어른들의 입에서 입으로 돌고 돌던 광경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아직 만3세가 되기 이전이었다. 4.3은 유아의 뇌리에까지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길 만큼 제주인들에게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비극이었다.)
첫댓글 적화 통일이 된다면 제일먼저 숙청대상이 남한의 종북주의자들과 데모꾼이 될껏은 뻔한일입니다.
근데 얘들은 이런 공산당의 원리를 어째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