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000만~4,000만원대의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데뷔한 토요타 8세대 캠리는 올해 1~7월 5,870대나 판매되었고, 올해 4월 데뷔한 혼다 10세대 어코드 역시 7월까지 1,000대 이상 판매되면서 캠리를 추격하고 있다. 신차는 아니지만 닛산 알티마 역시 1~7월 2,550대가 판매되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이들 캠리와 어코드, 알티마는 해외 시장에서는 현대 쏘나타와 경쟁하는 중형차들로, 준대형인 그랜저보다는 한 차급 아래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3,000만~4,000만원의 가격대를 형성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현대 그랜저와 경쟁하고 있는 모양새. 가격대가 겹치니 차급은 달라도 국산 준대형차와 수입 엔트리 중형차는 자주 비교된다. 게다가 캠리와 어코드는 하이브리드 모델도 내놓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가격의 그랜저 하이브리드와도 자주 비교된다. 어쩌면 이들 엔트리 수입차가 넘어야 할 진정한 벽은 그랜저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비자의 선택은 그랜저로 쏠리고 있다. 그랜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다. 올해 1~7월, 하이브리드 모델을 합쳐 6만7,039대가 팔려 국내 자동차 시장 판매 1위를 고수했다. 그렇다면 준대형차라는 차급을 넘어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랜저는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 중형차인 캠리, 어코드와 비교해 어떤 점이 더 매력적일까?
우선 그랜저는 인지도와 판매량, 이름값, 전통 등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자랑하는 3,000만원대 국산 대표 고급 세단이다. 토요타 캠리(1980년 데뷔)나 혼다 어코드(1976년 데뷔)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 진입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기준에선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한 그랜저가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는 그랜저를 ‘대한민국 고급 세단의 역사’라 부른다. 1986년에 처음 등장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리더들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해왔다. 1~2세대가 운전기사를 두고 타는 최고급 기함으로서 위상을 높였다면, 3세대 모델부터는 직접 운전을 즐기는 리더들의 발이 되었다. 그래서 그랜저는 수많은 국산차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등장한 지금에도 30년 동안 쌓은 이름값은 변치 않는다. 안주하지 않고 매 세대마다 혁신을 거듭하며 젊은 감각을 더해왔고, 이 때문에 이제는 젊은 리더들이 그랜저를 타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졌다.
외관 디자인 & 실내공간
현대 그랜저,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의 디자인적 공통점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젊은 소비자를 포함해 다양한 연령대에 어필한다는 점은 같다. 현대차는 그랜저만의 헤리티지를 젊은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승부수를 뒀다.
앞부분은 강인한 인상을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대표적인 부분이 헤드램프와 그릴. 입체적으로 다듬어 시선을 끄는 데다 위치를 낮추어 시각적인 무게중심을 낮췄다. 범퍼의 선과 이어지는 보닛의 굴곡을 통해 강인하고 근육질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그랜저의 우아한 볼륨감은 옆면에서 볼 때 더 도드라진다. 살짝 부풀린 앞뒤 펜더는 강인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이미지를 표출한다. 이는 4세대부터 이어진 그랜저 디자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차체 옆면을 가로지르는 캐릭터 라인, 매끄럽게 호를 그리며 떨어지는 C필러 디자인이 우아함을 자아낸다.
뒷부분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랜저의 역사를 담아낸 테일램프다. 역대 그랜저들은 양쪽의 테일램프를 연결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적용해왔다. 6세대인 현행 모델도 마찬가지. 대신 램프 모양을 좀 더 입체적으로 다듬고 연결부 점등 기능을 추가해 전통과 미래지향적인 감각을 동시에 챙겼다.
실내 디자인의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에서도 그랜저는 앞선다. 가로형 구조를 바탕 삼되 온갖 부분을 인간공학에 맞춰 꼼꼼하게 다듬었다. 크래시패드는 기능별로 모아 다듬고, 디스플레이의 시인성을 높이기 위해 플로팅 타입을 적용했다. 프리미어 인테리어 셀렉션의 경우 프라임 나파가죽 시트와 스웨이드 내장재, 도어트림 리얼 알루미늄 가니시를 적용해 프리미엄 세단 못지않은 럭셔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넓은 실내공간 또한 그랜저를 주목할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랜저의 길이×너비×높이는 4,930×1,865×1,470㎜, 휠베이스는 2,845㎜다. 토요타 캠리보다 50㎜, 혼다 어코드보다 40㎜ 길다. 실내공간의 척도인 휠베이스로 따지면 캠리보다 20㎜, 어코드보다 15㎜ 길다. 넓은 실내공간 확보는 현대차의 장기 중 하나. 그래서인지 그랜저는 특히 경쟁 모델들에 비해 뒷좌석 다리 공간이 상당히 여유롭다.
그랜저의 뒷좌석 레그룸은 935㎜인데, 이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 ES350보다 55㎜나 길다. 그래서 지금의 그랜저는 초대 모델과 달리 오너용 성격에 가깝지만 의전용으로 쓰기에도 손색없다. 실제로 그랜저는 도어트림, 크래시패드 가죽 감싸기 등 고급 재질을 적용해 럭셔리함에서 경쟁자들을 멀리 앞선다. 때문에 그랜저는 소유자가 직접 모는 ‘오너 드리븐’과 운전기사를 두고 타는 ‘쇼퍼 드리븐’ 시장의 경계에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는 국내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이다.
파워트레인 & 안전/편의사양
그랜저는 직렬 4기통 2.4L(190마력), V6 3.0L(266마력), V6 3.3L(290마력) 등 세 가지 가솔린 엔진을 고를 수 있다. 2.4L에는 6단 자동변속기를, V6 3.0L와 3.3L에는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다. 경쟁 모델 중 유일하게 고급스러운 회전질감의 V6 엔진을 고를 수 있다.
토요타 캠리는 최고출력 207마력의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다. 혼다 어코드는 직렬 4기통 1.5L 터보(194마력), 직렬 4기통 2.0L 터보(256마력) 중 고를 수 있다. 1.5L 터보 엔진은 무단변속기와, 2.0L 터보 엔진은 10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룬다.
같은 가격대에 맞춰 엔진을 비교해보면 그랜저는 훨씬 넉넉한 힘을 낸다. 캠리는 3,540만원. 어코드는 1.5L 터보가 3,590만원, 2.0L 터보 스포츠가 4,230만원이다. 한편 그랜저는 2.4L가 3,048만원부터, 3.0L가 3,529만원부터 시작한다. 알뜰한 선택을 원한다면 2.4L를, 넉넉한 힘을 원한다면 3.0L을 고르면 된다.
그랜저의 장점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주행 감각. 최고출력 266마력의 V6 3.0L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 덕분에 언제든 부드러운 가속이 가능하다. 한국지형에 최적화시켜 주행 안정감을 확보하면서도 충격 흡수에 초점을 맞춘 서스펜션 세팅 덕분에 승차감도 좋다. 게다가 상당히 다양한 안전 및 편의장비도 갖췄다. 가격 대 편의장비로 비교하면 경쟁차들은 그랜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중의 백미는 안전장비인 현대 스마트 센스 패키지. 고속도로 주행 보조 + 전방 충돌방지 보조 + 차로 이탈방지 보조 +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 운전자 주의 경고 +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등의 기능을 한데 묶은 패키지다. 특히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는 캠리나 어코드에서 지원하지 않는 기능인데,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차간거리 및 차선유지를 저속에서도 제공하고 손을 떼고 있더라도 경보가 울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이것은 일반적인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보다 한 단계 진보한 기능으로 반자율주행에 가깝고, 장거리 주행을 하더라도 피로감이 훨씬 적다. 또한 고속도로에서 높은 속도로 방심하고 주행하다 아차 싶은 순간에 과속카메라에 촬영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랜저는 HDA로 설정한 상태에서 속도제한 구간에 맞춰 자동으로 감속해주기 때문에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는 것도 수입차에는 없는 기능이다.
캠리는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라는 안전 기능 패키지를 제공하지만 후방 사각지대 감지(BSM) 등의 기능을 빼놓았다. 혼다는 2.0 터보 스포츠 모델에만 안전 기능 패키지인 혼다 센싱을 적용해서 1.5 터보 모델에서는 옵션으로 선택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 아쉽다.
그랜저 vs 캠리 & 어코드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모델도 살펴보자. 수입 하이브리드 세단과 대항할 국산차 중 인지도와 판매량을 고려해보면 단연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호적수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올해 상반기(1~7월) 1만4,033대가 팔렸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3,484대, 올해 5월에 출시된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7월까지 220대가 팔렸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3,512만~3,919만원(세제혜택 후 기준)이며, 캠리는 4,190만원, 어코드는 4,180만원이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3,000만원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4,000만원대 캠리나 어코드 하이브리드보다 안전 및 편의장비나 실내공간에서 앞선다. 이런 점 때문에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최근 그랜저 전체 판매량 중 20%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다가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강조하는 토요타와 비교하더라도 기계적인 완성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구동계는 자동변속기의 토크컨버터를 모터로 대체해 쓰는데, 모터를 변속기로 사용하는 토요타 방식에 비해 구성이 간단할뿐더러 직결감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지연현상이 없어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차처럼 편하게 탈 수 있다. 빠른 반응성과 일체감을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다.
젊고 스마트한 한국 대표 고급 세단
그랜저는 수입차가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IT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하는 데에서도 한 수 위로, 스마트한 음성인식 기능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랜저는 카카오의 인공지능(AI) 플랫폼인 카카오i를 이용한 서버형 시스템을 새로 적용해 강화된 성능을 자랑한다. 또한 블루링크를 통한 원격 제어, 긴급 구난 등의 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랜저의 장점이다.
현대차는 그랜저가 시장 1위 모델임에도 안주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의견을 담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형부터 주행 중 후방영상 디스플레이(DRM)를 기본 적용한 것을 들 수 있다. 룸미러로 시야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항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에는 과속 위험지역에서 알아서 속도를 늦추는 내비게이션 기반 크루즈 컨트롤을 추가했다. 국내 소비자의 의견을 꾸준히 받아 개선하는 점은 수입차 대비 그랜저의 분명한 장점이다.
1986년 쇼퍼 드리븐 성격의 고급 세단으로 태어나 1992년 2세대(뉴 그랜저), 1998년 3세대(XG), 2005년 4세대(TG), 2011년 5세대(HG), 그리고 2016년 6세대(IG)로 진화한 현대차의 간판 세단 그랜저. VIP용에서 출발해 아빠차, 이젠 오빠차로 불릴 만큼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더해왔다. 브랜드 간판 모델이 라인업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기염을 토하는 데에는 이처럼 매 세대마다 변신을 마다하지 않은 과감함과 상품성, 그리고 국내에서의 특별한 가치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