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1868]高適(고적)5율-醉後贈張九旭(취후증장구욱)
원문=[千家詩]
醉後贈張久旭 ‧ 高適(唐)
世上謾相識,此翁殊不然。興來書自聖,醉後語尤顛。
白髮老閒事,青雲在目前。床頭一壺酒,能更幾回眠。
醉後贈張九旭(취후증장구욱) 취한 뒤 장욱에게
高適(고적)
世上謾相識(세상만상식),
此翁殊不然(차옹수불연).
興來書自聖(흥래서자성),
醉後語尤顚(취후어우전).
白髮老閑事(백발노한사),
靑雲再目前(청운재목전).
床頭一壺酒(상두일호주),
能更幾回眠(능갱기회면).
*眠을 眼으로 나온자료도 있다
* 謾 ; 속일 만, 헐뜯을 만. 게으를 만.
* 殊 ; 죽일 수. 다를 수. 뛰어날 수.
*顚엎드러질전,이마전 *尤더욱우
*更고칠경,다시갱:번갈아,더욱,도리어,어찌
세상에는 잘 아는사람도 속이지만
이 노인은 달리 그렇지 않다네.
흥이나서 글을 쓰면 그 자체가 거룩하고
취한 후 말을 하면 더욱 뛰어나네.
늙어 백발이 되어 한가로이 지내지만
청운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네.
침상 머리에 한 단지의 술
몇 번이나 다시 잠들 수 있으려나.
세상에 서로 안다 쉽게 말하지만,
이 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흥이 나면 초서로 스스로 성인이며,
취하면 하는 말이 더욱 종잡을 수가 없다.
머리가 하얗게 늙도록 한가한 직책이었으나,
언제나 큰 꿈이 눈앞에 있는 양 열심이었다.
침상에 술 한 병만 있으면,
능히 몇 번이고 잠들 수 있었다.
✵ 고적(高適, 약 704∼765)의 자는 달부(達夫)이고, 창주발해(滄州渤海; 지금의 하북성 창현河北省 滄縣) 사람으로 알려졌다.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는 걸인생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천성이 호방하고 총명하여 자라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는 개원 23년에 멀리 장안까지 와서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어렵게 마련한 노자는 다 떨어지고 낙담이 극에 달했을 때, 장안 젊은이들의 행태와 자기 신세를 비교하면서 지은 시(詩)가 행로란(行路難)이다. |
이하자료=동아일보
서예 대가를 향한 경의[이준식의 한시 한 수]〈176〉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02 03:00업데이트 2022-09-02 03:14
세상에선 허투루 사람을 사귀기도 하지만,
이 어르신은 전혀 딴판이지.
흥 나서 글씨 쓰면 성인의 경지요,
취한 후 뱉는 말은 거칠 게 없지.
백발이 되도록 늘 한가롭게 지내기에
그저 푸른 구름만이 눈앞에 있었지.
침상 머리맡엔 언제나 술병이 하나,
얼마나 더 이분을 취해 잠들게 할는지.
(世上謾相識, 此翁殊不然. 興來書自聖, 醉後語尤顚.
白髮老閑事, 靑雲在目前. 床頭一壺酒, 能更幾回眠.)
―‘취한 뒤 장욱에게 주다(취후증장구욱·醉後贈張九旭)’
고적(高適·약 704∼765)
당대의 서예가 장욱(張旭)은 술에 잔뜩 취한 후 붓을 내갈기는 기벽(奇癖)이 있어서
‘장전’(張顚·미치광이 장욱), 또 초서(草書)의 대가라 하여 ‘초성(草聖)’이라 불렸다.
두보가 이백 등 8인을 뽑아 음주의 신선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장욱을 ‘술 석 잔이면 초서의 성인이 되지.
관모도 벗은 채 왕공(王公) 앞에 나아가,
종이 위에 휘호하면 글씨는 마치 구름 같고 안개 같았지’라 했다.
장욱에게 글씨와 술이 한 몸처럼 따라붙었다는 얘기다.
고적은 장욱보다 나이도 훨씬 어렸고, 장안에서 잠시 교류한 것 외에
그와 별 깊은 인연은 없었다. 하나 시인은 가식 없고 명리에 초연했던
이 노인의 인품을 오래 흠모했던 모양이다.
취기가 오른 어느 날 시인은 문득 장욱의 삶을 부러운 듯 떠올렸고
경의(敬意)를 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이 서로 사귄다고 해서 꼭 진정성이 있는 건 아니다.
말로는 절친이라면서도 위선적일 때도 있기 마련인데 이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취한 채 붓을 잡지만 그 글씨는 신묘한 경지에 이르고,
꾸밈이나 거짓이 없으니 언사도 거침 없다.
평생 한가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사에 무심한 채
푸른 하늘과 구름과 술을 곁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을 이리 흠모하긴 했어도 실제 고적은 변방의 전선을 오가는 등
관직 생활에 무척 적극적이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