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전투기다. 융커스 유모004 터보젯 엔진[3]을 2기 장비한 Me262의 성능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모든 전투기보다도 빨랐다. 그렇지만 P-51 머스탱이나 Yak-9이나 La-7에게도 털린적이 있어서, 프로펠러 전투기한테 격추당한 최초의 제트전투기이기도 하다.
[슈발베와 비슷한 시기 영국도 제트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Gloster Meteor 가 바로 그것으로 영국은 당시 최신 제트엔진 기술이 적에게 넘어가는것을 막기 위해 영국본토에만 이를 한정 운영했었다. 수벨베는 미티어보다 1년정도 빠른 1942년 이미 첫비행에 성공했다]
독하디 독한 메서슈미트 빠였던 아돌프 갈란트 중장도 "난 Bf109 5대보다 이 녀석 하나를 고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참고로 갈란트 중장은 Fw190이 실전배치되는 중에도 Bf109를 선호한 사람이다.
[창공의 신사 로 불니는 Adolf "Dolfo" Joseph Ferdinand Galland (아돌프 돌포 요제프 페어디난트 갈란트) 제2차 세계대전때 활약한독일 공군의 장성(1912~1996).인 그는 독일총갑시절 열렬한 ME-262 지지자중 하나였다]
공학자도 숙련공도 모자랐던데다가 중요한 광물자원마저 부족해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다. 또한, 시험비행에 쓸 연료마저 모자랐고, 폭격으로 공장까지 파손되었다. 결국 262는 초라한 공장에서 조잡한 재료에 미숙한 직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겉면을 매끈하게 만드느라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2는 당대 최고의 전투기였다.
전후 Me262와 미군의 신예 제트 전투기인 슈팅스타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았던 척 예거는 "기술자들에게 F-80과 Me262의 성능이 거의 동등하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기겁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슈발베는 공학자도 숙련공도 모자랐던데다가 중요한 광물자원마저 부족해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다. 또한, 시험비행에 쓸 연료마저 모자랐고, 폭격으로 공장까지 파손되었다. 결국 262는 초라한 공장에서 조잡한 재료에 미숙한 직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겉면을 매끈하게 만드느라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2는 당대 최고의 전투기였다.전후 Me262와 미군의 신예 제트 전투기인 슈팅스타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았던 척 예거는 "기술자들에게 F-80과 Me262의 성능이 거의 동등하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기겁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일반적으로는 사상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1938년에 이미 융커스 사에서 EF009 제트전투기를 개발했으며, 하인켈사가 1939년에 먼저 He 178 제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그 뒤를 잇는 제트전투기인 He 280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5] Me262는 사상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다.
[슈발베와 더불어 독일이 계획했던 다른 제트기중 하나인 하인겔 He280 모델 일반적으로는 사상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1938년에 이미 융커스 사에서 EF009 제트전투기를 개발했으며, 하인켈사가 1939년에 먼저 He 178 제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그 뒤를 잇는 제트전투기인 He 280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5] Me262는 사상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다. .]
하지만 He 280과 함께 공기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시제기 3대만 만들라는 지시만 내려왔음에도 1942년에 피스톤 엔진을 사용한 시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했으며, BMW의 003 터보젯 엔진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 엔진이 자꾸만 말썽을 부렸다. 한번은 시험비행 도중 엔진 트러블이 일어나서 예비로 장착했던 융커스 피스톤 엔진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메서슈미트 사는 더 크고 무겁지만, 쓸 수 있는 엔진을 달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융커스 유모 004 터보제트였다. 그리고 이로써 Me262는 드디어 제트전투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엔진 덕분에 262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후퇴익이다. 하지만 고속 성능을 위해 채용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엔진 때문에 기체의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날개에 엔진을 달고 뒤로 젖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물론 만들어놓고 보니 속도향상에 도움이 된다는걸 깨닫고 이를 염두에 두고 후퇴각을 조절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제기에서 머물기는 했으나 미국도 XP-55등의 기체에서 후퇴익을 실험하기도 했다.[6]
실전 배치되었을 당시의 전황이 급박하다 보니 주로 폭격기 요격에 많이 투입됐는데, 대전 말기에는 기수에 50mm 기관포(…)를 장비하여 장거리에서 강한 화력으로 폭격기를 격추한다던지,[7] 심지어는 다연장 로켓을 사용하기도 했다. 로켓의 경우 위력도 위력이지만 여러발이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모습 때문에 폭격기들의 편대를 흐트러놓기 좋았다. 그리고 이런 무장과 속력을[8] 바탕으로 호위기와의 교전을 회피하고 폭격기만 공격하고 돌아오는 전술을 사용했다. 물론 호위기들이 그냥 보내줄 리가 없으니 다른전투기들이 호위기랑 한판 붙는 동안 대열 사이로 침투해 폭격기만 공격하고 오는 방법이었다.
엔진: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엔진의 수명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성이다. 이 중 수명은 Me 262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연합군의 J33엔진이나 더웬트엔진도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엔진 수명이 100시간을 넘길랑말랑한 정도였다.[9] 거기다 대전 말에 독일 사정상 레어메탈의 수급이 어려워 고온과 고압에 견뎌야 하는 엔진을 강철로 만들어야 하는 문제까지 겹쳤으니 엔진의 수명이 길면 그게 신기한 일이다. 이 때면 그동안 점령한 영토의 상당부분을 탈환당했을 시점이다. 게다가 연합군의 전략폭격까지 겹쳐서 상황은 더더욱 악화되었고 덕분에 평균수명이 40시간도 안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또 하나는 신뢰성으로 적기를 스쳐지나간 다음에 선회하려다가 엔진이 맛이 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연합군에게는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인데 연합군과 독일군이 사용한 엔진의 형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축류식 엔진들은 급격하게 러더를 차서 사이드 턴을 걸었을때 엔진으로 공기가 제대로 흡입되지 못해 엔진이 정지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연합군이 원심식 엔진을 사용한 반면 슈발베는 축류식 엔진을 사용했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던것. 이 문제는 이후 J79 엔진에 가변 터빈을 채용해서 해결됐다.그 엔진이 미제라는게 함정 게다가 엔진 출력이 최대치에 이르면 엔진에 불이 붙는 문제까지 있었다. 결국 조종사들은 착륙할 때 엔진 출력을 줄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되니 이/착륙 때는 속도가 크게 느려질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를 노린 연합군 전투기들의 습격을 받고 손실되는 일이 많았다. Me262를 채용한 '코만도 노보트니' 비행단의 단장이자 독일의 에이스인 발터 노보트니 중령도 엔진 고장으로 귀환, 착륙하는 중에 P-51 머스탱의 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아돌프 갈란트 중장이 비행단을 방문하고 있었던 관계로 노보트니 중령의 추락을 직접 목격했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괴랄한 연비: 제트 전투기는 프롭기보다 연료 소모가 훨씬 빠르다. 그런데 유모004 엔진은 초기의 제트엔진. 천조국이야 "그으래? 그럼 연료 펑펑 뿌려 줘. 그정도 쯤이야"하고 넘어가겠지만 연료 부족에 골머리를 앓던 나치 독일 입장에선 이놈 하나 굴릴 연료로 Bf109나 Fw190을 3대 굴리는게 나은 입장이었다. 기름없다면서 멀쩡한 탱크 포탑을 인력으로 돌리게 만든 나라에서 결전병기라고 만든 건 어째 죄다 기름을 들이마시는 것들 뿐이냐
아돌프 히틀러의 삽질: 히틀러가 이 신형기의 성능을 보고받고서 헤르만 괴링과 나눈 대화를 보자.
히틀러: 좋아. 이 전투기에 폭탄을 달아! 처칠 놈에게 폭탄을 먹이는 거야! Me262는 폭격기로 생산한다!
...상황이 막장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폭격기로 개발하라는 히틀러.. 덕분에 전투기형 Me262의 숫자는 턱없이 모자랐고, 주변 사람들은 이런 처사를 격렬하게 비난했고, 야전부대에서는 아예 공장에서 폭격기 형으로 기관포를 철거하고, 폭탄창을 탑재한 기체를 받으면 기지에서 다시 폭탄창을 철거하고 기관포를 다시 우겨넣는 개조를 한뒤 요격임무에 내보내버렸다. 이걸 알게 된 히틀러는 처음에는 빡쳐서 길길이 날뛰었지만[10] "씁 어쩔 수 없지"하면서 전투기 버전을 소량(1944년 9월의 일로, "20대 중에 한 대 정도는 전투기로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나뭐라나.)만 제작하도록 했다.[11] 다만 이 사건은 개발이 다 끝난 뒤에, 양산에 들어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라서 히틀러 탓에 Me262의 개발이 늦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히틀러만 까기도 좀 뭣한 게, Me262 역시 누가 2차 대전 독일 무기 아니라고 할까봐 파생형이 무지막지하게 많다.
풋내기 조종사들: 대전 말기의 추축군은 엉망진창이었다. 쟁쟁한 베테랑들이 여기저기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을 훈련시킬 교관도, 그들을 전장에서 이끌어 줄 고참들도 거의 없었다. 반면 연합군은 어느정도 경험이 쌓이면 후방의 교관으로 돌려서 인명손실도 막고, 조종사들의 기량도 향상되었기 때문에 이 격차는 더더욱 벌어져갔다. 여기에 콧수염 하사가 저 명령을 내리면서 "262 조종사들은 무조건 폭격기 조종사로 훈련시켜라"고 닦달한 탓에 한동안 폭격기 파일럿들만 왔으나, 일선에서는 이걸 폭격기로 쓸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폭격기 조종훈련을 받은 파일럿한테 전투기 조종사 임무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선회하다가 제풀에 떨어지는' 목격담의 주인공 대부분은 이런 파일럿들이었다. 그 뒤(1944년 12월)에는 히틀러도 Me262를 요격전투기로 전면 생산하도록 허가했으나, 이제는 숙련된 조종사도 부족했으며 2인승 훈련기인 B-1a의 수도 모자라서 갓 배치된 조종사가 관숙비행[12]따위 없이, 짦은 지상교육과 8시간의 기초교육만 받고 그대로 출격하는 막장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쑥대밭이 되어가는 독일 땅 더욱이 이쯤 되면 연합군의 전략폭격 덕분에 사방으로 흩어진 메서슈미트 사의 생산라인에서는 전문공도 기술자도 자원도 연료도 부족했다. 그러니까 대충 구색만 갖춘 허접한 공장에서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풋내기 기술자들에 의해서 조립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제대로 된 시설에서도 그만큼 애를 먹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이쯤되면 제대로 안습이다. 물론 2차 대전 말기의 독일 명품 무기들이 다들 그렇듯이, 필요한 만큼의 수량을 채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만이 생산되었지만 저 상황에서 그 정도라도 찍어낸 게 어디냐...는 말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양이 적으니 당연히 한번에 투입되는 수도 턱없이 적을 수 밖에... 그럼에도 262는 연합군에게 꽤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잡았고, 이 때문에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262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는 비행장은 몽땅 쑥대밭으로 만들어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물론 폭격에서 살아남은 비행장이라고 해도 그 근처에는 냄새를 맡고 달려온 머스탱같은 연합군 전투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JV44에서는 262를 엄호하기 위해 별도의 Fw 190부대를 두었는데 이 부대가 바로 '피피가이 슈피겔'이다.
그러니까 대전 말기의 262는 대충 만든 공장에서 질낮은 재료로 미숙한 기술자의 손에 조립되어 다리를 격납고로 삼아서 아우토반을 활주로로 삼고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생초보 조종사에게 맡겨져서 하루에 60대 이상 출격하지도 못했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집 근처에서는 상어떼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상황에 놓였다는 말이 된다. 이래서야 하루에 네자릿수로 달려드는 연합군 폭격기나 독일 하늘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는 연합군 전투기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전투기는 역사상에 큰 획을 그은 것은 확실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제트전투기의 원조라고 볼 수는 없다. 양국은 이미 제트전투기를 개발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45년에는 이미 양산에 들어갔고 영국도 독일보다 3개월정도 늦기는 했지만 44년에 이미 제트기를 실전배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후에 양산된 소련의 MiG-15의 폴리모프 004엔진의 원조는 당시 노동당 정권이 소련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넘겨준 롤스로이스 넨 엔진이다. 그리고 처칠은 뒷통수를 부여잡았다고 하더라.
따라서 전후의 제트기 개발에 약간 영향을 주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게 적절하다. 물론 타국의 무기체계를 자국의 무기개발에 참고하는건 전혀 드문일이 아니다. 독일의 판터도 T-34의 경사장갑을 보고 적극적으로 경사장갑을 도입하였고 일본도 실패로 끝났지만 노획한 P-38 라이트닝에 달린 과급기를 복제하려고 시도했으며 근데 왜 노획한 개런드는 죄다 태워버린건데 소련은 압류한 B-29를 자국의 중폭격기를 개발하는데 아주 잘 써먹었다.
전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 의해 아비아 S-92(A-1a), 아비아 CS-92(B-1a : 복좌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1957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군에서 운용되었고, 2003년부터 미국에서 레플리카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져 2006년에 완료[13]되었다.
일본 제국도 나치 독일의 기술을 약간 받아서[14] 비슷하게 생긴 J9Y 깃카라는 물건을 어영부영 만들었지만 아예 실전투입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처참한 스펙만 남긴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봉인당했다. 물론 독일이나 영국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그나마 쓸만한 성능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으나[15] 당시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2006년 베를린 에어쇼에서 공개된 레플리카. 다만 엔진은 J-85로 교체[16]되었는데 이는 미국 항공법 때문.
참고로 "인류 최초로 음속을 넘었을지도 모르는 전투기"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1945년 4월 9일에 전투 도중 한스 뮛케(Hans Guido Mutke)가 전투중 고도 12,000m에서 시속 1,100 km/h 을 기록했다고 보고 했기 때문(해당 고도에서 음속은 1,062 km/h)이다.[17] 그러나 이 기록은 40도로 강하하고 있던 당시의 속도기 때문에 공식 기록이 될 수 없다. 이보다는 뒤의 이야기지만 F-86도 도중 음속을 돌파했었으나 역시 강하중에 이루어진 돌파이기에 인정되지 않는다.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유인 항공기는 X-1로 척 예거가 돌파했다.
스트라이크 위치즈 2기 4화에서 Me 262 V-1이라는 이름의 시제 제트 스트라이커로 등장했다. 50mm 기관포와 4연장 30mm 기관포가 한 세트로 등장하는데, 이는 A-1/U4와 기본형을 구현한 듯. 하지만 현실과는 다르게 둘 다 한 번에 들고 날아갈 수 있다. 작중에서 음속돌파 관련 묘사도 있었던 P-51D보다도 빠른 속도와 상승력을 과시하나[18], 사용자의 마력을 쪽쪽 빨아먹는(...) 괴악한 연비를 가진 결함기로 묘사되었다.
워 썬더의 독일 항공기 트리 5티어 초중반에 등장한다. 기본 모델인 A-1a 슈발베 그리고 동체 내부에 로켓 추진기를 탑재한 C-1a 모델 , 양쪽 주익 내부에 로켓 추진기 각각 1기 씩을 탑재한 C-2b 모델 그리고 50mm Mk. 214 대전차 기관포를 탑재한 A-1/U4 모델이 존재한다 A-1/U4 모델은 전차를 격파시킬 정도로 대단한 단발 화력을, 나머지 모델들은 적절한 비행 성능에 30mm 4문의 절륜한 지속 화력 투사 능력을 자랑한다.
.[9] 이러한 제트 엔진들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종전 후에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엔진이 안정화되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10] 당시 전투기총감인 에른히스트 밀히가 이 때문에 실각당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 밀히의 실각은 Me262 생산이 본격화되기 전인 1944년 8월의 일이었기 때문에 Me262의 생산문제보다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달 효율이 낮고 본토방공전 전략에서 히틀러 및 괴링과의 의견 충돌이 심했던 탓이 더 크다
.[11] 이 의견에도 일리는 있는 것이, 당시 연합군도 독일군도 지상지원을 주력으로 하면서 공중전 역시 수행할 수 있는 쌍발 고속 전투폭격기를 활용한다는 개념에 상당히 집착했다. 영국의 모스키토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 다만 독일군은 거기에까지 국력을 나눌 여유가 없음에도 그런 짓을 시도한 것이며, 이는 사실 1943년 당시 독일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독일이 전투기 생산을 폭격기 생산보다 중시하게 된 것은 1944년 들어서의 일이었다. 더 멋진(?) 사실은 독일 공군에는 이미 쌍발 제트 폭격기 Ar 234가 있었는데 이 폭격기의 엔진 역시 유모004였다는 것이다. (...)
[13] 국내 군사잡지에도 제작과정과 완성후 비행모습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제작과정의 주체는 독일계 미국인이었으며 2차 대전당시 독일 항공기술 관련 계통에서 밑바탕을 다진 사람으로 모든 부품을 당시 방식으로 일일이 제작했다고 한다. 다면 항공전자장비와 엔진(F-5 전투기 엔진을 썼는데 F-5 전투기 엔진이 크기와 중량이 훨씬 작으면서도 추력은 더 강했기에 무게중심 등을 맞추고자 겉에 원 엔진 모양의 커버를 추가했으며 추력도 제한 - 조종간에 제약을 걸었지만 좀더 힘을 써서 조작하면 제한된 추력 이상을 낼 수 있다고 - 했다.)은 현대제품을 사용했으며 주문제작으로 판매한다고 했다. 완성품으로 나온 기체는 복좌형이었다.
[14] 원래 선박 엔진 기술을 주는 조건으로 004 엔진과 그 기술을 모두 받는다는 조건이었는데 다행히도(...) 004 엔진과 설계도들을 실었던 잠수함이 돌아오다가 기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삽시간에 망해버렸다. 덕분에 단편적인 자료만 가지고 직접 개발해야했다.
[15] 독일과 영국도 최초로 만든 제트기는 프롭기보다 못한 성능이 나왔었지만 지속적인 투자로 제트기다운 성능을 뽑아낼 수 있었다.
[16]F-5E/F에 쌍발로 사용된 엔진이다. J-85 엔진이 유모 엔진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유모 엔진 껍데기를 만들어 안에 따로 설치하는 개조를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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